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봐 줄 사람이 필요한 모든 아이들을 위하여
<원하지 않은 아기입니다. 죄송합니다.>
쪽지에 쓰인 거라곤 두 문장이 전부였다. 펑펑 내리는 눈이 시야를 가리는 긴 겨울의 한복판, 길고양이가 왱왱 울어대는 소리에 오늘은 기어코 쫓아버릴 작정으로 뛰어나온 k 집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아프고 목덜미가 당기는 참이었다. 소위 캣맘이라는 족속들이 자꾸 건물 뒤에 밥그릇을 놓아두는 통에 온 동네 길고양이가 다 주위로 몰려들어 여간 속을 썩였다. 눈에 띌 때마다 치워도 그놈의 지긋지긋한 밥그릇은 돌아서면 그 자리에 고대로 있었다. 새로고침을 아무리 눌러도 바뀌지 않는 인터넷 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머, 이제 길고양이들 밥까지 살뜰하게 챙기시네요. 역시 우리 집사님이셔, 꽃잎 시 나눔 문화센터를 방문하는 회원들은 저마다의 수식어로 너스레를 떨었다. 이 동네에 발을 들이고 센터를 연 지 10년, 그들 특유의 입꼬리만 봐도 그 속내는 훤했다. 여기에 길고양이 밥을 주지 마시오, 라고 써 붙이는 건 격을 떨어뜨리는 짓이다. 귀찮고 번거로워도 매일 밤 숙제처럼 하던 일에 이골이 나 있던 k 집사는 이제 하다 하다 개 같은 일이 다 생기네, 라고 중얼거렸다.
불 켜진 사무실로 돌아온 그의 머릿속은 이제 길고양이 대신 정문 앞에서 데리고 들어온 새로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찼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명색이 나눔 문화센터인데 버려진 생명을 돌보는 건 당연한 거니까. 밤중이라고는 하나 목격자가 있다면 자칫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우선 아기를 살펴봐야 하겠지. 그제야 자세히 보니 아기는 얇은 머플러를 대충 두르고 있었다. 쯧쯧. 제대로나 여며주지 그랬나 싶어 고쳐주려던 손끝은 머플러 끄트머리에 달린 브랜드 라벨에 닿아 멈췄다. 말뿐이라도 체면과 가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느라 차마 사러 가지도 못한, 그 브랜드의 제품이라면 족히 백만 원은 넘을 텐데. 아니, 아기를 무슨 이런데 싸서 버리나? 그럴 거면 차라리 같은 돈으로 솜이불이나 넣어줄 것이지. 하기야 버리는 마당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와중에 틈새로 삐져나온 작은 손은 새파랗게 얼어있었다. 아기는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겨우 숨만 붙어있었다. 아차. 이러다 여기서 죽으면 어쩌나. 아이고 맙소사, 제발 그것만은 안된다고 생각한 k 집사는 그제야 서둘러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구급 차량이 오는 데는 3분도 걸리지 않았다. 꽃잎 시는 잇따른 개발 호재와 부동산 열풍에 힘입어 새로 조성된 신도시였다. 센터가 있는 동네는 최근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곳으로도 유명했다. 과수원과 화원 비닐하우스, 자투리 논밭이 전부였던 평범한 시골 촌마을에 모판의 모를 옮겨 심듯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하나둘 빼곡하게 세워지는 데는 불과 십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외곽 개발 붐이 불면서 종일 나무 보고 꽃 살피느라 허리가 굽었던 시골 사람 중 몇몇은 이 동네 누구보다도 턱을 치켜들고 다녔다. 돈 주무르는 사람들이 제법 나이가 있다 보니 병원 하나는 전국 각지에서 원정을 올 정도로 규모와 명성이 대단했다. k 집사는 구급차 안에서 대강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도착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진 아기는 검사 결과 선천적 심장 이상이 있어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센터 운영 예산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써버릴 수는 없는데. 수술동의서를 작성해주어야 한다는 간호사의 채근에도 이걸 사인을 해야 하나 망설이며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몇 분, 문득 왼손에 쥔 머플러가 눈에 들어왔다. 번뜩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원하지 않은’ 아기로 원하는 만큼의 돈을 손에 쥘 수도 있겠다는.
