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 해를 돌아보며..
벌써 12월이다. 12월 1일 금요일. 금요일이라는 아늑함이 12월이라는 막달과 곁들여 있다.
지금은 아기와 둘이 집에 있지만 곧 3시간쯤 뒤면 남편이 돌아올 거다. 퇴근하고.
우린 작년에 5개월가량 이스라엘에서 같이 살았다. 유학생 남편과 아내인 나. 이렇게 둘이서만 지내다가 올해 3월 말 한국에 돌아오고. 이후 10월 초에 이스라엘 대 하마스 전쟁이 터졌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실은 이것 때문에 '감사' 주제의 글을 쓰려했던 건 아니다. 고구마 굽는 에어프라이기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아기는 60일을 넘어 70일이 다되어가는 와중에, 문득 감사한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지 않은 지 거의 1년이 다 된 시점인 것 같다.
작년 12월, 하이파(이스라엘 항구도시)에서의 글을 마지막으로 중단했다. 글을 미뤄둔 이유는 하이파 2편을 어떻게 써야 할 지에 대해 마음속 장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입덧을 하게 되어 하루 종일 누워있는 사태도 벌어지고. 이후에는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갓난 애처럼 숨 쉬고 밥 먹고 이런 기본적인 생활만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야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못쓰게 막았던 지난날의 부담감들이 옅어져 가고 새로운 영감들은 계속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우리 아가의 탄생이 큰 획을 그은 것 같다.
오늘은 문득, 하나님께 감사했다. 아기를 주신 게. 젊은 부부고 피임을 안 했으니 갖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아기를 보다 보면 '이 생명이 나한테 나왔다니'하는 감사함이 밀려들 때가 있다. 너무 고귀하고, 자기밖에 모르며, 사랑스러운 이 아기를 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이 순간을 기록하고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갖고 나서 엄마아빠에 대해 들었던 서운한 마음들, 그분들의 한계를 지탄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감사함이 생겼다. '아무렴 부모님이니까 나를 사랑하시겠지, 그런데 이건 아니지.' 이랬다면, '부모님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겠구나.'로 바뀌었달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아기와 더불어 용서하는 이 마음도.
두 번째로 감사한 건 남편에 대해서다. 연애할 때도 두 번인가 밖에 안 싸웠던 우리 커플은 신혼여행 때 한 번, 이후 이스라엘에서 두어 번 싸웠었다.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어째서 난, 돌이켜보면 내가 더 잘못한 것 같고, 더 미안할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남편은 음식, 특별히 음식을 먹는 경험에 큰 가치를 두고, 나는 아니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대로 아무거나(물론 선별과정을 거쳐 집에 들어온 음식이었겠지만) 먹으며 배를 채우던 나는 '특정한 무엇'을 먹어야 하는 그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또 나는 슈퍼 J. 정해진 계획과 예산 내에서 행동하는 것을 편안해했다. 한 번은 신혼여행 때 루브르 박물관 근처 레스토랑에서 남편이 사이드 메뉴(onion soup)를 하나 더 시키려다가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알고 포기했다. 그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우리 부부의 스토리가 되어서 지금은 무엇이든 다 남편 원하는 대로 하게끔 한다. 그땐 왜 그게 넘어가지지 않았을까. 어쨌든 '나'라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내가 좋아할 때 같이 기뻐해주는 남편이 지금도 참 감사하다. 가끔 눈물겹게 감사하는 것 중 하나가 남편이다.
원래 글을 쓸 때는 꼭지 세 개 정도를 준비하고 쓰라고 하지만, 난 여기서 마치련다. 고구마가 다 구워졌고, 억지로 뭘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글 쓰는 건 즐거움이자, 기록이고, 그렇게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