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을 같이 먹자며 동생은 퇴근하고 곧장 우리 집으로 왔다. 청주에서 세종까지는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그 버스에서 내려 버스를 한 번 더 타고도 1시간쯤 와야 하기 때문에 누가 태워주지 않는 한 동생이 세종에 오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런 애가 평일에 불쑥 맛있는 걸 사달라면서 온다는 거였다.
뭔가 마음 다치는 일을 겪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짚이는 구석도 있었다. 난 가족의 상처와 관련해서만큼은 감각이 고도로 발달해 있어 이런 예감은 별로 틀리는 일이 없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은 남자친구와 전날 헤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먼 길까지 걸음 하게 한 이유는 그거 하나뿐은 아닐 것이었다. 카페를 개업한 이후로 동생은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에 도착한 동생은 내가 잘라주는 고기를 먹으면서 자신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대해, 이것이 과연 끝나기는 할 것인지에 대한 막막함에 대해 얘기했다. 7살이나 많은 언니로서 뭐라도 유익한 말을 해주고 싶어 내가 아는 말들을 모조리 뒤적여봤지만 정말이지 마땅한 게 없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잘 될 거야!" 이건 너무 무책임하다. 게다가 '열심히'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답할 말도 없다. 난 장사의 생태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동생을 고기 앞에 앉혀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둘이서 다 못 먹을 만큼의 음식을 시켜주는 것뿐이었다.
물량공세가 의외로 통했던 걸까. 배가 터질 만큼 고기를 먹고 포장해 온 아이스크림까지 모조리 비운 뒤 잠에 든 동생은 다음날 오랜만에 잠을 잘 잤다고 했다. 그게 고기 때문인지, 아이스크림 때문인지, TV를 보면서 나눈 수다가 즐거웠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날보다 조금은 밝아진 표정에 내 마음을 내리누르던 걱정도 한시름 덜어지는 것 같았다.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은 위로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서 몇 마디 말로도 희망이나 용기 같은 감정을 갖게 했다. 아주 먼 훗날까지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그래서 잊은 줄 알았던 순간에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말을 해준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없는 재능이다. 하지만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함께 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가벼운 수다를 떨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있다는 걸 안다. 함께한 이런 시간들이 동생에게도 희망이나 용기 같은 걸 전해주기를, 언젠가 다시 잠 못 드는 밤이 오더라도 오늘을 돌아보면서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