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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Nov 06. 2023

아, 맞다. 이런 곳이었지...

대한민국(20231105)

 귀국 후 일주일 자가격리 후, 처음 세상에 나가자마자  향한 곳은 미용실이었다. 비싸진 머리 가격에 인플레이션을 실감하며 여기저기 헤매다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팻말로 써붙여놓은 꽤 허름한 동네미용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거기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사장님들이 말 거는걸 썩 유쾌해하지 않던 나였지만,  격리로 세상과 단절되어 진짜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웠는지 이것저것 묻는 미용실 아주머니가 거슬리지 않았다. 사장님도 대화가 재밌었는지 '영양도 같이 해드릴게요' 하며 해주시는 게 서비스도 꽤 좋아 단골이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세네 시간의 시술을 마치고 계산시간. 예상가격보다 3만 원이 더 붙은 가격. 왜 3만 원이 더 붙었냐고 하니, 영양을 했기 때문이란다. 저녁 8시가 넘는 늦은 시간이었고 경황이 없어서 일단 달라는 대로 내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나는 혼자 울었다. 아, 맞다 한국은 이런 곳이었지. 단순히 눈뜨고 3만 원이 베여서 억울함의 눈물은 아니었다. 신뢰가 없는 이곳, 보고 들리는 것을 믿으면 안 되는 이곳, 현상 너머 계산하고 악착같이 내 것을 지켜내지 않으면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만연한 곳, 이런 곳이었지. 그런 곳에서 다시 살 것이 막막하고 불안하고 답답한 그런 종류의 눈물이었다. 지나치게 오랜 시간 외국에 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아직 남아있는 독일인 기운으로 미용 관련 법에 관련하여 조사를 했다. 미리 가격 고지를 하지 않은 채 추가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조항을 잔뜩 찾아냈다. 다음날 아침 다시 미용실에 찾아가서 어제 하신 행동이 위법이라고 운을 띄우자마자 3만 원을 돌려주는 미용실 사장님의 행동에 이 사람은 위법인걸 알면서도 저렇게 장사를 하는구나 싶어서 또 한 번 놀랐다. 돈은 돌려받았지만, 착잡한 마음에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새삼 다른 의미로 법 없이도 사는 나라였구나. 다시 열심히 살아보려고 돌아온 이곳에서 난 함부로 아무도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구나.

 그러고 며칠 후, 조금의 안정을 되찾고 입사 전 얼마되지 않는 평온의 시간을 누리고 있던 중, 문자 하나를 받았다. "[국외발신] [해외승인] 708590원. 본인요청 아닐 경우 02-2073-5739" 받자마자 나는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받은 사람의 한국말이 너무 어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나서야 아차 싶었다.

아, 맞다! 이런 곳이었지. 피해는 면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화가 났다. 개개인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모든 현상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런 곳. 사기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 하는 이곳. 문득 독일에 있는 기간 동안 단 하나의 스팸문자도 받지 않았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 번호, 내 개인정보는 유출된 적이 없었다. 나에게 온 모든 문자는 모두 진짜 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당연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순진한 게 아니다. 독일에 가기 전 이런 피싱문자를 받는 것에 익숙하던 시절, 또 피싱이네. 또 스팸이네. 또 광고네 하며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나 또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피싱이 없는 곳에서 살다 오니, 이런 단순한 문자 스팸이 일상에 만연한 게 꽤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익숙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런 것을 보는 자체로도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한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를 지켜내느라 방전되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더 크다. 익숙해져서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한국사람들에 예민한 사람이 유난히 많고 많은 사람들이 화가 많은지 알 것도 같았다. 우리들은 자각하지 모르겠지만 이미 자신을 지키는데에 여기저기 일상에서 누수되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기초 방전량 최대 시스템.


하루는 C와 함께 지하철 역 안을 지나가는데 C가 물어봤다.

"한국사람들은 왜 다 행복해?" 대여섯 명이 함께 웃으며 노래를 떼창 하며 춤추는 영상이 나오는 약 광고 옆에, 웃으며 상표를 외치는 보험광고 옆에, 유명 연예인이 활짝 웃는 사진이 박힌 스포츠 브랜드 광고 등 온갖 광고판이 늘어선 장면을 보고 말한 것이다. 늘 웃고 늘 춤추고 늘 노래하고 늘 밝은 광고. 그러게. 돌이켜보니 독일에서는 웃는 광고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밝은 모습으로 춤추거나 노래하는 광고도 본 적이 없다. 시끌벅적 왁자지껄 하하호호가 모두가 행복한 이곳. 나를 지키느라 에너지를 대부분 다 써버리지만 나 빼고는 모두 밝고 행복한 이곳. 행복 총량이 있어서 저렇게 밝게 웃는 누군가들이 다 가져가버린 것은 아닌가 심통 난다. 오늘도 행복한 한국에서 나 홀로 웃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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