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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by 김현욱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북마리아나제도가 미국의 영역이 된 것은 1944년 8월이다. 북마리아니제도는 B29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폭격하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일본은 제공권을 상실한 상태였기에 이후 일본 본토에 대한 폭격이 이어졌다.


도쿄대공습 자료센터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등 일본의 주요 도시가 폭격의 대상이 되는 가운데 육군 시설이 있는 주요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폭격을 당하지 않은 도시가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 도시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척이 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1945년 8월 6일 8시 15분, 폭격으로부터 안전해 보였던 그곳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되었다.


04화 4.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을 개발한 미국은 그 위력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서 그때까지 폭격 피해가 거의 없었던 곳을 후보지로 삼았다. 교토(京都), 니가타(新潟), 고쿠라(小倉), 그리고 히로시마(広島)가 이름을 올렸다. 천년의 고도로 알려진 교토가 오래된 절과 문화재가 많다는 이유로 투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후쿠오카 근처의 고쿠라는 8월 9일,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될 예정이었으나 상공에 구름이 껴 있었다는 이유로 나가사키로 변경되었다.

당시 히로시마의 군사시설

원폭 투하된 곳은 히로시마역에서 버스나 노면전철로 2~30분 걸리는 곳이다. 모토야스강(元安川) 하구의 삼각주에는 원폭자료관 등 관련 기념물들이 밀집된 평화공원이 있다.

모토야스강을 건너 가면 나오는 히로시마 평화공원

평화공원 내에서 특히 가 봐야 할 곳은 박물관 원폭 자료기념관이다. 입장료는 성인 200엔, 중고생 100엔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원폭이 투하된 참상을 전하는 전시물이 많았다.

원폭의 피해 상황을 보여주는 전시물들

전시물 중에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불상과 세발자전거였다.

파과된 불상과 자전거

핵폭탄이 유발한 열폭풍과 방사선 등으로 히로시마에서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원폭의 피해자는 일본인만이 아니라는 전시로 조선인 피폭자에 대한 전시도 있었다. 일종의 알리바이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리틀 보이와 팻 맨의 모형. 8분의 1 크기라는데 생각보다 작다.

자료관에는 일본인 외에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있었다. 서양인들도 많았고, 외관상 일본인과 구분이 잘 가지 않지만 중국어로 떠드는 관광객들도 있었다. 서양인 중에는 원폭을 투하한 미국인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원폭 자료기념관 앞에는 "편히 쉬소서.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安らかに眠って下さい。過ちは繰り返しませぬから)"라는 글이 새겨진 위령비가 있다.

"편히 쉬소서.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위령비. 원폭 돔이 멀리 보인다.

이 문구에 대해서는 일본의 보수우파로부터 주어가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만일 주어가 일본이라면, 원폭을 투하당한 피해자가 왜 반성을 해야 하냐는 것이다. 나로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으니 반성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싶은데,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를 피해자로서만 기억하는 일본에서는 논란이 되는 문구인 것이다.


평화공원에는 평화자료관 외에 위령비가 있는데 조선인 위령비가 있다.

조선인 위령비

원폭 투하 전날인 매년 8월 5일, 조선인 위령제가 치러진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징용으로 끌려 온 조선인 7만 명이 피폭당했고, 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日本は謝罪を」と韓国人被爆者 戦前、戦時期の植民地政策問う|47NEWS(よんななニュース)


2023년 히로시마에서 G7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개최국인 일본의 총리였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가 히로시마 출신이었기 때문에 히로시마에서 개최되었던 것이다.

G7 정상회담 기념관. 기시다 후미오가 찍힌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를 기념하는 G7 정상회담 기념관이 평화자료관 옆에 있었다. 굳이 평화공원 안에 이런 기념관까지 만들다니 히로시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기시다가 총리를 그만둔 지도 1년이 넘는데 치적 자랑 용 건물은 없애도 되지 않을까?


원폭 돔

히로시마 평화자료관의 건너편에는 원폭 돔이 보인다. 원폭 투하 당시 물산장려관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원폭의 참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소로 남아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202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피폭자 단체 협의회의 뉴스가 아직 핫한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문제와는 별개로 핵무기를 사용한 전쟁이 두 번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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