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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데이지 Jun 19. 2020

외국 서점

첫 데이트의 기록

“안 사요.”
단호한 사장님의 말이 끝나자 
서점에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적은 수는 안 사요.”

조금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응... 안 산다고 했어.”
한층 부드러운 말투였다.

세 명 이상 수용하기 버거운 작은 공간
이태원의 “외국 서점”은 입구부터 책이 빼곡했다.
Family Happiness부터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Tuesdays with Morri까지

미국 유학시절 날 달래주던 책들이

내 발걸음을 멈추었고

존은 추억의 책을 찾아

구석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통화를 끝낸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어린 사람이 책을 얼마에 사겠냐고 다그치면 
어디서 훔친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많은 책을 모으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존이 미국 억양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예의 바르게 물었다.
“60년 정도 걸렸지.”
휘둥그레진 우리의 눈을

사장님은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책을 정리했다.

“어쩌다 외국 책을 팔게 되셨어요?”
나도 근질거리던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됐어.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좋아하는 마음은 

삶을 이끄는 가장 고귀한 힘이 아닐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우린 서로에게 낯선 이었다.
미식축구 동호회에서 만난 존은 

데이트 신청을 하며 서점에 가자했고,
나는 책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책장 사이 협소한 공간
사장님 코 고는 소리, 우리의 속삭임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우린 수많은 이야기가 기록된 공간에서

서로의 역사에 귀 기울였고

그 고귀한 힘에 이끌림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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