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er Speak

수입맥주와 수제맥주의 평행이론 in 대한민국 맥주 시장

대한민국 수제맥주 생존버라이어티 에세이 #0

by 고첼

이번 칼럼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제맥주 회사들 중 3곳을 선정해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탄생하고 성장하게 됐는지 3편으로 나누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특정 수제맥주 회사들을 언급하기에 앞서서 대한민국에서 수입, 수제맥주가 어떤 방식으로 변해 왔는지에 대해서 전반적인 흐름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앞으로 수제맥주 회사는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제 의견을 말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수입맥주와 수제맥주의 평행이론 in 대한민국 맥주 시장.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 할 수있다.

수입맥주 시장을 통해서 바라보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방향성.

1990년 대 초, 국산 맥주 독과점 시장에서 수입맥주가 지금처럼 성장해온 모습은 흡사 현재 국내 크래프트맥주 시장의 그것과 닮아있다. 같은 DNA를 품고 진화해온 모습을 통해서 국내 맥주산업이 나아갈 방향성을 알아보자.


소비하는 이유와 집단이 비슷하다.

1990년대초 88올림픽 이후로 본격적인 수입 맥주의 시대가 열렸다. 그 당시 ‘수입산’ 이란 말은 ‘트렌디한, 힙한, 세련된 그리고 품질 좋은 등’ 과 같은 뜻이었다. 수입산을 무조건 최고라고 여기는 시대였다. 당시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강남에 사는 사람과 강북에 사는 사람, 외국을 다녀 와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고 하이네켄을 마시는 사람과 오비를 마시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하이네켄을 마시면서 하이네켄을 독일 맥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네덜란드 맥주라며 세련된 정보를 알려주고, 주문한 밀러 병을 받아 들고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손으로 뚜껑을 돌려 따주는게 멋이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말 하고 나니까 그 당시 맥주를 즐겼던 사람 같지만 저도 들은 얘기입니다. ㅎㅎ)

1990년대 강남과 강북은 갈렸고 지금 10~20대 들은 들어 본적도 없을 단어 '양담배'를 통해서 당시 한국이 서양문화를 얼마나 동경했는지 알 수 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수입맥주는 더 이상 ‘멋’지지 않은 기호식품이 되었다.

FTA가 체결 되면서 관세가 없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격이 내려갔다. 그 결과,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수입맥주가 국산보다 저렴하게 판매 되기도 한다. 하지만 펍이나 클럽 같은 주점에서는 똑같은 수입맥주가 국산 보다 2배 가까이 비싸지는 기형적인 유통 구조가 되어버렸다. 굳이 똑같은 맥주를 집 밖에서 마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자승자박) 그리고 수입맥주의 다양성이 크지 않았다. 브랜드는 많았지만 맥주 스타일은 다양하지 않았다. 대부분 필스너 계열과 소수의 밀맥주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덧 수입맥주가 품고 있는 가치는 국산 맥주의 그것과 큰 차별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2010년 즈음, 더욱 다양한 수입 맥주로 무장한 ‘맥주창고’로 불리는 세계맥주펍이 우후죽순 생겼다.

다양한 맥주가 많이 수입 될수록 맥주창고는 더 많아졌고 맥주창고가 더 많아지자 수입맥주의 종류가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나라에 ‘인디카’라는 녀석이 들어오면서 ‘대 IPA 시대’가 열렸다.

인디카의 한국 진출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가요계로 따지면 서태지, H.O.T, 싸이 정도로 비교 할 수 있겠다. 아니면 레쓰비…정도?

아쉽게도 아직 커피계엔 인디카 같은 녀석은 안나왔지만 이 세상 것이 아닌 커피는 이미 나왔다. 그리고 맥주계의 아이폰 인디카


아이폰으로 비교하면 이해하기 좋겠다. 카테고리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혁신적이라서 어떻게 정의를 해야 할지 어벙벙하게 만드는 존재. 기존 시스템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릴 만큼 파급력이 있는 존재. 인디카는 크래프트비어, IPA가 전무하던 한국 맥주 시장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낸 입지전적인 제품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경리단의 20평 남짓한 조그마한 펍 몇 곳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팔리기 시작했다. 이름도 생소한 IPA, 페일에일, 위트에일 등등 그것도 생맥주 탭으로 말이다. 이제 다시,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크래프트비어를 마셔본 사람과 아직 마셔 보지 못 한 사람.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 수단으로서 수입맥주를 소비하던

1990년대 사람들처럼, 크래프트비어를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부르클린의 힙스터가 된 것 같은 기분’ 을 소비했다.

