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그 많던 국산 맥주는 다 어디 숨어 있었나?
‘가장 선호하는 국산 맥주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하면 열명 중 일곱 여덟은 아마도 카스, 하이트, 맥스, 클라우드(이하, 대기업 맥주) 중 하나를 대답할 것이다.
저 제품들이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맥주 점유율은 (오비맥주 60%, 하이트진로 26% 롯데주류 4%)대략 90%에 육박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고 국산 맥주의 종류가 저것 밖에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대형 맥주 제조설비 공장을 갖춘 회사부터, 자체적인 맥주를 소량 생산해서 손님에게 판매하는 ‘브루어리 펍' 까지, 굉장히 많은 브랜드와 제조업체가 있다. 국내에만 크고 작은 양조장이 약 130여 곳이나 된다. 위탁 양조(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자체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계약을 맺은 다른 브루어리에서 맥주 레시피를 맡기고 OEM 방식으로 생산)를 통해서 자체 브랜드로 운영하는 소규모 펍 까지 포함한다면 이 보다 훨씬 많은 곳에서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국산 맥주의 종류는 대기업 맥주를 포함하여 적어도 100여개가 넘는 맥주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국내 브루어리 맵 *출처: 맹맵 by 학저비
그렇다면 과연, 일반적인 소비자들도 한국에서 이렇게 다양한 맥주를 생산한다고 생각할까? 앞서 말했듯이 아닐 것이다. 대기업들이 큰 자본력을 이용해서 마케팅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기 때문에 대기업 맥주가 소비자들의 눈에 지배적으로 많이 띄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기업 맥주가 눈에 많이 띄는 것과 국내 맥주가 다양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막걸리로 그 예를 들어보자, ‘막걸리’ 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장수막걸리나 국순당 같은 큰 기업을 자연스럽게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걸리 소비자들의 인식에 저 두 곳이 우리나라 막걸리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막걸리 소비자들은 비록 유명하진 않지만 각 지역 마다 막걸리를 만들며, 다양한 막걸리가 생산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중 일부는 자신들이 애정하는 지역 막걸리가 있다.(물론 맥주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맥주에 대한 인식은 막걸리의 그것과 큰 차이가 있다. (막걸리와 맥주의 생리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예로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국내 맥주에 대한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 하는 큰 이유를 두가지로 생각한다.
(대기업과 소규모 맥주의 자본력의 크기와 규모의 경제 여부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기로 한다.)
첫 째는 정부 규제,
둘 째는 수제맥주 제조사들의 마케팅 방향성이 그 원인이다.
우선 정부 규제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보자.
맥주의 다양성 측면에서만 본 다면 2002년부터 지금까지 두 번의 큰 주세법 개정안이 있었다. 먼저 2002년에 소규모 맥주 생산에 대한 허가가 이루어짐으로써 소위 말하는 하우스맥주를 생산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펍에서 맥주를 소량 생산해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외부 유통을 금지 시켰고 엄청난 세금과 제약 때문에 하우스 맥주의 명맥을 이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4년이 되어서야 소규모 생산 하는 맥주를 외부 유통이 가능 하도록 허가했고 세금도 다소 낮춰주는 개정안이 발효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제약은 있었다. 바로 소매점 유통을 허가 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말해서, 일반 제조 면허를 갖지 않는 소규모 맥주 제조사(면허의기준은 맥주의 생산량으로 정해진다. 현재 연 생산량 75KL 이상이되어야 일반 제조 면허를 받을 수 있고 소매 유통이 가능하다.) 들은 동네 슈퍼나, 편의점, 마트 등과 같은 소매점에는 납품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2018년 4월을 기점으로 소규모 양조장들도 살균, 필터 등 일정한 생산 설비규정과 유통 기준을 준수하면 소매 유통이 가능해 진다. 이러한 정부의 규제가 전국 각지에서 태어난 수제맥주 신생아들을 출생지역에 꽁꽁 묶어 두었기 때문에, 그 동안 소비자들은 대기업 맥주 밖에 볼 수 없었고 자연스레 우리나라는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지 않는 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두번째, 수제맥주 제조사들의 마케팅 방향성 측면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맥주를 인지하는 과정 (알아가는 과정)은 크게 두가지 채널이 있다. 하나는 직접 보고 마셔보는 능동적 채널, 다른 하나는 간접적으로 보고 정보를 주입 받는 수동적 채널이다.
