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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 Oct 29. 2019

외장하드 :새로고침 하고 싶었던 그녀의 이야기

그걸 보지 않았더라면 우린 행복했을 텐데


‘동영상을 거기에 저장해 두는 게 아니었다. 네가 그걸 보지 않았더라면 우린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수진의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수진과 동거하고 있는 태훈은 그녀의 이상형이다. 상냥하고 친절했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약간 마른 듯했지만 다부진 몸. 까무잡잡한 얼굴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남자들이 으레 좋아한다는 술이나 게임보다 요리와 청소를 좋아하는 요즘 말하는 초식남의 표본이랄까.      


태훈의 직업은 웹툰 작가다.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그는 수진과 연애했던 에피소드를 토대로 만화를 그렸다. 처음엔 취미로 올리기 시작했는데, 네이버에서 덜컥 연재 제의가 들어왔다. 고민 끝에 그는 다니던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만화가로 전업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태훈의 입버릇은 ‘행복하다’였다.

“정말 행복하다. 자기랑 매일 이렇게 있으니까 진짜 행복해”     


점심과 저녁은 모두 태훈이 담당했다. 요리를 취미를 둔 태훈은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수진의 짧은 입맛에도 그의 음식은 훌륭했다.     


그러나 요리 실력과 비례하게 웹툰 마감시간을 어기는 횟수도 늘어났다. 수진은 태훈을 말려도 봤지만 그는 말간 얼굴로 늘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든 요리를 네가 먹는 것이 좋아”     


그의 행복은 네이버 웹툰 담당자의 경고로 막을 내렸다. 더 이상의 지각은 연재 중단 사유가 될 수 있다는 통보였다.      


“우선 자기가 점심에 요리를 하면 안 돼”

수진이 볼펜을 끄적거리며 말했다.     

“알았어 대신 저녁은 내가 할래”

“저녁은 번갈아가면서 한 번씩 하자. 나도 자기한테 해주고 싶단 말이야”

수진은 간절한 표정으로 태훈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수진과 태훈이 약속한 것은 세 가지다. 점심은 간단히 수진이 차린다. 저녁은 번갈아가면서 요리한다. 작업실을 따로 둔다.     


가장 어려운 것은 작업실이었다.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는데, 수진과 태훈이 살고 있는 곳은 방이 2개뿐이라 드레스룸으로 쓰고 있는 공간에 그의 컴퓨터와 태블릿이 욱여넣어져 있었다. 그들은 가까운 원룸을 마련해 작업실로 쓰기로 했다.     


어차피 작업만 하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집 근처에 원룸으로 계약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20만 원의 작은 방이었다. 집과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남짓 했다.      


태훈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수진과 커피를 나눠 마시고 작업실로 출근했다. 하루치 웹툰 분량을 완성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저녁거리를 사서 퇴근한다. 저녁엔 밥을 지어먹고 수진과 영화를 보고 잠이 든다.     


수진은 오늘따라 몸이 좋지 않았다. 평소보다 높은 체온에 식은땀이 흘렀다. 태훈이 내린 커피 한 모금도 들지 못한 채 침대에서 그를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야 잘 다녀와”

“아냐 나 오늘은 자기 옆에서 있을래”

“그렇게 아프지도 않은걸 한숨 푹 자면 괜찮아질 것 같아 걱정 말고 다녀와”

수진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훈이 현관을 닫는 소리가 들리자 무거웠던 눈꺼풀이 재빠르게 닫혔다.      

요란한 진동소리에 약간의 짜증을 느끼면서 액정을 바라봤다. 태훈이었다.

“앗, 자기야 잤어? 미안해. 신발장에 외장하드 있던데 그거 가지고 나왔거든? 그거...”

“뭐라고?”

“아니~ 담당자님이 단행본 내자고 하셔서 pdf파일로 변환한 거 한꺼번에 달라고 하셔서”

“그건 안 돼”

“왜? 여기에 뭐 들어있어?”

식은땀이 흘렀다. 태훈이 절대 봐선 안 된다. 하늘이 빙글 하고 돌았다.  

    

“있긴 뭐가 있어... 그거 고장 난 거니까 컴퓨터에 꽂지 마”

태훈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는 비밀스러웠다.      


태훈은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녀가 그렇게 안된다고 했던 외장하드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바이러스 검사가 자동으로 실행됐고 파일이 열렸다. 동영상 파일과 사진 파일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동영상 파일을 더블클릭했다. 알 수 없는 동영상 여러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 동영상의 제목은 신림동. 파일을 더블클릭하자 어두운 화면 안에서 수진이 등장했다. 그녀는 식탁에 카메라를 두고는 한 남자에게 태연히 걸어가더니 날카로운 칼을 어떤 남자의 폐에 정확히 찔러 넣었다.

     

“쾅쾅쾅”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자기야”

수진이 문 밖에 있었다.     

#어바웃타임#창작소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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