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엘 Dec 13. 2023

안동 3인방의 경복궁 산책

경복궁, 그리고 인생의 문

안동 3인방은 안동김씨(남1,여1) 안동권씨(여1)로 구성된 멤버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본사에 근무할 당시, 친하게 지낸 직원 모임이다.


우리는 가끔 점심시간을 활용해 회사 근처 경복궁을 산책했다. 빽빽한 빌딩숲으로 가득한 서울 도심에 산책할만한 고궁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안동 3인방에서 역사에 관심이 많은 모모군은 평소 경복궁 입장 티켓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경복궁을 사랑했다.


그는 경복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여행 가이드처럼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비를 싫어했던 나는 우산을 쓰고 경복궁을 거닐기도 했다.


경복궁은 관광 명소인만큼 외국인들이 고운 한복을 입고 여행객 특유의 설레는 미소를 지은채 사진을 찍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산책을 했기에 나의 눈에 비친 여행객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안동 3인방의 마지막 경복궁 산책이 있던 날,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 속 산책이 이어졌다.


나는 원래 있던 부서인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유일한 청일점인 모모군은 퇴사를 하겠다고 상사에게 보고를 했다. 남겨진 안동권씨는 친했던 동료 두 명이 곁을 떠난다는 소식에 씁쓸한 마음을 내비쳤다.


우리는 경복궁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깐의 침묵 속 드문드문 대화를 이어갔다. 셋이 함께한 마지막 경복궁 산책이라 더 애틋한 시간이었다. 그날 나눈 대화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약간의 넋두리와 함께 서로의 앞날을 응원한 게 아니었을까?


경복궁을 둘러싸는 여러 개의 문처럼, 우리들의 인생에도 중요한 문들이 존재한다. 삶에서 마주하는 문을 열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문 밖의 너머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을 거닐던 그날의 우리는 시간이 흘러 나름대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퇴사를 해서 자유로운 몸이 된 모모군은 최근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고, 수염을 잔뜩 기른 채 흡사 자연인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안동권씨는 친한 동료의 부재로 묵언수행을 하지만, 나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3개월 만에 양쪽 목에 있던 멍울이 사라질 만큼 천천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상사가 나를 평가하는 악몽을 꾼다.


최근 이지훈 작가의 ‘지금을 살지 못하는 당신에게‘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진정한 나로 바로 서는 이립(而立)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우리는 가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로 바로 서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인생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문을 용기 있게 열 수 있지 않을까?


어느덧 12월 중순이다.


세상의 계절은 차가운 겨울이지만, 안동 3인방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마음의 계절은 따뜻한 봄이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