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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Sep 26. 2022

입이 방정

기분도 나쁘고 재밌지도 않는 말은 대체 왜 하는 것일까

지난 주 민원실에서 사용 중인 냉장고가 고장나서 수리기사가 출장을 왔었다. 냉장고를 살펴보던 수리기사는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수리를 했다. 한 30분 지나서 수리를 끝냈다며, 부품도 없고 수리가 사실 힘들 것 같았는데 다행히 잘 작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근무하던 직원분이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수리기사분께 말한다. 

"그렇게 열심히 수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뭐하러 무리해서 수리를 하셨어요?"

뜨악. 이게 무슨 소리인가. 30분 동안 땀 뻘뻘 흘리며 수리한 기사에게 고맙다는 말은 커녕 왜, 무엇 때문에 이런 황당한 소리를 하는 것일까. 수리기사는 잠시 표정관리가 안 되었지만 그 직원분은 멈추지 않으셨다.

"우리는 못 고쳐 주시는 게 더 좋은데."

그럼 왜 고쳐달라 했을까? 아하, 수리기사는 와서 못 고친다고 헛걸음을 하고 그 핑계로 새 냉장고를 사 달라고 할 요령이었나 보다. 그거야 본인의 속내이고, 속내는 속내로 끝내야지 출장까지 와서 안 될 것을 되게 만들어 준 기사님은 뭘 잘 못했다고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다른 직원분이 조심스럽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기분 나쁘지 않겠냐며, 더군다나 민원실이 한산한 시간대여서 보기엔 할 일도 없으면서 국세나 축낸다고 생각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직원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에이, 이 정도 말이야 할 수 있지. 그리고 맞잖아, 우린 못 고치길 바랐잖아. 고치기 전에 봤으면 절대 무리해서 고치지 말라고 미리 말했을텐데, 내가 왜 기사분 들어오는 걸 못봤지?"

그렇게 무슨 심술을 부릴까 궁리하느라 바쁘니 누가 들어온들 알았겠습니까? 

다른 직원분이 다시 조심스럽게, 이 냉장고 생산년도가 2015년이네,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도 않네라고 한다. 그 말에, 어쨌든 우리에겐 좋은 냉장고가 필요한데 아쉽게 되었다며 연신 분해한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도 아껴쓰고 고쳐쓰는 마당에, 거기다 가치소비 문화가 확산되면서 중고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는데 뭐 얼마나 쓴다고 사무실 냉장고를 신제품으로 못 바꿔 안달난 그 마음이 밉고 꼴보기 싫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뭐, 마음속으로 무엇을 바라든 내 알 바는 아니다. 마음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든 그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굳이 못생긴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단지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나무라기까지 하였으니 나도 마음껏 비난하겠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기분도 나쁘고 재밌지도 않는 말을 굳이 하는 것. 당최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p.s. 적당한 선을 지키며 다른 사람을 놀리고 약올리는 것은 무지하게 어려운 일이다. 불쾌하지 않고 단지 유쾌에 그칠 그 선을 지키는 것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게 그 선을 잘 못 지킨다.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사람들을 몇 본 적 있는데 난 그 사람들을 진짜 존경한다. 보통 머리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밌으려고 하는 말이 타인을 불쾌하게 하거나 당황하게 한다. 더 신기한 것은, 그 말을 똑같이 돌려주면 그들은 불같이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도 아는구나, 재미없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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