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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이사 Jan 17. 2021

우리가 뿌리를 내리기까지

박완서의 '카메라와 워커'를 읽고




초등학생 때 독후감을 쓸 일이 있었다. 뭘 읽을 건지 미리 써내라기에 추천도서목록에 있던 ‘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를 골랐다. 정갈한 표지가 맘에 들었던 데다, 격조 있는 한국 소설을 읽어보겠노라는 패기도 있었다. 금방 후회했다. 고된 전후의 삶이 사실적으로 드러나는 소설은 어째 읽을수록 마음이 답답해지는 게, 영 버거웠다. 쓰디쓴 첫맛의 기억 때문인지 작가와의 인연은 어린 날에 멈추고 말았다.


그런 그의 책을 다시 집어 든 건, 민음사의 쏜살 문고 살펴보다 발견하게 된 단편 때문이었다. '카메라와 워커.' 카메라에 대한 소설이 얼마나 무겁겠냐며 펴 들고 봤더니,  6.25 전쟁으로 부모를 여읜 훈이와 그를 사랑하는 고모 이야기. 가족들은 훈이 주말이면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과 놀러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란다. 그래서 아이의 뜻을 꺾어 문과 대신 이과로 진학시키기도 하고, 취직이 안 되자 공사장 임시직으로 보내기도 한다. 좀 버티고 있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면서.


분명 수십 년 전에 쓰인 글인데, 워커를 신은 훈의 열악한 처지는 어쩐지 생경하지가 않다. 훈은 밤낮으로 상사에게 쫓겨 업무 외의 업무를 하러 다닌다. 옷에 이가 끓을 정도로 자기 몸 하나 챙길 여유가 없고, 먹고 자고 나면 모이는 돈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공사판에 남고, 고모도 그를 두고 온다. 여길 벗어나 '카메라를 드는 평범한 삶' 살아낼 방법을 여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가 지나도록 취업을 준비하느라 독서실에 앉은 채로 소설을 읽었다.  읽을 때쯤엔 내 발에도 워커가 신겨 있는 것 같 느낌이 들었다. 어느 때고 평범한 삶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결말 이후의 결말이 궁금해 ‘박완서 조카’를 열심히 검색해봤지만 나오는 게 없었다. 못내 아쉽다가, 문득 이대로의 결말도 좋단 생각이 들었다. 조카 훈의 정해진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세상의 여러 ‘훈’들을 그려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버거움을 견뎌내고 보니 알아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조카나 아들이었고, 아버지였으며,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을 '훈'들을, 그리고 그들과 꼭 닮아있는 허다한 '훈'의 자손들을.  땅에 뿌리내린 문학만이 그들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활자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도, 사람만은 다른 이에게 심기운 채로 오늘도 피고 지숨을 나누고 있다.


* 오늘 신문에서 75세 된 할아버지가 작년 공사현장에서 돌아가셨단 얘길 읽었다. 54세 노동자 얘기도 있었고, 또 연달아 떠오르는 용균 씨와 구의역 김 군까지. 워커를 신은 ‘훈’의 서사는 아직도 이 나라에서 흔하디 흔한 류의 것이다.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땅 어디메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그러나 아직도 얼마나 뿌리 내리기 힘든 고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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