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었다. 외할머니 생신을 맞이해 큰이모 댁에 친척들이 모였다. 팔순 넘은 할머니와 환갑과 일흔 넘은 이모와 이모부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이 모임에서 나는 애였다. 촌수가 그렇다는 거다. 모임 장소인 큰이모 댁은 경기도 화성에 새로 지은 아파트였다. 막 도착할 무렵 어머니가 먼저 온 가족 중 한 명을 아파트 정문으로 보낸다고 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유는 몰랐으나 밖에 나올 일이 있거니하고 알았다고 답했다.
아, 집에 도착하고나서야 알았다. 그 아파트는 신식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스피커에 대고 “몇 동 몇 호요”라고 말해야 경비실에서 문을 열어주고, 지하 주차장에선 방문하는 동과 호수를 눌러, 상대방이 문을 열어야 엘리베이터를 타는 복도로 들어갈 수 있다. 집안에서는 전기와 전등을 한곳에서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문제는, 이 집 주인이 일흔 넘은 이모와 이모부라는 데서 발생했다. 이사오고 두어 달이 지나서 조금은 익숙해지신 듯했으나, 두 분은 여전히 이 집을 어려워하셨다. ‘애터진다’가 이사 소감이었다.
요즘 가스레인지는 ‘딱딱딱’ 소리가 나지 않고 전기로 스파크를 일으킨다. 전원을 연결해야 작동하는 건데 이 것 때문에 매운탕을 끓이다가 난리가 났다. 가스레인지를 쓰려면 부엌 쪽 전기를 열어야 하는데 이걸 제대로 익힌 사람이 없어서 이리저리 누르다가 연결이 되었다 안 되었다 하면서 한동안 매운탕에 아무런 열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보일러를 트니 이번엔 외벽 쪽 벽과 창에 결로가 생겼다. 이런 집에 처음 왔던 나는 창문을 열었는데 알고보니 현관 옆에 있는 단추로 환풍기를 틀면 됐다. 전등도, 난방도 이렇게 조작하면 되는데 집주인인 이모와 이모부에겐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생신 잔치는 서양의 파티 문화와 비슷했다. 집마다 먹을 걸 싸왔다. 음식을 싸온 집이 있는가 하면, 나눠 먹으려고 식재료를 싸온 집도 있었다. 어느 건 그 자리에서 먹고 어느 건 냉장 또는 냉동 보관했다. 냉동할 재료를 분리하다 있던 일이다. 냉동실이 좁아서 이모가 김치 냉장고 맨 아랫칸을 냉동고로 바꾸라고 했다. 김치 냉장고에 이런 기능이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는데 이모가 다룰 줄 모른다는 것도 그날 알았다. ㅠ. ㅠ
나름 어린데 버벅 거리며 기능을 겨우 찾았다. 이때 든 생각이 이걸 또, 김치 냉장고 기능으로 바꾸려면 이모는 어떻게 하려나였다. 사촌 언니나 젊은 삼촌 누구가 오길 기다릴 것이다.
큰이모 댁에 다녀오며 아마존 에코 같은 인공지능 스피커는 두 분을 위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가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두 분의 구수한 사투리를 알아들을 제품이 나오려면 한참은 남은 것 같아서다. ‘게’를 ‘기’라고 발음하는데 이걸 지금의 기술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방금 네이버에서 ‘기 삶기’를 검색했는데 네이버는 ‘삶기’를 텍스트 검색한 결과를 보여준다. ‘기’가 ‘게’의 발음일 수 있단 걸 알아채지 못했다.
생일 잔치 때문에 시골에서 모셔온 외할머니는 말씀은 안 하지만, 앉고 일어나고 걸을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거동하기가 불편하신 거다. 불 하나 끄려고 방 끝에서 저기로 가는 것도 할머니에겐 힘들다. 게다가 연세 때문에 귀도 잘 안 들리신다. 이런 할머니와 대화가 통하는 제품이 나올 수는 있을까. ‘불 키라~잉’이라고 말하면 이게 보일러를 때라는 건지,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라는 건지 알아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한국에서도 쓰는 아마존 에코와 에코닷은 영어 학습용으로 쓰일 뿐, 일상에 파고들지 못했다. SK텔레콤의 ‘누구’를 산 김정철 편집장에게 후기를 들으니 아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아이가 ‘트와이스 노래 틀어줘’라고 하면 아빠가 스마트폰에 깐 ‘누구’ 앱으로 노래를 튼단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아니라 아빠 조종 스피커다.
네이버와 KT, LG전자와 LG유플러스도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들리는데 이들 기업 또한 사용자 층에 대한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음성 인식 기술과 자연어 처리, 음성 합성 기술, 그리고 데이터 처리와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기계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도록 하려고 개발자들이 골몰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기계가 이해하기 쉽도록 검색어를 고르고, 제품을 조작한다. 우리 할머니에겐 인공지능 기반의 머시기머시기보다 ‘이렇게 하면 켜지고, 요거이를 저렇게 하면 꺼지는’ 아날로그 방식의 아주 간단한 조작 방법이 편하다.
(스마트폰 앱이랑 연결하고 뭐하고 뭐하고... 하는 것보다 딸깍 한 번 올리고 내리고 당기는 게 더 편하다)
(이미지는 아마존 상품 페이지들에서
덧. 스마트홈 아파트를 또 만든다니. 모두에게 축복이 있기를. 피-스.
덧. 스마트홈과 유비쿼터스 주거의 차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