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펜 Aug 05. 2018

'패스트 팔로어'로는 충분히 살아왔으니 말이다

'사라진 실패'를 읽고

사라진 실패 - 신기주


이름만 무수히 들어봤던 한국 대기업들의 뒷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 실패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본인이 잘하는 것을 포기하고 신사업이나 과거에 집착하다 실패하기도 하고(웅진,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집안싸움에 휘청이기도 한다(금호). 개방적인 기업문화와 기술 혁신으로 성공했으나, 규모가 커지면서 폐쇄적인 서비스 회사로 변해버리기도 한다(NHN). 아 물론 한국 기업의 주특기인 비리(오리온, 신한, 신세계 등등)도 빠질 수 없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나 삼성의 이야기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난 삼성의 체질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아이러니다. 삼성 성공신화의 근간인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이제는 반대로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 모든 요소에서 뒤처져있던 한국 기업들이 엄청난 속도로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탑다운식 의사결정체계가 필수적이었다. 강력한 오너십을 토대로 선두그룹을 잡기 위해 빠른 속도로 캐치업 전략을 실행하고, 전후방 산업의 연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 그룹의 구조와 주력 산업을 수직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그들은 정상 혹은 그 가까이에 올라섰고 성공 신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그들은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을 놓치고 말았다.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읽지 못했고, 그 대가로 스마트폰 OS시장을 주름잡는 한 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삼성은 혁신과 진화 중 오직 진화에만 최적화된 구조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혁신은 어색한 것이었고 그 몫은 항상 애플과 구글의 것이었나 보다.  


물론, 이는 그들의 성공 뒤에 감춰져 있던 하나의 실패일 뿐이다. 그래도 삼성은 삼성이다. 혁신이 없든 뭐든 삼성이 이룩한 것은 성공 신화가 맞고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저자도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들만큼 경이롭게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잘 실행하는 기업은 없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의 관계자는 말한다. 

“맨 먼저 시장에 도착한다고 해서 맨 나중에 웃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패스트 팔로어의 어두운 이면을 살펴볼 때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삼성은, 많은 한국 기업은, 그리고 우리는 ‘팔로어’, 추격자이다. 추격자는 지치기 마련이다. (토요타가 속도를 내기 위해 하청업체를 쥐어짜다 지쳐 나가떨어진 것처럼). 추격에 성공하더라도 시장을 리딩 하거나 혁신을 통해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가 따라잡았던 많은 일본, 미국 기업들처럼 추락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뒤쫓아 무섭게 추격해오는 것이 꼭 일본을 추격하던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요즘 들어 세상은 참 동전의 양면과 같고, 거미줄과 같이 엮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랑거리인 한강의 기적 그리고 삼성을 비롯한 여러 한국 기업의 신화가 우리 사회의 못난 수직적인 구조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항상 남과 비교하고, 따라하고, 쫓아가기 바쁜 사회가 꼭 삼성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과 닮아 있다. 성공을 가져온다는 탑다운식 소통구조를 맹신하다 상위계층의 탈선과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의식이 부재하여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많은 진통을 앓고 있다. 하나의 목표 아래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이 매몰되는 것 또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까내릴 생각도 없다. 어쨌든 그들이, 그리고 한국이 어느 한 측면에서 성공을 이룬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 또한 한국의 경제적 발전에 따른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대학교 수업 때 어느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잃어야 얻는다” 


시간과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를 얻게 되면, 하나를 잃게 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잃음으로써 얻는 것들이 있다. 이제 그만 성공신화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그 동안 얻기 위해 잃어왔던 것을 좀 돌아봐도 괜찮지 않을까. 한국 기업, 한국 사회, 한국인의 체질을 한 번 바꿔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 모두 패스트 팔로어로는 충분히 살아왔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본질 - One Life, One Chan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