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뭘 할 때 즐거운지 아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부럽다.
2년 전, 출장을 가던 중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평일 낮에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세상엔 회사원이 아닌 사람들도 많구나. 나도 돈이 많으면 매일 저렇게 놀면서 지내면 좋겠다. 그러려면 돈이 많아야 하니, 우선 열심히 일 해야겠지. 생각하며 다시 출장길을 나섰다. 몇 달 뒤면 출산휴가를 들어갈 계획이었기에 한동안 그것만 바라보며 지냈다.
8월 초 출산 예정이었던 나는 6월 중순부터 휴가에 들어갔다. 한 달 정도까지는 좋았다. 동네 산책을 하기도 하고 카페를 가기도 했다. 요가를 다니기도 했지만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뿐,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했다. 정적인 운동보다는 동적인 운동을 좋아한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의 시간은 꽤 길었고 특별한 취미도 없었던 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몇 달을 목놓아 기다렸던 휴가는 한 달 만에 점점 지루 해 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가끔 쉬니까 좋았던 것이다. 휴가 기간이 짧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지만, 기간이 길어지자 무료해지기 시작한 것. 무료함을 넘어 답답하기까지 했다. '아 이렇게 빈둥빈둥 노는 건 재미없구나.' 몇 달을 기다린 휴가가 평범해지는 순간이었다. '몇십 년을 일하고 정년퇴직을 했는데 이런 기분이라면 어땠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꿈꾸는 삶이 이런 모습은 아니라는 걸 미리 알게 되었으니까. 노후에 여유로운 삶만을 꿈꾸며 지금을 희생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 금세 무료해졌다.
열심히 돈 벌어서 부자가 된다 한들, 이렇게만 지내야 한다면 즐겁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도 한두 달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난 제대로 놀 줄도 모르고, 무엇을 할 때 즐겁고 스스로 만족스러운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취미는커녕 취향도 잘 알지 못했으니까. 열심히 일하다 보면 쉬는 날엔 그저 쉬기에 바빴고, 가끔 찾아오는 휴가에는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낙일뿐이었다. 이런 긴 연휴가 찾아오면 쉬기만 해도 그저 좋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 뭘 해야 재밌을까? 아니,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질문을 던지며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러다가 TED라는 영상을 발견했다. 내가 궁금해하던 주제의 강연이 많이 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TED 강연을 찾아보았다. 행복, 자아, 일, 심리 등 궁금한 분야는 점점 더 넓어졌고, 관련 책만 20권 이상 구매해서 보게 되었다. 사람의 호기심이란 아무것도 모를 때보다 알아가는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법. 보면 볼수록 궁금한 게 너무 많아졌다.
신기한 건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됐다. '아, 호기심을 따라야겠구나.' 계속해서 배우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0대 80대가 되어서도 내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 계기. 그러다 우연히 우리나라 1세대 철학자 김형석 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100세까지 현업에서 뛰며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분이셨다. 강연의 마지막쯤 들려주신 인생에 대한 지혜가 너무 와 닿아 다이어리에 메모를 해 두었다. 인생의 후반기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래의 3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1.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2.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
3. 내가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언제 즐거움을 느끼는가?
나는 언제 만족감을 느끼는가?
출산휴가 3개월을 보내며 깨달은 것들은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퇴사를 하게 된 것도, 건설사 이직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게 된 것도 그때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2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어떤 것에 호기심을 느끼는지, 항상 생각한다. 한 순간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며 꾸준히 하나씩 발견해 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발견한 건,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할 때 크게 즐거움을 느끼고, 이것을 나눌 때 큰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커피 한잔 하며 생각을 나눌 때, 특히나 책이나 사람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고 느낄 때, 하루 종일 들 떠있을 정도로 즐거웠다.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내 생각을 글로 써내려 갈 때, 글을 통해 소통할 때에도 행복함을 느꼈다.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노후에 찾기 시작했다면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나이와 상황에 따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다를 테니. 어쩌면 이런 즐거움들은 지금이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아 빈둥빈둥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내가 들여다본 순간들은 돈이 많이 필요한 것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는 빈둥빈둥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휴식은 매우 달콤한 것이며,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시간을 통해 창의적이 되기도 하니까. 다만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는 않기로 한 것. 그냥 열심히 일한다고 내가 꿈꾸는 무릉도원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를 더 깊이 알아가며 100세까지 지루할 틈 없는 인생을 만들기로 했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뭘 할 때 즐거운지 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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