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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Jan 19. 2019

36. 개연성 없는 한 해를 소망하며.

감말랭이를 먹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감말랭이를 뜯었다. 감말랭이를 먹어본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쭈글쭈글해서 열심히 씹을 필요가 없는 음식은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감말랭이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과연 한 입 베어 물어보니 말랑하면서도 촉촉하고 은은한 단맛을 가진 감말랭이가 마음에 들었다. 아내에게도 권했더니 곶감이랑 비슷한데 곶감보다 먹기가 편한 것 같다며 좋아했다. 아내는 갑자기 곶감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옛날 얘기가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곶감을 가지고 가는 할머니에게 호랑이가 나타나 곶감을 하나 내놓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을 가하겠다는 그런 이야기. 나는 맞는 것 같기도 한데 할머니가 운반하던 것이 곶감이었는지 떡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곶감이 맞다 해도 할머니가 호랑이에게 곶감을 주었는지 안 주었다면 할머니는 무사할 수 있었는지 대체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내는 이미 할머니 곶감 호랑이를 검색하고 있었고 어떤 익숙한 이야기를 찾아 나에게 들려주었다. 옛날에 우는 아이를 달래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너 자꾸 그렇게 울면 호랑이가 온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아이는 계속 울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곶감 이야기를 했고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이 대화를 밖에서 듣고 있던 호랑이는 자기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곶감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했지만 두려움을 유발하는 존재가 인지할 수 있는 두려움 정도가 이야기의 골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던 호랑이와 곶감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야기 속 할머니의 부재는 나를 놀라게 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것이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다음 이야기 전개가 밑도 끝도 없다는 점이었다. 아내가 찾은 한국민속백과사전 정보에 의하면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3부로 구성된 이야기의 1부에 불과했다. 2부에서는 소도둑이 등장한다. 호랑이가 곶감이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소도둑이 침입한다. 도둑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밤으로 보이는데 어둠 속에서 소도둑은 호랑이를 소로 착각하고 호랑이 등에 올라탄다. 호랑이는 자기 등에 탄 존재를 곶감으로 착각에서 겁에 질려 어딘가로 질주한다. 날이 새고 소도둑은 자신이 소가 아닌 호랑이에 올라탔음을 깨닫고 황급히 내려 고목나무 구멍 속으로 숨는다.


3부에서는 심지어 곰도 등장한다. 호랑이를 지켜보고 있던 곰은 호랑이 위에 있던 것이 곶감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나무 속에 숨은 사람을 같이 잡아먹자고 호랑이에게 제안한다. 곰 자신이 나무 구멍에 앉아 방귀를 뀌면 안에 있던 사람이 못 버티고 나올 거라면서 실행으로 옮긴다. 나무 속에 있던 소도둑은 구멍에 앉은 곰의 불알을 끈으로 잡아당겨 곰에게 상해를 입히고 놀란 곰과 호랑이는 도망간다. 3부까지 들어보니 (원래 이야기는 1,2,3부 구분이 없다) 왜 내가 어릴 때 1부까지의 이야기만 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이의 머리맡에서 곰 불알 이야기를 읽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아이에게 들려주던 이야기가 여러 입을 거쳐 주막에서 술자리를 가지던 사람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면서 이야기가 확장되고 그 성격이 급격히 지저분해지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지저분하다고 해서 꼭 이야기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야기가 그렇듯 이 민담도 우리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와 아이의 일상에 등장하는 호랑이, 소도둑, 곰은 언뜻 보기에는 이야기를 위해 등장시킨 억지스러운 설정 같지만, 사실 예기치 못한 인물이나 사건의 개연성 없는 등장이야 말로 삶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어머니와 아이가 있는 공간에는 하얀 털이 몽실한 토끼와 자장가를 들려주는 종달새가 찾아올 것 같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울어대는 호랑이다. 호랑이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호랑이를 소로 착각한 소도둑이고 그다음에는 호랑이의 착각을 바로 잡아주려고 등장하는 곰이다. 호랑이 소도둑 곰은 이렇다 할 연관이 없는 존재들이지만 착각이라는 매개에 묶인 채 공포를 엔진 삼아 이곳저곳을 질주한다. 착각과 공포야말로 한 사람의 삶에서 지속적인 전환을 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원동력이다.


우리는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A라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B라는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면 그건 B가 넓고 곧은 길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B가 A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결국에는 착각으로 밝혀질) 막연한 기대 혹은 A에서 느끼는 만성적인 공포감에서 달아나고 싶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A에서 B로 진입하는 것이 개연성이 적은 선택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럴싸한 스토리텔링 원한다. 내가 A에서 경험하면서 습득한 이런저런 중요한 능력들(알고 보면 자잘하고 잡다해서 A가 아닌 어느 곳에서나 얻을 수 있는)이 B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길 요구하고 심지어 스스로를 속이는 이 행위에 가산점까지 부여한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라면을 끓이면서 터득한 면발의 질감을 관찰하는 섬세한 눈과 양념을 최적의 타이밍에 투하하는 결단력이 시장의 요구를 읽어내고 기업의 경영 방향을 적기에 결정해야 하는 컨설턴트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을 확신한다 따위의 말과 다를 바 없게 들린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불킥을 하게 됨을 물론 소등과 함께 나의 존재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맘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올해 내가 할 여러 선택의 이유가 착각과 공포에 기반하고 있음을 미리 인정하겠다. 때로는 열등감 때문에 경멸 때문에 무기력 때문에 중요한 선택을 하겠다고 선언하겠다. 부정은 긍정보다 확실하다. 싫다는 감정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싫어질 수 있지만 싫은 것은 시간이 지나도 싫다. 누군가는 이렇게 선택하다가는 결과적으로 덜 싫은 선택만 하다 끝나는 것이 아닌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삶이 그렇게 일차원적이고 단순하지가 않다. 다시 말하지만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가 가르쳐 준 교훈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이벤트에 항상 개연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는 느슨한 인과관계에 있다. 허물어진 인과의 틈에서 달콤 쌉싸름한 과즙이 흘러나온다. 이 과즙이야말로 개연성 없는 인생을 신뢰한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선물이다.


내일 아침 이 글을 다시 읽으면 이불킥과 함께 나의 존재를 소등하고 싶어 질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밝히는 것인데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허브 차를 우려 마셨을 뿐이다. 감말랭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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