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과제. 16/11/2022.
이제 이스라엘 온 지 3주가 넘었다. 한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는 꽤 여러 번 초대를 했고, 또 초대를 받았다.
시누이, 자주 밥 해주던 '형', 그분의 단짝, 같은 교회 청년부 그리고 이스라엘 온 우리 부부에게 연락한 사람들 중 나를 궁금해하는 동생을 초대했었다. 앞으로 초대할 일정도 두 건이나 더 있고. 오늘은 우리 집에 왔었던 동생이 고맙다고 다시 우리를 본가에 초대해줘서 좋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그게 감사해서, 또 기억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일단 사진 투척!
저 가운데 있는 건 토마토-스크램블 에그, 오른쪽은 코코넛 밀크로 베이스를 한 카레(싱가폴식 카레라고 하셨다), 양쪽에 김치와 젓갈, 김, 아보카도가 보인다. 특별히 김은 이 가정의 마지막 김이라 하셨다.
이스라엘에서는 한국 음식들이 하나하나 귀한데 아낌없이 선보여주셨다. 김치도 두 종류나 있었는데 일주일 전에 직접 담그신 거라 하셨다. 여기서 나는 배추, 피쉬소스 등으로 양념을 한 배추김치는 한국 김치 뺨치는 맛. 깍두기도 질감이나 간이 딱 적당해서 맛있었다. 오징어 젓갈은 정말 기대하지 못한 별미였다. 한국에서도 젓갈을 못 먹고 이스라엘 왔는데 여기서 먹어보다니. 이번에 한국에서 오신 분들 중에 젓갈을 주시고 가신 분이 계셔서 얻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에서 젓갈은 정말 안 파는 귀한 음식인데 손님 대접용으로 우리에게 내주시다니 너무 감사했다. 남편이 내가 기름진 것, 튀긴 것을 안 좋아한다는 말을 전달했었는데 그걸 감안하셔서 한식으로 준비해주신 것이었다. 감사했다. 이 한 마디에 담기지 못할 만큼 감사하고 좋았다.
식사 후에는 전통 시장에서 사 오신 귤과 우리에게 초대해준 동생이 직접 만든 버블티를 마셨다. 이스라엘에서 버블은 아시안 마켓에서만 판다. 그리고 아시안 마켓에서는 모든 게 비싸다. 해외 배송이 지극히 어려운 이스라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찾는 사람도 거의 아시아인들이고. 어쨌든 그렇게 공수한 버블을 아낌없이 담아준 동생. 최고였다. :)
사실 오늘 하루는 좀 특별한 하루였다. Job affair(직업 박람회)도 구경하고, 나는 처음으로 아침을 혼자 먹은 날이었다. 원래 남편과 나는 항상 아침을 같이 먹는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차려주는 식으로. 그런데 오늘만은 남편이 아침에 일어날 수 없어서 나 혼자 먹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이 못 일어난 이유는 오늘 새벽 4시 반까지 과제를 해서였다. 어제 과제 때문에 먼저 자라고 해서 잔 기억만 있는데, 아침에 물어보니 4시쯤 아쟁 소리를 듣고 잤다고 했다. 이슬람교의 아쟁 소리(새벽 기도시간에 울리는 부부젤라 같은 악기 소리)는 새벽 4시 반-5시쯤 울린다. 정확한 시간을 물어보니 4시 25분에 과제를 접었다고. 목요일 새벽 1시까지가 기한이어서 어제(화요일 밤-수요일 새벽)를 불태웠던 거였다. 안 그래도 어제 아침 먹으면서 '너무 과제를 안 하는 것 아니냐'고 불안감을 표시한 나로서는 남편이 안쓰러워졌다.
남편은 남편이 되기 전에는 새벽까지 과제를 하다 자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를 먼저 자게 하기 미안해서 최대한 같이 생활하려고 하는 거였다. 본인을 따라 이스라엘까지 왔으니 혼자 둘 수 없다는 남편의 배려였다. 그렇다고 저녁에는 또 시간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주는 좀 일정이 있는 편이었는데, 보통 일정 없는 날에 배고픈 상태로 집에 오면 7시쯤. 전자레인지가 없으니 즉석에서 데워먹을 것도 없고, 그래서 음식을 한다(물가가 비싸서 안 사 먹으려고 하는 것도 있다). 그럼 1시간쯤 지나서 음식이 되고 저녁을 먹고 또 산책 갔다 오면 9시가 넘는다. 우리가 약속한 기도시간을 지키고 나서 씻으면 벌써 10시, 11시다. 그럼 내일 도시락을 요리한다. 그러면 30분-1시간이 지나고. 벌써 잘 시간이다.
