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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Jul 02. 2022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 진실

금보성 아트센터 그리고 레드부츠 갤러리 전시 이야기

금보성 아트센터에서의 초대전에 왔다. 작품을 관람하러 온 게 아니다. 이명숙 작가님의 전시 지킴이를 하러 왔다.


토요일 오후, 레드부츠 갤러리 전시 벽면 페인팅 보수작업을 하고 다시 이곳 서울 평창동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4호선 인덕원에서 길음역까지 한 번에 오니까 별로 힘들지는 않다. 길음역에서 7211번 버스를 타면 롯데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 문제는......


산을 타듯 경사면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살짝 힘들 수 있으니, 한번 쉬어가야 하나 싶으면 도착한다.


기후위기로 무더운 여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7월 초인데 벌써 34도를 찍었다. 이렇게 무더운데, 금보성 아트센터는 전시장 안이 엄청 시원하다. 산과 가깝고, 전시장이 커서 그런가. 시원하고, 약간은 습하다.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에 이제는 약간 익숙해졌다.


작가님이 관람자 몇 분과 관장님과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함께 다과를 나누고 1층 메인 전시장으로 내려왔다. 작품들이 눈 빠지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느껴진다. 미술작품들, 누군가 바라봐 주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존재들.


며칠 전에 설치 작업할 때 봤는데 다 걸리고 나서 다시 보니 더 멋지다. 조명 샤워하고 햇빛까지 살짝 들어오니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려면 작가의 오랜 고민과 숙련된 작업 스킬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그 시대에 그 작품을 보고 이해해 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련한 미술품들도 때에 맞춰 태어나야 하는 운명이구나. 어찌 됐든 꼭 내 자식 같은 (작가님에게는 애지중지하는 더 귀한 자식 같겠지만) 작품들은 조용히, 그리고 단정하게 우리를 보고 있다.


그래, 내가 그림을 보는 동안, 그림도 나를 보고 있겠다. 바짝 신경이 쓰인다. 혹여나 내 맘에 품고 있던 어떤 삐딱한 마음이 들키지는 않을까.

가끔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전시공간을 청소하고, 단정하게 하는 이유가 사람들, 관람객들을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미술품들이 주인공인 전시공간을 지저분하게 두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니까, 미술품들이 단정하고 정돈된 곳에서 편안하게 머물러 있다가 갈 수 있도록 내가 애를 쓰고 있다는 생각. 왜냐하면 사람들은 정말 소수가 왔다 가고, 잠깐 머물러 있다가 가지만, 작품은 전시 기간 내내 그 공간의 진짜 주인공이니까. 나는 참 별스럽게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한다. 배려받지 못한 작품들이 삐져서 나에게 어떤 악수를 가져다 주지는 않을까 하고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고민을 하는 것이다.


이명숙 작가님의 메인 작품 WALL & SHADOW 금가루 선물을 받았다. 멀리서 보면 아스라이 스러져  날아갈 것만 같은 담쟁이넝쿨과 잎과 오래되어 퇴색된 벽들은 예술가의 영감의 나라에서  금가루 은가루 세례를 받고 빛나고 있었다.


왜 굳이 벽돌 한 장, 푸르지도 않은 넝쿨 한 줄기를 메인 작품으로 그렸냐는 질문에 작가님은 지체 없이 답하신다.


"순환, 그리고 관계 "



wall & shadow2/130*162/패널위에 장지 분채 석채/2022_이명숙작가


자연의 찬란한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그 찬란함이 영원함을 기원하며 믿음을 주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이명숙 작가의 이번 작품들은 그런 기대와는 달리 스러져가는 자연과 볼품없이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사물들이 등장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억해내고,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미술작품으로 완성시키기까지 애쓴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


벽이 있어야 담쟁이는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고, 잎이 시들어 버려야 자신이 줄기를 가진 나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담쟁이가 기대어 있는 벽과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그림자는 존재에 필수 불가결한 관계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도 띄지 않는 작품들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는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서로 연결되고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혼자 잘났다고 까불던 시절을 반성하고 싶다.


벽돌 하나에 떨어지는 순간 지나치는 담쟁이 낙엽 한 잎. 꼭 걸터앉아 있는 듯 보이지만, 나는 자꾸 볼 수록 다른 생각이 찾아온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영원할 것 같은 사랑, 우정, 공적인 관계, 혹은 악연으로 엮인 관계 모두 다 그저 스쳐 지나갈, 인연일 뿐이라는 걸. 그래서 너무 간절하게 붙잡을 필요도 없고, 애써 밀어낼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




바람, 할미, 해 바라기, 동백, 모과, 목화,

꽃이다. 그런데 꽃으로 보이지 않는 순간도 그려냈다.

그림자 위에 앉아 있는 담쟁이의 꽃도 보인다.


남들은 그냥 스쳐버리는 작은 꽃들을 작가는 애정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옛 선비들이 그렸던 문인화처럼, 매난국죽은 아니지만,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꽃 한 송이를 마음에 담아 그렸다. '내가 아니면 너희들을 이만큼 사랑할 이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려냈을게 빤하다. 그 애정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참 재미있게도 가끔 나 조차도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을 누군가가 포착해서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나에게 그렇게 관심 가져주니 고맙고, 좋다.



작품과 셀카 찍는 갤러리스트. 나는 이제 2년 차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그림 좋다고 덤벼든 무지렁이가 여전히 전시장 곁을 떠나지 못한다. 혹여나 인생을 살면서 요긴하게 쓰일 어떤 팁 하나 더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서성인다. 어떤 날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 고요한 미술 전시장에서 속으로 말한다.


'오늘은 그림들과 오붓하게 데이트했구나.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도 내일은 몇 분이라도 더 오시도록 여기저기 연락을 해봐야겠다. '


오후에 졸음이 쏟아져서 커피 한잔 테이크 아웃하려고 금보성 아트센터 앞에 있는 김종영미술관 카페 사미루에 갔다. 창가에 앉으니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런데 7월의 맑은 하늘은 정말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구나. 실제로는 뜨겁지만 시원해 보이는 이 아이러니. 콜드 브루 아이스커피 맛이 기가 막힌다.


다들 이곳에 오면 골목 입구 음식점 북악정을 거쳐 갤러리들을 살펴보고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하는 것 같다. 소화도 되고 참 알찬 코스가 아닐 수없다. 주차하기도 어렵지 않고,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하고, 계곡 물소리도 들리고 나만 알기는 아까운 동네다.



이명숙 초대전 <Wall and Shadow> 2022.7.1-7.9

금보성 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평창 36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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