전자의 경우, 마트와 펍과같이 맥주 자체를 판매하는 곳에서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맥주를 경험함으로써 맥주의 정보를 (생산지, 스타일, 도수 등) 인지하는 방법이다. 후자는 TV, 잡지에서 다뤄지는 광고나 간접적인 정보에 수동적으로 노출되는 채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소비자들은 맥주에 대한 정보를 인식하고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소규모 맥주 제조사는 소매점유통이 불가능한 제약과 비용 등의 문제 때문에 자신들의 맥주를 알리는 방법에 한계성이 있었다. 이런 제약과 한계성이 경영과 마케팅 전략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는 추후에‘대한민국 수제맥주 생존기’라는 주제로 자세하게 다루도록하겠다)
여러 제약과 한계성 때문에 소규모 맥주회사들의 경영 전략이 다양해 졌다.
그 중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 경영 초기에 국내 생산 수제맥주를 수입 크래프트비어로 인식해도 ‘좋게끔’ 마케팅 하는 것이다. (외국 맥주로 보이도록 철저히 의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수입맥주로보일 가능성이 큰 이미지를 갖추었다는 뜻)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을 제외한 수제맥주 회사 중에 일반 제조면허 1호가 세븐브로이 라는 회사다. 그리고 플래티넘과 코리아크래프트브루어리 라는 회사들이 뒤를 잇는다. 이 제조사들은 엄연한 국산 맥주다. 하지만 생산되는 맥주의 이름이나 레이블을 보면 초반에는 많은 사람들이 국산 맥주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수제맥주 사업을 시작 할 때 외국인 양조사들을 앞세워 정통성을 강조한 스토리 마케팅을하는 것이 필수 관례처럼 여겨졌다. 최근에서야 한글 네이밍과 한국적인 레이블 디자인을 통해서 오히려 국내 수제맥주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다. 이는 국산 맥주는 맛이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수입맥주가 국산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는 인식이 강했던 탓에 초기 국내 수제맥주 회사들은 자연스럽게 외국물에 푹 절인 듯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는 것이 객관적으로 맛을 평가 받기 좋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원산지를 중국산으로 당당히 표기 하기를 꺼리는 것과 같은 원리 랄까? 간단히 말해서, 국내 생산 맥주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충분히 다양했다 그러나 몇몇 제조사들의 모양새가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확실히 구분을 하기 어려웠고 그런 정보를 얻을 만한 창구 또한 부족했던 탓에 소비자들은 국산 맥주가 다양하지 못하며 맛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2018년 4월을 기점으로소규모 맥주 제조사들에 대한 세금이 완화되며 소매점 유통이 가능해 진다.
앞으로 두 달정도 뒤면 이미 출전 준비를 마친 브루어리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맥주 판이 펼쳐질 것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소규모 브루어리 할 것 없이 다양한 마케팅 전략과 눈과 귀를 사로 잡는 디자인과 스토리로 중무장한 맥주회사들의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물론 여러 측면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칭 '크래프트 비어' 라고 외치는 브루어리들은 대기업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전략 무기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국내 크래프트 비어들이 경쟁력 있는 자신들 만의 무기를 갖춰서 대중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선택을 받았으면 한다.
지난 칼럼에서도 말 했듯이 크래프트 비어는 독특한 '정신과 문화'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마케팅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상술'이며 맥주의 맛은 '카피'에 불과하고 디자인은 '있어빌리티'일 뿐이다. 그 동안 트렌디한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미식,음주 문화가 상당히 성숙해졌다. 제대로 된 맥주판이 열리면 소비자들의 수준은 더욱 올라 갈 것이라고 믿는다. 진짜와 사짜가 첨예하게 갈리는 시장이 다가 오고 있어 설렌다.
다음 편 예고!
'대한민국 수제맥주 생존전략' 이란 주제로 각각의 유명 수제맥주회사들을 예로 들어서, 최근 수제맥주 회사들이 걸어온 발자취와 앞으로의 행보를 예측해 보는 칼럼을 기고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