그때까지만 해도 k 집사는 아기의 친모를 찾는 일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될 줄 몰랐다. 아기는 1차 수술 후 회복 중이었고, 경찰은 그사이에만 벌써 세 차례나 왔다 갔다. 센터를 정면에서 보는 CCTV는 갑작스러운 한파에 하필 고장이 나 있었고 주변 길목의 것들도 영 보이는 것이 시원찮았다. 사비로 병원비 중간정산을 치르고 나자 그는 이제 고작 머플러 하나로 주변 동네에 사는 부잣집 철모르는 딸내미가 사고를 쳤나 보네, 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 얼마나 섣부르고 모자란 판단이었는지 곱씹기 시작했다. 키도 몸무게도 한참 모자라게 태어났다는 그 아기는 처음 봤을 때보다는 그나마 회복된 모양새였다. 작은 얼굴에 크고 검은 눈, 제법 오똑한 코와 오물거리는 입. 욱하는 감정을 떼어 두고 보니 꽤 사랑스러운 아기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엷은 웃음을 짓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병원장을 찾아갔다.
병원장은 나눔 문화센터와 인연이 깊은 인사였다. 사람들은 센터에 많은 현물과 현금을 기부했고, 그는 그 뜻을 모아 시즌마다 병원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장은 선뜻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며칠 내로 지역 방송사에서 다녀갔고, 아기는 하루아침에 꽃잎 시의 그 누구보다도 유명해졌다.
<꽃잎 시 엄지 공주의 엄마가 되어주세요>
엄마는 아기를 겨울 한밤중에 얼은 길바닥에 버렸다. 이름도 생일도 없이. 심장이 엄지보다도 작을 때 버려진 아기, 엄지손가락을 구부리는 데 장애가 있는 아기. 방송사의 과장된 감성과 동정심을 덕지덕지 덧붙인 편집으로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후원금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대기업 사회공헌팀들은 앞다투어 아기가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까지 지원하겠다는 후원 증서를 보내기도 했다. 꽃잎 시 사람들은 만났다 하면 그 이야기로 한참은 떠들어댔다.
세상에는 남이 갖고 태어난 불행을 보면서 지가 타고난 행복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쵸? T는 센터에 종종 들렀던 유명 인사였다. 봉사 때마다 늘 부부가 함께 왔고 그 모습이 보기 좋다며 칭찬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이는 없었고, 10분 거리 프리미엄 OOOO 아파트에 산다고 했고, 101동이면 아마도 221제곱미터짜리고, 남향에, 실거래가가 십몇억.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릴 때마다 화제가 되고 그게 돈이 된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었던 기억이 났다. 요즘 흔하다는 딩크족인가 싶었는데 뜬금없이 찾아와 엄지를 입양하고 싶다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줘도 안 바꿀 참인데?
그러나 T는 그보다도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입양아가 되어 부모가 생기면 지금껏 받은 후원금은 토해내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의 약속한 후원은 영영 끊긴다. 굳이 서류상 입양은 너나 나나 손해 아니겠나. 우리는 그저 아이를 키워보고 싶다. 당신도 애가 병원에서 나오면 사람을 고용해서 돌봐야 할 텐데 그걸 돈 안 받고 우리가 돈 들여 기꺼이 하겠다는 거다. 물론 누가 이 사실을 알면 좋을 게 없으니, 우리가 보육 봉사를 하는 걸로 해달라. 분명 생각 이상으로 이쪽도 저쪽도 이득이 되는 거래였다. 마침 3차 수술을 마친 아기는 곧 퇴원하기로 되어있었고 여러 가지로 피곤해지려는 참이었기에 그 제안이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묵직하던 목덜미가 순간 시원해짐을 느꼈다.
