피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나는 왜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는가?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직장에 만족하지 못해 이직을 거듭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여러 동호회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유학이나 이민을 결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많은 경우,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우리를 변화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2019 노벨 문학상 수상자 피터 한트케는 이 갈망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라고 정의했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의 화자는 오스트리아 중년 남성으로, 떠난 아내, Judith를 찾아 미국을 횡단한다. 그러나 그의 여행에 다급함이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여러 주를 방문해 전 애인, Claire와 오래 연락이 두절됐던 형제, Gregory를 만나고 경치를 감상하며 미국과 유럽의 문화를 비교하는 여유를 부린다. 그리고 드러나는 사실은 부부가 서로를 죽이려 했다는 것. 그가 그녀를 찾아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랑일까 복수일까.
Claire가 관찰한 바는 이렇다.
'I haven't got an America I can go away to like you, ' said Claire. 'It's as if you'd come over on a time machine, not for the change of place but for a glimpse of the future. Over here we've lost all sense of where we're going. If we draw any comparisons, it's with the past. And we've given up wanting anything, except herhaps to be children again...'
'내게는 당신처럼 갈 수 있는 그런 미국은 존재하지 않아, '클레어가 말했다. '당신은 장소를 바꾼다기보다는 미래 속으로 달려가려고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이 이곳으로 왔어. 하지만 이곳에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알 수 없어. 우리가 무언가를 비교한다면 그 대상은 과거가 되겠지. 우리는 기껏해야 다시 아이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화자는 아내와의 과거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 즉 새로움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간 것이다. 다시 아이가 되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은 이 아이 같은 바람. 이것이 한트케가 조명하는 방랑의 원천이다.
그도 그런 것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기란 쉽지 않다. 화자는 아내와의 추격전 도중 폭행을 당하고 자주 악몽에 시달린다. 호텔 방에서 목 놓아 울다가 잠들어 꾼 꿈. 토마토를 씻는 용기에 빠져서 가라앉는 꿈 같이 끔찍한.
I seem to have been born for horror and fear.
난 공포와 두려움을 위해 태어났나 봐.
고백하는 그에게 붙잡을 건 미래는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희망,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그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