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의 힐링다이어리
녹색(당)의 길을 걷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어냐고 물어온 누군가가 있었다. 선뜻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없었다기보다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좀 고민해 보려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생각하는 녹색의 길은 뭘까?
결혼하자마자 아이 둘을 3년 터울로 낳고 보니 세상이 달라졌다. 아이들 키우기에 유해한 환경들만 내 눈에 보였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이미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안면 기형을 가진 둘째를 낳고 보니 엄마가 어떤 것을 먹고 마시는 가에 따라 뱃속의 아기의 상태도 달라짐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먹고 마시는 것들도 미세 플라스틱과 유전자 변형 작물과 방사능으로 오염되어서 무엇 하나 마음을 놓고 먹을 수 있는게 없었다.
미세먼지만 보이면 창문을 탁 닫았다. 아이들을 껴안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2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수산물을 절대 먹지 않으려고 고등어, 다시마, 미역에 손도 안 대던 시절도 있다. 유기농 매장에 가서 비싼 유기농 식재료를 사고, 외식도 거의 하지 않았다. 완전 채식을 꿈꾸며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그런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났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기억이 생생하다. 오전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지인의 집에 가서 리코더 연습을 했다. 사람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이 탄 대형 선박이 침몰했다고 말했다. 나도 왠지 모르게 하루 종일 우울하고 걱정이 되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이들은 만화를 보면서 깔깔 웃어댔고, 나는 화면 아래 속보에 나오는 "구조된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아이에게 친환경 음식을 먹였어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타고 가는 한 배가 가라앉으면, 그게 다 무슨소용인가. . . . 방사능의 공포가 가시기도 전에 세월호는 더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뒤, 원자력 발전소가 터지는 악몽을 꾸면서 이 땅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인터넷 검색을 하는 도중 녹색당을 알게 되었다. 얼마 뒤 동네에서 녹색당원의 작은 초청 강연이 있었고, 동네 엄마들과 함께 녹색당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2014년, 셋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기띠를 매고, 탈핵반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꼼짝없이 집과 동네에만 갇혀 지내는 나로서는 달리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해본건, 그저 책 읽고, 공부하고, 시험 치고, 교회 가서 기도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뿐이었다. 복잡한 정치도 모르고 정치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녹색당에서 하는 일이라면 찬성하고, 녹색당에서 안된다고 하는 일에 함께 반대하며 살았던 것 같다. 당비를 내고, 동네에서 피켓 들고, 선거 때 잠깐 유세를 도왔다. 녹색당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마음은 좀 더 편안해졌다. 나는 녹색당에 살며시 스며들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왜 탈핵운동을 해야 하는지, 이 사회의 차별불평등은 어떤 모습인지,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지구온난화 문제는 지금 당장 내 코앞에 닥친 일인데 교과서에서 본 그 단어를 직접 내 몸으로 겪어보기까지 시간은 꽤 오래 걸렸지만 나를 초록으로 물들였다.
나의 아이들을 공동체를 중시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제 곧 10년이 다 되어 간다. 여전히 나와 우리 가족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입시 경쟁하지 않고, 재테크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한 이유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보내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녹색당의 녹색의 길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다 함께 잘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협력하고 있다. 핵발전소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니기에 반대하고, 무분별한 도시개발 역시 많은 생명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인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며, 기후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이유도 현재,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여서 그렇다.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아야, 모든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공동체가 없고, 사랑해 줄 누군가가 없고, 존재를 인정받을 기회조차 박탈된다면 행복할 수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모두를 존중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은 녹색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녹색 없이는 존재도 없다.
지금은 다시마도 먹고, 고등어도 먹는다. 아이들에게는 채식요리도 주고 고기 요리도 준다. 미세먼지가 많아도 돌아다닌다.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더 심각해질 뿐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된 해산물은 내가 웬만큼 먹어서는 없어지지도 않겠지만 내 한 몸 통해서 정화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사람들이 저지른 환경오염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려고 한다. 미세먼지도 내가 다 마셔버리고 싶다. 그렇게 세상을 정화시키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야지. 아이들은 엄마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이들은 엄마가 녹색당 때문에 회의가 많은 것도 알고 있다. 누구도 왜 엄마는 저녁마다 회의를 하냐고 항의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일까. 녹색의 의미를?
녹색당원이 된 지 이제 7년이 넘었다. 1살이었던 막내는 곧 9살이 될 것이다. 처음 녹색당원이 된 것도 아이들 때문이고, 앞으로 녹색당원으로 활동하는 이유도 나의 아이들 때문이다. 적어도 내 아이들을 낳았으면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한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돌보고 싶고, 내가 이번 생에 연을 맺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어쩌면 녹색당에서 활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일은 할 능력도 안되지만,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은 100점 맞기가 아니라 70점 맞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녹색당과 함께 하면 70점 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녹색의길#탈핵#기후위기#차별불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