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소 Oct 11. 2022

수업이 시작됐다

낯가리는 강사의 강의 기록 1

14시 25분. 따르릉.     

수업 시작을 알리는 학교 알람이 울려 퍼진다. 오늘 중학교 첫 강의를 하는 날이다. 잠을 설쳤다. 머리만 대면 10초 후 잠드는 내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긴장과 설렘을 뇌는 구분하지 못한다고 어느 강사가 말했다. 긴장될 때는 ‘나는 설렌다.’라는 말을 내뱉어보라고 했다. 그 말을 할수록 설레어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왠지 아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다. 수업 시작 전 노트북과 학교 TV 모니터를 연결하는데도 손이 떨린다. 다리도 떨린다. 이렇게 떨고 있으니 현실 맞다. 1초씩 지나가는 초침이 하나씩 느껴진다.      

아이들이 나에게 집중한다. 나는 처음 강의 시작할 때 자기 소개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수업을 왜 신청했는지 알지 못했다. 10분 동안 쉼 없이 화면을 띄우고 설명했다. 설명할 내용은 끝도 없이 펼쳐졌다. 공들여 선택한 그림과 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질문한다기보다는 자문자답이었다. 설명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정신을 차리니 쉬는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시간이 남아서 무엇인가 해야 하는 게 더 참기 힘든 시간이었을 듯하다.      


10분 쉬는 시간이 지나고 7교시가 시작됐다. 페이스북, 애플 창업자가 공통으로 한 말, 워런 버핏이 중요하다고 한 것, 한국의 지성 이어령 박사가 꼭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글쓰기 능력이다. 강의안을 만들 때는 혼자 기분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런 걸 왜 여기다 적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쳐다보니 이미 초점을 잃은 듯했다. 수많은 강의를 들으면서 욕했던 강의를 내가 하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설명만 하는 강의, 수업 듣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강의, 질문하지 않는 강의, 소통하지 않는 강의, 기계적으로 말만 하는 강의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 하고 있었다. 강의를 못 하려고 마음먹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 노력을 한 것이었고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애쓴 것이다. 강의도 막상 해보니 그동안 강의했던 사람들이 다시 보인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그저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1분 글쓰기에 대해 짧게 설명한다. 오늘 일과를 생각나는 대로 1분 동안 적어보라고 했다. 비슷하지만 다른 일과를 적었다. 시간순으로 적은 친구, 아침이나 점심을 적은 친구, 지금 이 순간을 적은 친구도 있다. ‘나에게 글쓰기란?’ 제시어로 3분 글쓰기를 하자고 말했다. 아이들이 이 수업을 선택한 것이 궁금했고, 글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글에서 드러날 것 같았다. 아이들은 달리기 선에서 달릴 준비 하듯이 펜을 잡고 글씨를 쓰기 위해 몸을 숙였다. 

  ‘준비, 시작!’

아이들의 3분 글쓰기가 시작됐다. 아이들이 안 쓰고 딴짓하며 어떡하는지 걱정했는데 모두 집중해서 글을 쓴다. 쓸 말이 없으며 어떡해요? 그 말부터 시작해봐. 저 펜이 안 나오는데 어떡하죠. 다른 거로 해. 저 몇 줄 못 적었는데. 쓸 수 있는 만큼 적어. 

집중하며 글 쓰는 모습이 고양이 같다. 3분이 끝났다.  

    

- 글쓰기는 나에게 어렵다.      

- 나에게 글쓰기란 성공이자 기회이자 희망이었다.      

- 나에게 글쓰기란 내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기 위한 도구이다.     

- 나에게 글쓰기란 남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것이다.      

- 과제처럼 어렵지만 잘 쓰면 기분이 좋다.     

- 나에게 글쓰기란 청소다.   

  

여섯 명 아이들이 쓴 글쓰기 첫 문장이다. 아이들에게 돌아가면서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게 했다. 들릴 듯 말 듯 한목소리로 한 명씩 자신의 글을 읽었다. 글쓰기는 어쨌든, 어렵고 힘들지만 써야 한다는 결론을 향했다.     

7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린다. 드디어 끝이 났다. 인사도 못 한 채 가져왔던 책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노트북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교실 문을 연다.     

어쨌든, 끝났다.      

다음 주는 또 어떡해. 



작가의 이전글 너무도 평범한 가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