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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욱 Feb 05. 2024

도쿄에서 다카야마까지 14시간

<너의 이름은.> 기행 첫째 날

작년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나. 연말연시 연휴를 맞아 <너의 이름은.>에 나오는 이토모리(糸守) 마을의 모델이 된 히다(飛騨) 지역에 무대 탐방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영화 속에서 타키가 갔을 여정


영화 속에서 타키는 신칸센과 특급 열차를 타고 다카야마(高山)로 간 것으로 묘사된다. 도쿄에서 9시에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名古屋)에서 특급 열차로 갈아타면 4시간 12분 만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온다. 비용은 14190엔.


나름 "철덕"의 길을 걸어온 내게는 싱겁다. 타키의 여정과 달리 신칸센이나 특급 열차를 이용하지 않고 보통 열차만으로 다카야마까지 가기로 했다. 일본에는 5일간 12050엔으로 JR 전 노선의 보통 열차를 탈 수 있는 청춘 18 티켓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여름방학이나 봄방학에는 두 달간 청춘 18 티켓을 쓸 수 있지만, 연말연시 연휴에는 12월 10일부터 1월 10일까지밖에 사용할 수 없다. 연말연시에 다카야마에 갔다 오는 것 외에 장거리 여행을 할 일을 할 일은 없는 내가 청춘 18 티켓을 살 필요가 있을까? 물론 12050엔을 전액 지불하더라도 신칸센보다는 싸지만, 아깝다.

누군가 쓰고 남은 청춘 18 티켓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일본에서는 쓰고 남은 티켓을 사고팔 수 있는 금권샵이란 곳이 있다. 혹시 싶어서 들른 곳에서 5일 중 1일 분만 남은 청춘 18 티켓을 4800엔에 살 수 있었다. 쓰던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청춘 18 티켓에 찍힌 도장을 보면 도쿄에서 교토까지 여행을 다녀온 모양이다.


 


도쿄역


1월 3일이 되었다. 아침 8시 반에 도쿄의 하숙집을 출발해서 도쿄에서 9시에 도카이도선 전철을 탔다. 원래는 새벽같이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출발 시각이 늦어진 것이 나중에 화근이 된다. 출근 시간대 도쿄 전철은 지옥철이지만, 일본은 1월 1일부터 3일까지는 신정 연휴로 쉬는 곳이 많아서 비교적 여유롭게 앉아서 아타미(熱海)까지 갔다. 아타미는 수도권(도쿄와 가나가와)이 끝나고, 시즈오카(静岡)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아타미역

11시 무렵 도착한 아타미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갈 길이 먼 나는 맥도날드에서 30분 만에 점심을 먹고 11시 37분 전철을 탔다. JR은 신칸센이 아닌 보통 전철에서는 와이파이가 제공되지 않는다. 데이터 요금도 걱정이고, 배터리도 아껴야 하기에 책을 읽었다. 읽은 책은 당연히 이 책.

<너의 이름은.> 소설판

소설판을 보니 영화만 보고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은 둘이 왜 서로 기억을 못 하게 되었나 하는 점이었는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타미가 시즈오카현의 동쪽 끝이라면, 하마마쓰(浜松)는 시즈오카현의 서쪽 끝이다. 피아노 콩쿠르를 다룬 소설 <꿀벌과 천둥>의 모델이 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는 도시로, 유명한 악기박물관도 있다. 언제 한번 관광해 보고 싶은 곳인데 이번에도 통과만 하게 되었다.

나고야역

하마마쓰에서 아이치현 남부의 도요하시(豊橋)를 거쳐 나고야에 4시에 도착했다. 도쿄역에서 출발한 지 7시간 만이다. 나고야까지는 청춘 18 티켓을 사용해서 몇 번이나 와 본 적이 있다. 보 열차만으로 이동하는 청춘 18 여행은 고생스럽지만, 도쿄-나고야 구간은 철덕 초보자용 코스로 적절한 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다카야마로 가는 길인데, 일단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미센

나고야에 오면 꼭 들르는 식당이 있다. 미센(味仙)이라는 중국 음식점인데, 일본 치고는 매운 음식으로 유명하다. 나는 항상 타이완 덮밥을 시켜서 먹는다.

미센 메뉴

혀가 얼얼해지는 매운맛이 일품이다.

기후역

저녁을 먹고 기후(岐阜) 역으로 갔다. 이미 해는 저물었는데, 다카야마까지는 5시간 더 걸린다. 다카야마 역시 행정구역상으로는 기후현인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알고 보니 기후현은 에도시대까지 미노라 불리던 지역과 히다라 불리던 지역이 합쳐진 곳이다. 기후역은 평지인 남부의 미노(美濃) 지방에 위치해 있고, 다카야마는 산지인 북부의 히다 지방에 위치해 있다. 과연 미츠하가 "이런 마을 싫어! 다음 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오지다.

미노오타역

다카먀아본선은 나고야에서 도야마까지 연결하는 노선인데, 철도가 달리는 지역은 완전히 산지다. 전철의 창 밖은 가로등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흑이다. 나름 일본의 지방 도시는 많이 다녀 본 편이지만, 창 밖으로 편의점이나 주우소, 가로등 불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지인 곳은 처음인 듯... 여행을 떠나기 전전날 이시카와, 도야마 지역에 지진이 발생했는데, 다카야마까지 가는 데는 문제없었다.

미노오타역에서 탄 다카야마행 전철

결국 다카야마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 힘든 몸을 이끌고 역에서 호텔에 체크인했더니 10시 15분. 집에서 호텔까지 14시간 가까이 걸렸다. 전철 탄 시간만 계산해도 12시간 정도 되는 듯. 당연히 도쿄에서 서울 가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드디어 도착한 호텔

도착한 날은 호텔에서 자고, <너의 이름은.> 무대는 이튿날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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