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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Aug 13. 2023

연남동 나들이

주말 산책 

#1 카츠 이야기


맛집 멋집 투어가 전 국민 취미가 된 게 최근이다. 유튜브와 인스타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리고 체감으론 코로나19가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5~6년 전까지는 미식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는 곳들은 숫자가 좀 정해져 있었고 그렇다고 살인적인 대기가 있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계속 먹방, SNS, 매체가 집중 되면서 요식업도 소비도 빅뱅처럼 폭발했다. 예전이 그립긴 하다.

처음 일본식 카츠를 만났던 건 삼청동 고즈넉한 골목에 우아하게 등장했던 긴자바이린이었다. 실제 긴자에서 오래 영업한 노포라는 것도 좋았고 위치도 좋았다. 원래 돈카츠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는 먹어보고 싶어서 바로 가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로선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고 그래도 고급 식당이니까, 하면서 먹었다. 그리고 계속 가진 않았던 것 같고. 이후에도 긴자바이린과 안츠 정도가 유명할 뿐 붐이라고 할 건 없이 몇 년이 흘러갔다. 최애 메뉴가 아니라 그렇게 자주 찾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이게 일본식 카츠로구나, 하며 즐거운 충격을 받았던 건 대흥역 돈카츠 윤석. 여기 대체 왜 닫았는지 모르겠다 ㅠ 옆에 도꼭지는 그대로 영업 하던데. 카츠 전성기가 온 지금도 나에겐 윤석이 제일 정갈하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업장이었다. 경의선 숲길 옆 작고 아늑하게 자리한 것도 그렇고 카츠 뿐 아니라 밥, 된장국, 반찬까지 모든 것이 섬세하고 정갈하여 정말 일본 골목의 식당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코로나 직전에 인기가 많다가 코로나 동안에 좀 여유있게 먹을 수 있어 좋았고 얼마 후 문 닫은 걸 알게 되었다.

윤석이 한참 인기를 끌 무렵 정말이지 생뚱맞은 위치인 갈월동 쪽에 문을 연 오제제. 꽤 가까운 동네라 버스 타고 오다가다 하다가 발견했고 지금같은 미친 웨이팅 생기기 이전에 한번 가서 먹었었다. 호텔 느낌 나는 인테리어와 서비스, 카츠도 맛있었다. 그러나 곧장 인파가 몰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최근 합정역 근방이 카츠의 격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카와 vs 크레이지 vs 최강금 vs 정돈 도장깨기 리뷰도 여기저기서 보게 되었다. 추억의 윤석은 사라지고 오제제도 인파 때문에 못 가던 중 궁금해하다가 원격 줄서기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한번 시도해 보았다. 확실히 원격 줄서기는 괜찮은 기술인 것 같다. 물론 그것도 시간대에 따라서 맞추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너무 욕심내지 않고 등록을 하면 준수한 시간 안에 먹을 수가 있다. 내가 시도한 곳은 크레이지 카츠. 카와가 궁금했는데 일요일은 휴무라 일단 여기부터 시도. 


카츠의 정석과 같은 모습의 한 상. 히레까스 정식이다. (14천원) 카츠 정식은 먹을 때마다 느끼지만 구성 대비 가격이 좋은 것 같다. 요새 여의도 점심이 무슨 메뉴를 먹어도 만원 초반인데 그에 비하면 이런 웨이팅 많은 집에 정갈한 한상이 이 가격인 건 참 괜찮은 편이다.

맛있었다. 그런데 아 뭔지 모를 아쉬움. 고기를 많이 못 먹는 나에겐 약간 고기 양이 좀 많은 느낌이 있었고, (튀김옷이 꽤 얇은 편이었고) 아주 묘한 차이 같은데 밥이나 된장국도 약간 아쉬웠다. 먼저 접한 게 윤석이어서일까. 왠지 그곳은 작은 장소에서 하나하나 모두 신경쓴 것 같은 느낌의 한 상이었는데 여긴 묘하게 2% 부족한 듯한 느낌이 있었다. 아니면 추억이 미화된 것일수도 있고. 