아기는 그 뒤로 5년 가까이 그 집에서 지냈다. 취재나 촬영 스케줄이 있을 때는 언제나 k 집사가 미리 데리러 왔고, 그 광경은 흡사 밤중의 첩보 작전 같았다. T 부부는 어쨌거나 둘이서는 제법 잘 지냈다. 나름의 각오는 했다고 생각했는데 셋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화제성이 있는 아기이니 봉사라는 좋은 뜻으로 부부의 소셜미디어 가치를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너무나 빨리 좌절되었다. 아기는 너무 시끄러웠고, 잘 먹지도 그렇다고 잠을 잘 자지도 않았다. 집사와의 약속을 바로 없던 일로 하자니, 체면이 영 껄끄러웠다. 거기다 사람들의 관심마저도 언제 그랬냐는듯 시들해졌다. 결국 그동안 부부가 배운것은 기껏해야 부드러운 천으로 잘 감싸서 때리면 피부에 상처가 잘 남지 않는다는 것, 상처에는 15밀리 한 통에 십만 원인 프랑스 OO 연고가 가장 효과가 좋다는 것 정도였다. 그나마 기업에서 약속한 후원금은 센터로 차곡차곡 연금처럼 들어왔지만, 사람들은 아이에게 더는 새로운 기부를 하지 않았다. 유행이 끝물인 걸로도 모자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T 부부는 결혼 십 년 만에 임신했고, 더는 객식구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센터로 돌아온 아이는 제법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봉사자 중에서는 아직 아이를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어, k 집사는 어느새 수다스러워진 아이가 꽤 불편했다. 아이는 남들의 물질적인 관심을 받기에는 너무 커버렸고 잡무를 떠밀어주기에는 아직 어렸다. 고작 주변 쓰레기 치우기나 시킬 수 있을 뿐이었고 온종일 어디에 처박혀 지내는지 밥때빼고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 점이 k 집사를 제일 짜증 나게 했다. 여기는 봉사든 후원이든 거기에도 나름의 유행과 패션이 존재하는 동네였다. 철 지난 옷이 옷장에서 치워지듯 유행이 지난 것들은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정이 얼마나 딱하고 절박하든 상관없이 후원 목록에서 제외됐다. 따라서 그 유행에 앞장서는 게 이 사업의 운영방침이었고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겼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센터, 그리고 센터 명의의 계좌에 찍히는 숫자들에만 쏠려 있었다.
아이는 여느 때처럼 길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가기를 구석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k는 화가 난 채로 켜져 있고 그래서 가까이에 있고 싶지 않다. S를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전이었다. 평소처럼 건물 벽에 기대 바닥에 앉아있는데 작은 가방을 든 어떤 여자가 조용히 다가와 “얘, 너, 너구나.”라고 말을 걸었다. 아이는 누군가 뜬금없이 아는 체를 하는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여자는 가방에서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릇에 사료를 쏟아부었다. 아이는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자기 옆에 앉은 사람이 k가 치를 떠는 길고양이 엄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다섯 살치고 말을 고분고분히 듣는 편이었지만 도무지 그다음 말을 믿기 어려웠다.
“너, 너를 내가 낳았어.”
k 집사는 어쩌면 5년 전 그날보다 더 머리가 지끈거렸다. 딱히 찾을 일도 없었지만 알아서 밥때가 되면 식탁에 앉으니 관심이 없었을 뿐인데 벌써 3일이 지났다. 실종신고를 하자니, 관리 책임을 묻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남은 후원이 끊기면? 커질 대로 커지고 오를 대로 오른 신도시의 거품은 여전히 흥청거렸지만, 사람들은 교양 시민으로서의 비용을 내고 남들의 관심을 사는 데는 점점 인색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봉사와 나눔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져버리려는 이들이 원망스러웠으나 그럴 때일수록 앞장서서 유행을 끌어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때문에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일이 없자 너무나도 쉽게 그 문제를 뒤로 넘겨버렸다.
방은 센터의 화장실보다도 작았다. 동네 한쪽의 원룸촌이었고, 꽃잎 시에 개발 붐이 한창일 때 현장 인부들의 숙소로나 쓰였던 곳들이라 한참은 낡았고 쿰쿰한 냄새가 깔려있었다. 봉사자 이모들이 만들어주는 고기반찬도, 완구 회사의 이름이 크게 붙은 장난감들도 없었지만 아이는 그곳이 싫지는 않았다. 아마 S가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었다면, 아이는 그곳에서 몇 년은 더 붙어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오로지 고양이만 신경 썼기 때문에, 아이가 고양이 알레르기 때문에 매일 몸을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긁어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를 데리고 중심가의 대형마트에 가서 사료를 사 왔다. 지하철로 세 정거장, 아이가 따라 오기 전에는 차비라도 아끼려고 걸어 다니던 거리였다.