산책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남편이 지켜주는 거다. 산책을 하면 기분 전환도 되고, 운동도 되면서, 서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고, 나는 말했다. 또 적어도 일주일에 3-4번은 산책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 때문에 남편도 내가 산책 가고 싶다 하면 흔쾌히 나서 준다. 지금까지 거의 매일 30분-1시간 정도는 산책했던 것 같다. 저녁 먹고 배부르면 '산책 갈까?'라고 내가 말하고, 그럼 남편은 항상 오케이. 물론 일정이 있으면 나도 그런 말을 못 하지만.
이번 주는 산책 갔다 와서 씻거나 내일의 도시락을 쌀 때 남편을 보면 주로 딴짓하고 있었다. 뉴스, 웹툰, 소셜 미디어 등등. 하루는 같이 영화를 봤다. 나야 같이 뭘 보거나 하면 재밌어서 좋은데 며칠간 그런 모습을 보니 이번 주 과제를 못할까 봐 불안해졌나 보다. 그다음 날 아침에 결국 말하고 말았던 것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과제 하나를 제대로 하려면 3시간 정도는 필요하단다. 그 정도 시간을 온전히 집중해야 과제 한 가닥이 끝나는 거다. 그런데 애매하게 30분-1시간 정도만 있는 시간에서는 과제를 할 마음이 별로 안 든다고. 결국 나는 남편의 페이스(pace)를 믿어주는 것으로 하고 이야기를 마쳤었다. 그리고 정말 과제를 해야 할 시간이 되어 새벽을 불태운 남편. 위로하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무튼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남편은 충실히 과제를 했고, 나는 10시 넘어서까지 자도록 두었다. 그래도 11시 15분 셔틀을 타야 12시까지는 이과 캠퍼스(Givat Ram; 기바트람)에 도착할 수 있어서 1시간쯤 전에 깨웠다. 그러고 서둘러 아침 준비되었다고 알려주는데 한두 술 뜨더니 괜찮다고.
시간도 시간이지만 오늘은 Job affair(직업 박람회)가 있는 날이어서 간식을 준다고 했다. 한국 대학교에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기업들이 와서 학생들에게 어떤 업무가 있는지 소개도 하고, 우수한 학생들은 스카우트해가는 장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처음 경험했는데 사람들도 많고 직원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설명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직업 박람회는 Computer science building에서 있었다. 유명 대기업의 부스들이 눈에 보였다. 그런 곳일수록 꽤 좋은 간식을 줘서 사람들이 더 몰렸는데 정말 인산인해였다. 기업들은 모두 프로그래밍 관련 업무를 소개했던 것 같다. 또 각 기업 부스마다 QR code가 있었고 그걸 들어가면 CV를 낼 수 있게 해 줬다. 또는 그 링크를 whatsapp에 저장해놨다가 나중에 CV를 보낼 수도 있다.
기업들이 주는 간식 먹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애플은 (치사하게도) 링크에 본인 인적사항을 적어야만 간식을 주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간식이 너무 맛있어 보였는지 많이들 그렇게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젤리, 포춘쿠키, 프레첼, 기다란 와플 등을 먹었다. 특히 삼성에서 나눠준 프레첼은 인적사항 적는 것 없이 그저 따끈한 프레첼과 크림치즈, 살사 소스를 무료로 나눠줬는데 인기 폭발이었다.
그렇게 요기를 하고 나서도 1시간쯤 지나니 배가 고팠다. 그래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 먹는데, 남편은 몇 숟가락 뜨더니 그만 먹겠다고. 알고 보니 이런 식감을 싫어한단다. 도시락은 보리 닭죽이었는데, 보리가 물을 먹어 퉁퉁 불은 대신 전분을 내고 그게 합쳐져서 누룽지 백숙 같은 걸쭉한 식감이 나는 음식이었다. 나야 걸쭉한 식감을 좋아하지만 남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차이를 마주하고.
그래서 도시락은 나만 먹게 되었다. 같이 먹으려고 싼 도시락인데 혼자 먹으니 별로 입맛이 없더라. 어쨌든 남편 안 먹는 음식 목록에 추가 - 보리 국물 금지. 그렇게 남편은 오늘 내내 밥을 거의 안 먹었고, 6시쯤 주린 배를 붙잡고 집에 와서 짐만 내리고 바로 초대받은 집으로 향했다. 그 식탁에서 하루 동안에 쌓인 노고를 풀었다고. 굶주렸던 배를 맛있는 음식으로 풍성히 채우고 우리는 30분 산책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