리뷰들을 봐도 대부분 호평이 몰리는 곳은 카와카츠와 오제제인 것 같다. 나야 고기의 미세한 맛 차이까지 잡아내는 사람은 아니고 그보단 전체적인 밸런스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오랜만에 먹은 카츠는 평균 이상이랄까, 만족스러웠다. 밥은 한 번 리필하고 반찬과 소스까지 깨끗하게 다 비우고 나왔다.


#2 연트럴 파크



소화시킬 겸 합정의 끝에서 연남까지 죽 걸었다.

대로 말고 한 블록만 안으로 해서 걸어가면 넓은 길에 가로수가 우거지고 사람이 적은 한적한 길이 나타나서 산책하기에 좋다. 이쪽은 드문드문 단독주택들도 남아 있고 아직 밀도가 낮아 더 좋은 동네다. 지명으론 서교동인데 좀 넓네. 합정과 홍대를 잇는 대로의 북쪽 동네다. 아직 주택가도 섞인 이 동네에도 조금씩 좋은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다.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검색을 했더니 연트럴 파크 맨 끝에 피에트라 라는 집이 검색되었다. 어차피 걸을 겸 하늘채 아파트까지 쭉 걸어서 길을 꺾고 숲길로 들어섰다. 여기도 더워서 사람은 없었지만 꽤 나무가 우거지고 조용한 게 걷기에 좋았다. 아파트가 나타나는 후반부부터는 확실히 상점들의 밀도가 확 낮아지면서 동네 풍경이 아름답다. 이윽고 맨 뒷쪽에 다다르면 여기만 마치 하나의 작은 시골 동네처럼 낮은 건물과 정원이 모여있고 각 가게마다 예쁜 표지석까지 앞에 세워놓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리스본 책방, 피에트라 젤라또, 그리고 땡스오트 요거트 가게 등. 사랑스런 가게들이다. 


더위와 습도에 지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쑥 들어갔다. 바윗돌 같은 의자 4개가 놓여있고 꽤 현대적인 텅 빈 공간이었다. 으어. 그런데 아이스크림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컵(2스쿱)에 9천원이었다... 뭔가 정겨운 연남동 길을 쭉 왔다가 갑자기 청담동 가게로 쑥 들어온 느낌. 2명이 온 무리들이 모두 한 컵을 시켜 아껴아껴 먹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하겐다즈 미니컵이 7천원이라 안 사먹고 있었는데 뭔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너무 더워서 자두&맛차 소르베를 시켜서 우리도 아껴아껴 먹었다.

멋지고 맛도 좋고 재료도 고급이겠으나 한 컵에 9천원은 합리적인 가격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연남동에선... 요즘엔 실질보다는 미적인 데코레이션이나 기분을 풀기 위한 1회성 소비용 가격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아쉽다. 그치만 일본도 장기 불황을 거쳐 오히려 가성비 제품과 아이디어들이 더 늘어났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피에트라 바로 옆 리스본 책방.

여기 너무 좋다... 수많은 독립책방 중에서도 뭔가 분위기도 내용도 참 맘에 드는 곳!

앞쪽의 지중해 느낌나는 마당도 좋지만 책방 안 쪽은 작지만 좋은 책들과 상품들로 가득가득 채워져 있다. 2층에 가면 나의 생일에 맞춘 책 상품도 있다. 365일 각 날짜에 맞추어 그 날짜에 관련된 책들로 구성된 상품인 것 같다. 아이디어 좋고. 

책이 좋다는 나마저도 관리 때문에 왠만하면 빌려보고 있으니 참 할말은 없다만 이런 책방들은 오래오래 영업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한참을 구경만 하다가 이사 앞두고 딱 이 책을 사야겠다는 맘을 못 정해 그냥 나오고 말았다. 이사 후 서재를 제대로 정비하면 그때부터는 여기도 자주 와야지. 지난번 제주 소리소문 책방도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여기도 마음 속의 원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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