S는 원래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고양이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한때 꽃잎 시에서 가장 큰 백화점에서 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기다려도 사기 힘들다는 고급 브랜드의 판매직으로 일했다. 엉킨 실타래를 함부로 잡아당기면 더 엉키기만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근했던 날은 약간 그런 날이었다. 일주일 전에 미리 주문했던 고양이 사료는 아직도 배송 중이었고, 하필 오픈 조 근무라 따로 사러 갈 여유도 없었다.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날마다 별별 사람을 겪지만, 그는 애초에 칭찬도 욕도 담아두기보다는 흘려버리는 사람이었다. 다만 키우는 고양이가 집에서 배를 곯고 있다는 생각에 그날따라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을 뿐. S는 그날 그 자리에서 해고되었다. 해고 사유는 근무 태만이었으나 실은 백화점 최고 등급 고객을 알아보지 못하고 입장 대기 목록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장 거울 뒤에 있는 프라이빗룸으로 불려갔고, 매장 직원들 모두가 짝, 짝, 짝하고 살과 살이 매섭게 맞닿는 소리를 들었다.
꼬박 열 시간씩 구두를 신고 허리를 숙이는 일은 고됐으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멋진 브랜드를 소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는 원래 행불행에 휘둘리는 편이 아니었지만 붉게 부풀어 오른 얼굴이 가라앉도록 그날 그 순간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의 얄팍한 자부심은 결국 싸구려 가짜에 불과했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싫어 외출도 할 수 없었다. 수입이 끊기니 잔고는 포댓자루 안의 쌀보다도 빠르게 줄었다. 보증금을 다 까먹기 전에 이사할 곳을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날, 그는 30분을 넘게 걸어간 낯선 거리에 고양이를 두고 왔던 길을 멀리 되돌아왔다.
그 뒤로 몇 년을 주말마다 외곽의 물류센터에 분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손바닥만 한 것부터 몸만 한 것까지 온갖 것들이 키를 넘은 높이로 쌓여있었다. 종종 전에 일하던 매장의 디스플레이가 겹쳐 보이곤 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그게 그를 주말마다 출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B는 그곳에서 일하다 알게 됐다. 각자 정해진 자리에서 제 일을 할 뿐이기에 사람들은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S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S는 남의 말을 흘려듣는 편이었고, 그래서 그 친절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섣부른 기쁨에 젖었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기까지는 일 년도 걸리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끼리끼리 눈빛을 주고받으며, 팀장에게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가는 S의 아랫배를 흘깃거릴 뿐이었다.
고양이를 두고 오는 것과 아기를 두고 오는 것, S는 그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컴퓨터, 핸드폰 따위의 돈백은 하는 기기들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고 돈 몇천 원이 아까워 텔레비전 수신도 차단해 둔 그였다. 세상이 어떤 버려진 아기로 떠들썩할 때도, 그는 일당으로 건물을 청소하고 몇만 원의 수고 비용을 받아 쌀과 고양이 사료를 사느라 바빴다. 여느 때처럼 사료를 두고 가려고 들렀을 뿐이었다. 그는 남의 말을 흘려들었지만, 그의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고작 말 한마디로 자신을 뒤따라올 줄은 몰랐다. 다행히 아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밥을 주면 먹었고, 나갈 준비를 할 때면 먼저 신발을 신고 쪼그려 앉아 기다렸다.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들어줄 처지도 못 되었지만.
아이들이 없는 동네였다. 아이는 그렇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혼자 아홉 살이 되었다. 피부 긁어서 난 상처로 온통 흉터로 가득한데다 제대로 씻지 않아 몰골이 처참했다. 아이는 주말이 되면 마트에 가는 S의 뒤를 한두 걸음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주말 아침이라도 번화가 지하철역에는 꽤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사람 대부분은 그 둘이 없는 사람인 양 눈길도 주지 않았다. 무료 나눔으로 받아 온 신발은 아이의 발에 맞지 않아 불편했다. 불편한 손으로 불편한 신발을 겨우 고쳐 신었을 때는 이미 덩그러니 혼자가 된 뒤였다.
누군가를 찾는 방법을 알 리 없었다. 항상 눈에 익은 신발 뒷굽만 쫓아다녔기에 당장 가는 길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아이는 조용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는 법밖에는 몰랐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 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있었던 역무원 M은 더는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겠다는 결심이 섰다.
“얘, 너, 엄지야. 맞지?”
아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감췄다. M은 한숨이 나왔다. 자신을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다. 언젠가 모두가 걱정하고 응원했던 아이. 그리고 지금은 어린 시절의 자신보다도 처량하게 남겨진 아이. 세상 모두가 알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모른체하고 피하는 아이.
