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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Jul 29. 2024

혼자 할 수 있는 일, 둘이면 더 좋은 일

세종으로의 이사는 세 번에 나눠서 했다. 발령받은 날에는 침구와 옷, 없어선 안 되는 생필품을 한가득 차에 실어 내려갔고, 그로부터 한두 달쯤 후에는 업체를 불러 침대, 책상, 옷장 등의 가구를 모조리 뺐다. 서울 집 계약이 끝나던 날에는 남아있던 짐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다시 차로 옮겼다.


세 번의 이사 중 처음과 마지막은 모두 혼자서 해냈다. 그중 마지막은 특히 고됐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 그 집엔 뭐가 없었다. 방바닥엔 이불이 덜렁 펼쳐져있고, 거실에는 조그만 식탁과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있었다. 장의 속옷과 잠옷을 빼고는 옷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런 집에 무슨 짐이 그렇게 숨어있었는지... 그 겨울밤, 난 차에 짐을 싣기 위해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계단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그날의 이사처럼 살면서 크고 작은 대부분의 일들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해왔다. 그건 내게 당연한 일이었고, 웬만해선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선택지에 아예 없었다. 가끔씩은 그게 일종의 훈장처럼도 느껴졌다. 잘 큰 어른의 표시 같은 거랄까. 백미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차 안을 가득 채운 짐을 보며 뿌듯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이번에도 혼자 척척 해냈다, 늘 그랬듯이!


며칠 전엔 동생이 장사를 접으면서 가게에 있던 온갖 집기들을 옮길 일이 있었다. 난 힘세고 체력이 좋은 개 멋진 언니이니까.. 내가 도와주면 됐지 다른 누구의 도움을 더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도 애인이 먼저 도와주겠다는 말을 꺼냈다. 굳이? 싶었지만.. 마침 옮겨야 하는 물건 중에 오븐이 있는 게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내가 두 명이었다면 번쩍번쩍 들어 옮겼겠지만 동생은 힘을 잘 못쓰니 다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비록 그게 동생의 이사였지만, 나보다 더 힘세고 몸을 잘 쓰는 누군가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도와주는 이사란 생각보다도 더 멋진 일이었다. 조금 덜 무겁고, 조금 덜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이 편한 건 둘째였다. 힘들고 귀찮은 일에 기꺼이 시간 내 달려와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거, 굳이 힘을 보태주겠다며 편한 옷 챙겨 들고 오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거. 그걸 깨닫고 나서야 채워지는, 비어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을 알게 된 게 그날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 둘이 하면 그저 더 좋을 뿐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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