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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Feb 22. 2021

아프고 난 뒤에 깨달은 것들

임파선이 퉁퉁 부었다. 잠을 잘 못 자서 목이 뻐근한 줄 알았는데 목 옆 임파선이 눈에 보기에도 확연히 부어올랐다. 고개를 돌리면 멍든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고 서너 개의 멍울이 만져졌다.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이 뽈록 튀어나왔다. 단발머리라 그런지 그 차이가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무서웠다. 큰 병이면 어떡하지. 


병원에 가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로 혹은 눈에 띄게 컸다. 초음파 검사를 했다가 큰 병인 것을 알게 될까 봐 일부러 동네 작은 병원을 찾았다. 큰 병이었으면 정말 더 큰일 날뻔한 행동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염증인 것 같으니 항생제를 먹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약을 먹으니 괜히 기분만 우울해지고 멍울은 가라앉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3일이면 가라앉을 것이라 했는데 2주 뒤에도 상태는 똑같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단순 염증이면 항생제만 먹어도 된다던데, 이거 정말 큰 병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시 큰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 검사가 가능한 병원은 주말에나 예약이 가능했다. 그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멍울이 생긴 12월 초에는 위염으로 수액까지 맞은 터였다. 회사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 아닐까. 이건 아무리 봐도 회사 스트레스인 것 같았다. 


드디어 예약 날이 왔고 의사 선생님은 멍울을 만져보더니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위험한 위치는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초음파 검사를 해봅시다."


초음파 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차가운 액체를 목에 바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임파선이 부은 걸까. 임파선이 붓는 원인 중에 스트레스가 가장 흔한 이유라고 했다. 개인적인 일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한 변화가 있다면 회사였다. 


초음파 결과를 보고 의사 선생님은 본인이 보기에 곧 가라앉을 것 같으니 2주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르겠다. 똑같은 내 삶이 갑자기 더 소중해졌다. 멍울이 가라앉지 않던 4주의 시간 동안 삶과 건강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더 오래 살고 싶은데. 아직도 이 찬란하고 다채로운 세상을 다 즐기지 못했는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몸으로 깨달았다.


다행히 2주가 지나자 임파선 멍울은 거의 다 가라앉았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정신 건강을 돌보기로 했다. 그동안 잘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삶의 중심에 정신 건강을 두기로 했다. 그동안 멘탈이 세다는 생각으로 잘 읽지 않았던 '마음 건강'에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불평불만을 입에서 지우고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고 말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면 인위적으로라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삶에서 부정을 지우기로 다짐한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가끔은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나온다. 그럴 때면 책을 본다. 사진첩에 저장된 책의 글귀를 본다. 모든 것에 감사하자. 내딛을 수 있는 발걸음에도 감사하고 나를 감싸고 있는 공기에도 감사하자.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이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보내자. 


감사하게도 임파선이 가라앉은 후 휴직이 시작되었다. 반복되는 휴직은 삶을 무기력하게 해서 싫어했는데, 정신 건강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삶을 긍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정을 지우는 태도를 키우기 시작한 후로 나는 훨씬 행복하다. 복직해도, 다른 회사에 가도, 어떤 삶을 살게 되어도 이 태도를 가장 최우선으로 둘 것이다. 너무도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내가 건강한 삶의 소중함을 아픈 뒤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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