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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틀리Lightly Jun 01. 2020

멀티 페르소나 2화 - 먼 길을 돌아

다시 찾은 나와의 대화, 흘러버린 사 개월, 

    오랜만이야. 응 오랜만이야.

어디 여행 간 줄 알았어 연락이 오랫동안 안 되더라? 기억이 잘 안나, 의미가 없는 시간 때문일까.

그래 뭐하고 지냈어? 알바를 다행히 구해서 알바를 하고, 자취 시작하는 친구 집들이도 가고, 이케아도 처음 가보고 이것 저거서 하면서 지냈어.

오 재밌게 지냈네. 재미... 아니 재미는 꿈같아서 꿈꾸긴 했지만 선명히 기억나지 않고 그저 그랬을 것이다라는 짐작만 남아있어.

별로 유쾌하지 않았나 보구나? 응, 재미는 찰나이고 불쾌한 상태가 계속됐어. 제대로 준비한 것이 없이 제대를 하고 코로나 19가 터지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물론 의지가 있었다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를 했겠지.

너는 어땠는데? 집에서 유튜브만 보고, 먹고, 자고, 일어나서 알바 다녀오고, 다시 먹고, 자고, 반복했어 이 "지긋지긋한" 쳇바퀴를.

원래 하려던 건 있었어? 있던 것 같아, 이것도 꿈같네... 꿈을 꾸었지만 무슨 꿈을 꾸었는지 남아있지 않아..


    지금 다시 돌아온 이유는 뭐야? 그렇지 지금 다시 돌아온 이유는 지금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야.

무슨 말 하는 거야? 말 그대로 지금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라고, 이전에는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어. 정신을 가다듬는 중이야. 정상적인 누구에게든 평범하다고 인정할 만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그 대답 말이야 긍정적인 거지? 긍정적이지. 발전적이기도 하고. 최근에 일련의 사건(event)을 겪으면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어. 사건(accident)은 없었지만 감정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면서 극도의 우울감을 느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인생의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졌어, 모든 단어에 '감'이라는 글자가 있듯이 모두 내가 느끼는 감정상태였어. 명확하게 우울증이라서 입맛이 없어진다거나 문뜩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내가 느낌 감정은 확실해.

상태가 많이 안 좋았구나. 나는 애초에 멘털이 약해서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주 우연한 기회로 어쩌면 강한 끌림으로 한 드라마를 보게 됐어. 애매모호하지만 안 좋아지고 있던 감정 상태에서 그 드라마를 보는 순간 아슬아슬한 감정의 긴장 상태가 시작됐어. 누가 먼저 밟기라도 하면 바로 깨져버릴 거 같은 살얼음판으로 변했어. 그 드라마는 '인간 수업'이야.

'인간 수업'? 그 드라마 넷플릭스에서 엄청 유명했던 드라마 아니야? 좀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았어? 응 내 멘털은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서 일부러 피해야 하는 드라마였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한순간에 몰입해서 시청했어. 그리고 이틀 만에 마지막화까지 완결을 냈지. 첫날과 다음날이 지나면서 나는 인생에 대해 뚜렷한 생각의 과정이 없이 감정만이 요동쳤어. 바닥을 향해.

심각했구나. 친구와 문자를 하면서 내가 감정을 토해내기 시작했어. 자기 가학적인 말부터 인격모독적인 말까지 자타를 가리지 않고 감정을 배출해댔지. 이성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무슨 생각인지도 내가 하는 일인지도 모른 채 막 문자를 보냈어. 정신을 얼추 차리고 보니 정도가 너무 심한 말을 엄청 했더라고. 일순간에 변해버린 나의 모습에 엄청 실망하면서 친구에게 사과를 했고, 대인 관계를 조금 중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내 삶보다 열중한 대인관계를 잠깐 멈추고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기로 했어.


    오? 다행이네 그래도 스스로 멈추고 반성하기 시작했다는 건 긍정적인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겨우겨우 유지하던 밑바닥을 와장창 산산조각 내는 일이 생겼어. 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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