M의 엄마는 어려서 혼자가 됐고 시설에서 자랐다. 한참 주변이 개발되고 아파트들이 생길 때, 모델하우스 영업사원이 일당이 세다는 소리를 듣고 자리를 구해서 들어간 그곳에서 남자를 만났다. 너무나 뻔해서 팔리지도 않을 드라마 이야기처럼 하필 그 사람이 회사 사장 아들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현실에서는 그 부모가 자식한테 절대 지지 않는 예도 있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아이를 낳고 나면 집에서도 못 이기는 척 그만 받아주실 거라고 했지만, 아니었다.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부모의 뜻대로 고분고분하게 원치 않는 상대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늘 돈 몇 푼에 쩔쩔맸지만 웃을 일이 없어도 웃을 수는 있었기에 자식 앞에서는 될 수 있으면 웃으려고 했다. 힘들게 하는 것은 가난이지 아이가 아니었다. 반찬 대신 간장에, 소금에 밥을 비벼 먹는 날이 더 많았어도 그마저도 마지막 남은 숟갈은 늘 자신의 몫으로 주던 엄마가 있었기에 M은 배는 고플지언정 마음은 곯지 않았다.
괴팍한 부모는 언젠가 자식으로부터 그 괴팍함에 이자를 얹어 되돌려 받는 날이 온다는 것을 잘 모른다. 한때는 자신에게 모두가 허리 숙여 인사하고 굽실댔는데, 까랑까랑하던 할망구는 어느새 아들의 은근한 멸시를 받아쳐 낼 기운도 없이 늙었다. 편하게 모시겠다더니 꺼내든 고급 실버타운 브로셔를 갈기갈기 찢어서 던질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날리는 눈발로 온통 하얗던 겨울밤이었다. 그래, 가라니 간다. 멋대로 기사를 호출해 나갔다. 흐릿한 눈으로 창밖을 보는데 웬 사람이 걸어가기에, 차를 세워보라 하고 보니 아기를 안아 든 여자였다. 기사는 시키는 대로 건네받은 머플러를 여자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런 감상도 들고, 일한 지 십 년이 넘도록 처음 보는 사모의 모습에 기사는 괜한 긴장이 되었다. 그러니 그 할망구가 다른 누구도 아닌 M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라 했을 때, 그는 짐짓 놀랐다.
통화는 연거푸 음성메시지로 넘어갔고 기사는 운전석의 히터를 끄고도 등에서 땀이 났다. 당장 이 자리에서 두들겨 맞고 해고당한다고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닌데 사모는 묵묵부답이었다. 다섯 번째 통화도 연결이 끊기자, 됐네, 계속 가시게- 했을 뿐. 그때 M과 M의 엄마는 애써 벨 소리를 무시하면서, 둘 앞에 어떤 괴로움이 생길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후에 아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대신한다는 유언장을 가지고 할망구의 변호사라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는 신종사기가 틀림없을 거라고 확신했을 정도로. 설령 진짜라도 추잡한 유산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빠지려는 둘에게 친부는 재단 설립을 제안했다. 남들은 벼락부자가 죽어서 벼락부자를 만들고 갔네마네 떠들었지만, 둘은 재단 운영에만 참여할 뿐 여전히 마트와 지하철역에서 밥벌이를 했다.
M은 어려서부터 역무원이 꿈이었다. 지하철은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사람을 실어다 주는 좋은 교통수단이었다. 지하철은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도 좋았다. 문 앞으로 데려다주지는 못해도 그 과정이 조금 덜 어렵게 돕는 건 제법 멋진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는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지금껏 생각이나 해봤을까 싶은 아이가 있었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아동센터는 역에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억지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무것도 모르면 네가 모르는 게 뭔지 절대 알 수 없어. 아는 게 있어야 모르는 것도 알게 되는 거니까. 아이에게는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 네가 네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엄마가 아니라도, 아이는 아이를 돌봐줄 어른이 필요하다고.”
머뭇거리던 아이는 주춤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아이에게는 삶이 필요했다. 그는 이제라도 아이에게 제대로 된 삶이 주어지기를 원했다.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려 준 사람은 그때까지 그가 유일했다. 손을 보고 놀라지도, 놀리지도 않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내민 손을 잡아준 것도.
혼자 똑 떨어져 서 있으면서도 나머지를 보듬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엄지손가락뿐이다. 그는 아이가 그런 어른이 될 때까지 지켜주리라고 다짐했다. 아이는 앞으로도 엄지라고 불리겠지만, 그 이름의 뜻만큼은 앞으로는 달라질 거라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하철이 플랫폼 안으로 들어왔다. 스쳐 가는 사람들의 옷깃에서 희미하게 봄비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