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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호수 Jan 16. 2021

엄마가 되는 순간 나는 다시 전능감을 잃었다(2)

아이의 욕구가 나의 욕구가 되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이제 자아효능감의 세계에서 무력감의 세계로 내던져졌음을 깨달아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던 나는 모유수유라도 완벽히 해내고자 했지만, 그것은, 길어야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 출산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길고 긴 싸움이었다.


 하지만 험난했던 모유수유 과정보다도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밤에 길게 자지 못하는 아기였다. 머릿속에 알람시계라도 있는지 아이는 밤 12시만 되면 누가 바늘로 찌르기라도 한 듯이 갑작스럽게 자지러지게 울었다. 젖을 먹여도, 기저귀를 갈아줘도, 안고 업고 어르고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한 시간쯤 울어재낀 후 아이는 말 그대로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확히 45분 자깨서 울고, 겨우 재워놓으면 45분을 자고, 다시 깨서 울었다.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아침의 아이는 천사처럼 밝게 웃었고, 낮잠은 3시간씩 안 깨고 늘어져서 잤다.


 그리고 다시 밤이 오면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사람이 몇 달을 잠을 못 자면 정신병이 생긴다.

낮에는 천사같이 예쁜 아이가 밤만 되면 45분마다 깨서 울 때, 처음에는 애가 어디 아픈가, 젖이 부족해서 배가 고파 그러나 하며 미안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새벽 3시, 4시쯤 되면 우는 아이가 악마처럼 보인다. 네가 나를 죽이려는구나. 그냥 이대로 베란다에서 발  번만 디디면 이 모든 게 끝날 텐데 그냥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때 가장 나를 괴롭힌 생각은


"도대체 왜?"  


였다.


 삐뽀삐뽀 119는 물론이거니와 베이비위스퍼니, 아이의 잠과 관련된 육아서란 육아서는 다 찾아서 읽었다(책 읽을 시간 있었으면 잠이나 잘걸!).

아이의 잠 패턴을 분석해보겠다고 몇 시에 깨서 몇 분을 울고 젖을 몇 분이나 빨고 잤는지 밤새 공책에 기록하기를 몇 달을 했다(역시나 애 잠들면 얼른 잠이나 잘 것이지!).


결국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책에서 소개한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아이의 잠은 45분에서 50분, 1시간, 2시간, 3시간....


이렇게 천천히 늘어났다. 그렇게 10시간을 중간에 깨지 않고 쭉 자는데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내가 다양한 시도를 하든 안 하든, 노트에 잠 패턴을 기록 하든 안 하든 아이에게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의 평화는 이 아이가 잠자다 자꾸 깨는 이유를 더 이상 찾기 포기했을 때 왔다.

그냥 아이가 깨면 같이 깨고, 다시 잠들면 같이 다시 잠들고,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밤새 반복하는 선잠을 잤다. 밤새 선잠을 자니 여전히 잠이 부족해서 아이가 낮잠을 잘 때 같이 잤다.


 하루를 미리 계획하고 시간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면서 많은 일을 처리하곤 하던 나의 생활 패턴은 엉망이 되었다. 계획한 것 중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애가 낮잠을 자야 밀린 설거지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재우려고 들면 아이는 잠투정을 심하게 하면서도 쉽게 잠들지 않았고 안고 업어서 겨우 재워도 내려놓는 순간 다시 깨서 우는 것도 다반사였다. 너무 빨리 내려놨나 싶어 30분 이상 업고 있다 내려놓으면 이미 피로가 다 풀렸다는 듯이 반짝 눈을 뜨고 다시 놀자고 하기도 하였다.


계획을 하면 할수록 지켜지지 않았고, 그렇게 만드는 아기가 원망스러웠다.


왜 잠을 안 자니. 왜 잠깐도 혼자 못 노니. 왜 깨어날 때는 그렇게 울면서 깨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1시간씩 우니. 똥은 네가 싸놓고 왜 그렇게 우니. 똥이 안 싸진다고 우는 거니? 잠이 온다고 우는 거니, 잠을 깨고 싶다고 우는 거니?


영화 기생충에서의 대사처럼 절대 망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뿐이었다. 나는 차츰 아이의 욕구에 나의 욕구를 맞추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니 평화가 찾아왔다.


신생아를 기르는 경험은 나에게는 그렇게 전능감을 다시 잃는 과정이었다.


내 욕구를 내 계획대로 충족할 수 없다는 것.

밥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다는 것.

이제부터 내 인생은 이 조그만 아이의 욕구에 휘둘리며 살아가게 될 것임을 깨닫는 것.


꽤나 잘난척하면서 살았던 젊은 엄마는 이 조그만 아기의 원초적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애쓰면서, 그 작은 아기의 생리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조차 이렇게나 어렵다는 것에 한없이 작아져야 했다.


아기라서 그렇다


이 말은 무슨 만병통치약 같다. 아니, 절대 진리인가? 나의 모든 물음에 이 말 한마디면 다 답이 되었다. 아기의 행동에는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냥, 아이라서 그렇다.


다른 애는 안 그렇던데 왜 내 아이만 이렇게 까다롭지?


이 질문에도 이렇게 대답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건  이 아이가 다른 애가 아니라 이 아이이기 때문에 그렇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이 답이 바로 정답이며, 만병통치약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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