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ir Park 박민경 Sep 02. 2017

미국 카펫 문화,최악의 에피소드

한국의 나무 마룻바닥이 그리워지던 날

미국 친구들의 집을 방문해보니 실내가 마룻바닥인 집 일부,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니는 집 일부. 하지만 대부분은 주방과 욕실, 현관을 제외한 집안 전체에 카펫이 깔려 있다.

밟을 때 폭신한 감촉과 발이 시리지 않다는 점은 물론 장점이겠으나 청소가 어렵고 진드기가 번식하기 쉽다는 점은 물론 불편한 점이다.

특히나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매일 하루에도 여러 차례 아이가 쥬스를 쏟아대고 물감이나 싸인펜을 그어댈 텐데 도무지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불가사의다.


하루는 친구 Sue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서 방문하게 되었다.

 하얀 카펫, 밝은색 벽, 하얀 가구로 이루어진 Sue와 Bob의 집

Sue의 남편 Bob이 저녁식사와 함께 할 향 좋은 레드와인을 한 병 꺼내 오셨는데 Bob과 내가 서로 빈 잔을 채우려고 손을 뻗다가 내 손이 그만 와인잔을 탁 쳐 버렸다.


안 돼에에에에~~!


생각과 동시에 풀바디의 질척한 레드와이 하얀 의자 커버, 하얀 벽, 하얀 카펫으로 분무기를 뿌린 듯 방울방울 튀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영화의 슬로모션 장면 같이 와인잔이 한참을 회전하며 위잉위잉 날아갔다.


나는 거의 울 지경이 되어 수건으로 카펫을 벅벅 닦아댔지만 (물론 소용 없었다) Sue와 Bob 두 분은 나에게 해당 구역 접근 금지를 외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사를 마쳤고, 거실에서 게임이나 하자며 내 등을 떠밀어 데리고 나가셨다. 죄송하다는 거듭되는 사과에도 Sue는 덕분에 오랜만에 카펫 청소를 하게 됐으니 오히려 고맙다는 농담을 던졌다.


카펫 얼룩을 빼는 약품이 별도로 있다는 것은 얼마 후 Sue의 집과 마찬가지로 얀 카펫이 깔린 Hide집에서 Ken이 나와 똑같이 레드와인 잔을 엎질렀을 때 알게 됐다.






얼마 후 Sue 집에 또 한 번 식사 초대를 받아서 갔다.

Sue는 유기견 써니와 고양이 미씨를 입양하여 가족처럼 지내는데, 둘째 딸 유진이가 활발한 성격의 코카스패니얼인 써니와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강아지와 그렇게 마음껏 놀아보는 게 처음이라 평소보다 정신없이 장난치고, 다리를 배배 꼬고, 까르륵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웃던 유진이가 갑자기 “엄마……” 외마디와 함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고, 아래로 옮겨간 내 시선에는 유진이 바지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입양해 키우고 있는 강아지 Sunny는 가족과도 같다.

화장실까지 달려가 변기에 앉히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10초는 걸린다는 판단이 섰고, 애를 내 옆구리에 끼고 뜰로 나가는 문을 열 겨를도 없이 그 앞의 발매트 위에 정신없이 올라섰다.내 평생 그렇게 동작이 빨랐던 적이 있었나 싶다. 매트 위에 위태롭게 딛고 서서 최대한 내 옷으로 물이 흐르도록 유진이를 꼭 껴안고 있었다.


다들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입을 딱 벌리고 미동도 않은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물줄기는 둑 터진 강물처럼 흘러내려 내 옷과 카펫 일부, 매트를 골고루 적신 후에야 그쳤다. 그대로 얼음이 되어 서 있던 나는 또 한 번 울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큰 비치 타월을 빌려서 젖은 유진이를 둘둘 말아 카시트에 앉히고, 내 옷은 흠뻑 젖은 채로 또 한번 죄송하다는 사과를 거듭하며 서둘러 집으로 왔다.

아아~ 민폐도 이런 민폐가......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그 이후로 Sue 집에 갈 때마다 애들에게 미리 화장실을 두 번씩 다녀오게 하고, 식탁 끄트머리에 뭔가가 놓여있으면 바쁘게 안으로 밀어 넣는다.


물걸레질 몇 번이면 반짝반짝 윤이 나는 한국의 마룻바닥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Sue의 딸 Alex의 방에서 고양이 미씨와 침대위에서 뒹굴며 즐거워하던 유진





'넓은 것은 오지랖, 깊은 것은 정, 많은 것은 흥 뿐이고

좁은 것은 세상, 얇은 것은 지갑, 적은 것은 겁 뿐인 가족'


<'겁 없이 살아 본 미국' 책은>

평범한 40대 회사원 남자가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10년 차 워킹맘직장을 그만두고 떠나 무료영어강좌에서 수십 개 나라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던 큰 딸이 2년 만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독하고,

Yes/No도 모르던 작은 딸의 미국 유치원 적응기까지, 다양한 미국의 교육 현장 이야기와

전화도 터지지 않는 서부 국립공원 열 곳에서 한 달 이상의 텐트 캠핑,

현지인들과의 소중한 인연,

경험이 없는 덕분에 좌충우돌 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담은 책.


출간 두 달 만에 2쇄 인쇄. 브런치 글 100만 뷰.

페이스북 팔로워 1400명(www.facebook.com/MKLivingUSA)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장소와 사람과 음식이 생겼고

나이와 국적에 대해 견고하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친구 삼을 수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서로 다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해서 주저 앉아 울고만 있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결국은 '성숙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