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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Jul 22. 2023

갤러리스트가 자꾸  초록이를 키우는 이유

 갤러리스트 일기_시즌 1

갤러리스트의 하소연 한번 듣고 가시죠.


오늘 7월 한달간 진행했던 전시를 마무리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전시 마지막 날도 아주 스펙타클했습니다. 내일 휴가를 떠나야해서 아이들 수영복과 수경, 신발, 남편 레시가드, 운전하면서 먹을 간식을 사고, 둘째가 쓸 캐리어를 사왔습니다. 사촌동생의 결혼식이 있어서 왕복 2시간 쯤 걸리는 평택까지 다녀왔구요. 그것도 폭우를 뚫고서. 사촌이 결혼해서 정말 기뻤어요. 잘 살아라~~. 뒷자리에 앉은 두 아이는 운전하는 저에게 형제 싸움 육탄전 15분 분량을 보여주었지요. 저는 단 한마디도 안하고 그냥 운전만 했습니다. 입을 열고 싶지도 않았어요. 아이들은 4년 전 쯤 넘어졌던 사건을 가지고 어마무시하게 싸웠습니다. 미안했다~ 한마디만 하면 될것을 결국 그 말도 안하고 마무리. 그 주제로 아마 다음번에 한두번 쯤 더 싸울 것 같아요. 돌아오자마자 작가님과 잠깐 미팅하면서 다음달 준비중인 아트페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시장 문을 닫고 나오면서 후련함과 섭섭함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여러분,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남기는데, 쓰고 보니 개인적인 징징댐으로 시작했군요.


한번만 봐주세요.

일단 갤러리 바깥 복도의 풍경. 실내화분은 더 다양하고 많지만.....


전시 한달간 정말 열심히 작품을 홍보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척'을 했습니다. 제대로 일하지 못한것이죠. 그럴수 밖에 없었던 건 삼형제의 방학이 2주전에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우기고 싶습니다. 삼시세끼 때문에 도대체 다른일에 집중하는게 너무 어려웠어요. 오늘 전시를 마무리 하고 나니, 휴가를 떠나기 전의 초조한 저를 애타게 바라보는 초록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폭염이 이틀만 지속 되어도, 이 초록이들은 시들시들 해질게 뻔했습니다. 부랴부랴 흙이 마른 아이들에게 물을 주고 상태를 점검합니다. 제겐 삼형제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초록이들을 6년 동안 키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살린 건 바로 초록의 힘.


전시가 끝나면 그 다음 전시를 준비해야 하는 갤러리스트

이곳 갤러리에 걸려있는 작품들은 모두 전시라는 경력을 거친 아이들입니다. 지난 2년 동안 꼬박 36건의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인연을 맺게 된 작품들도 있고, 갤러리를 시작하기 전에 소장하게 된 작품들도 있습니다. 어떤 작품들은 간절히 사가길 원하는 분들께 판매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세상의 다른 누구보다 제게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라 굳이 누군가 사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저와 인연을 맺은 작품들은 이 전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만나고, 전시 위치가 자주 바뀌면서 다른 작품들과도 계속 대화합니다. 색과 형태가 주는 영향은 가만히 지켜보면 눈에 띄거든요. 작품들은 서로를 돋보이게 하기 마련입니다. 색, 보색이 주는 특징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시라는 공식적인 시간이 끝나면 작품들도 저도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작품들을 오래 동안 곁에 두고 보면서 저는 재미난 다짐을 하게 됩니다. '전시를 거친 작품들은 이렇게 단단함이 생기는 구나. 다음 전시에서는 더 열심히 홍보하고, 작품과 더 긴밀히 교감해야지.' 저는 각오를 다집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당연히 찾아온다

그렇지만 매번 전시 마지막 날이 다시 찾아오면 솟아오르는 다짐과 함께 세트로 따라오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원하는 만큼의 성과가 없었기에 아쉬움과 피곤함이 생기는 것이죠. 어쩔 도리가 없지만 그 시간들은 나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싸움의 시간입니다.


매번 이 싸움에서 이기면 참 좋겠지만, 저는 번번이 가진것도 없고, 재능도 없음에 풀이 죽고 맙니다. 시무룩해집니다. 그럴때 여러분은 어떻게 넘기시나요? 꿀팁 있으시면 저에게도 알려주시구요. 저도 저만의 팁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제 시무룩함 넘어가기 팁은 바로 초록이에게 물주기입니다.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도, 일이 잘 안풀려 허탈할 때도, 내 마음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소연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켜야 할 때도, 많은 것을 내어준 사람들이 자꾸 곁을 떠나갈 때도. 곁을 돌아보면 늘 초록화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이나 좀 줄래?'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자연과 얼마나 소통했는가?

갤러리 통창 너머로 보이는 갈미문학공원의 숲은 늘 제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갤러리 모임룸 안에 있는 10개가 넘는 초록화분들은 제게 속도를 조절하라며 브레이크를 제공합니다. 화분에 물 주다 보면 속도를 늦출 수 밖에 없거든요. 비 뿌리듯 천천히 안주면 화분 안의 세상은 태풍을 맞이한 듯 곤란해보이지요.

 

출퇴근 길에 만나는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는 겨우 2분정도의 시간동안 충만한 자연의 에너지를 선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신명나게 살아보라고 응원하는 것 같습니다. 초록이에게 물을 줄때는 꼭 나 자신에게 샘물을 부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인지학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자신의 저서과 강연에서 하루의 마무리인 '잠'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기 위해서 낮시간 동안의 '인간관계'와 '자연과의 교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흔히 고민거리가 있으면 잠못드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동안 미디어기기를 이용해도 쉽게 잠에 빠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시죠? 단지 뇌과학적인 반응 때문만은 아닌가 봅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분명 고민거리가 많고 쉽게 잠에 빠지지 못할것 같지만 초록이들과 충분히 교류하고, 숲길을 산책도 한 날은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것 같습니다.


자연과의 교감은 예술과의 교감과 결이 비슷하다

레드부츠 갤러리의 전시를 거친 작품들 혹은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작품들. 그리고 언젠가 꼭 전시하고 싶은 누군가의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 공간이 그저 미술품들이 거쳐가기만 하는 통로는 아닌게 분명하죠? 초록이와 교감하듯 저는 작품들과도 교감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삼형제 육아로 피곤해질만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2년을 채운 힘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연의 힘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현대임들은 주말만 되면 교외의 자연으로 차를 돌립니다. 틈만나면 등산을 가고 천변을 걷고, 날을 잡고 워터파크에도 갑니다. 물, 숲, 하늘. 그리고 집안의 초록화분들과 대화하고, 숨쉬고, 노래하고, 함께합니다.


한국사람들은 그림을 보는 것보다, 직접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림을 그리던 보든지 어떻게든 연결되어 교감을 시도합니다. 사실 그것은 더 중요한 누군가를 만나게 하는 강력한 도구이니까요.



자연과 예술을 통해 우리는 나와 더 친하게 지냅니다

네, 저는 분명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숙면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 자기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더 친해지기 위한 방법일 뿐입니다.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에서 진진이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부르짖었던 것처럼. 인생은 탐구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자신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한 25살의 진진. 그녀는 여전히 인기가 많습니다. 수백쇄를 거쳐서도 힘을 잃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탐구하면서 살든, 살면서 탐구하든, 저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는 나 하나만 확실히 공부하고 이 삶을 마칠게 분명하니까요.


그 여정에 초록이와 작은 그림 한 점이 생기를 더해줄 거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꼭 한번 시도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와 더 친해지기'


#레드부츠갤러리 #갤러리스트일기 #미술전시 #초록이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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