간단히 말해서, 1990년대의 수입맥주를 소비하는 이유와 2010년대 이태원에서 크래프트비어를 소비하는 이유에는 상당히 비슷한 공통의 분모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맥주 자체가 색다르게 맛이 있다. [절대적으로 맛있다는 것이 아니라 맛 자체의 차별성이 크다]

국산 맥주만 마셨던 사람들이 처음, 하이네켄이나, 기네스를 접했다면 완전히 다른 맛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다시 크래프트비어를 마시게 된다면…

2. 맥주를 마시는 행위가 자기 표현의 창구다. [맥주에 어떤 의미를 투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욕구]

최신 스타일과 유행에 민감하다, 다양한 제품으로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싶다, 맥주의 다양한 맛을 즐기며 취미로 삼는다, 맥주 가진 철학과 정신에 크게 동감한다.

3. 트렌디한 맥주를 소비하면서 형성되는 동질감.

1990년대 수입맥주는 웨스턴펍에서, 2010년 크래프트비어는 이태원이나 서래마을, 서로 비슷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각 장소에 모여든다.


공급 방식이 비슷하다.

맨 처음 수입맥주가 우리나라에 공급됐을 때는 지금처럼 외국 맥주 회사가 한국에 법인으로 들어오는 방식이 아니었다. 당연히 미군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들어왔을 것이고, 보따리 꾼들로 불리는 소규모 수입사와 도매상들에 의해서 한국시장 일부에 유통이 됐다. 그러다 한국에서 시장 가능성을 본 외국 맥주 기업들이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거나 파트너쉽을 맺고 본격적으로 한국 맥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참고로 2000년에 롯데아사히주류, 2003년에 하이네켄코리아가 한국에 법인을 세웠다.) 그리고 한국에서 수입맥주가 성장하자, 너도 나도 맥주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직 한국에 소개 되진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맥주 브랜드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파울라너, 크롬바커, 에딩거와 같은 독일 맥주가 먼저 인기를 끌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독일맥주는 왜 인지는 모르지만 세계 최고의 품질 좋은 맥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1960~70년대 파독 광부, 간호사의 역할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여행이 대중화 되면서 그 곳에서 맛 본 산미구엘이나 타이거 같은 맥주의 수요가 커지면서 수입이 활성화 됐다. 그리고 미국 크래프트비어 인디카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소규모 수입맥주 회사가 더욱 많이 생겼다.

하지만 결국에, 공급이 소비자의 수요를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가져오면 무조건 팔렸기 때문이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가지고 오면 팔렸다. 그 중 대박을 쳐서 지금은 연매출이 900억 가까이 되는 비어케이라는 회사가 있다. 비어케이라는 덴마크의 칼스버그와 크루져를 수입하다가 중국의 칭타오를 추가 수입 유통하는 한국의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소규모 수입회사로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 동포와 관광객들의 증가로 자연스럽게 중국 음식점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칭타오의 매출도 증가했다. 칭타오의 한국 정식 수입사인 비어케이는 말 그대로 때를 잘 만나서 매출이 수직 상승하며 잭팟을 터뜨린 한국 수입맥주 시장에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아직까지는...

양꼬치엔 칭따오, 이런걸 앉아서 코푼다고 한다. 정상훈씨가 비어케이와 상관 없이 SNL에서 '양꼬치엔 칭따오'라는 유행어로 대박을 터트렸다. 칭따오 한국 모델 발탁은 그 뒤다.

이러한 수입맥주 시장의 잭팟 열기는 크래프트비어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또한 대규모 수입맥주 회사는 자본력을 이용해서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롯데아사히, 매일유업의 삿포로, 하이트의 기린은 일본 본사에서 유통 운영 할 것 같지만 한국의 대기업 자본이 컨트롤한다. 그리고 오비에서는 호가든, 버드와이저, 스텔라, 코로나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맥주를 한국 시장에 뿌린다. (사실 더 이상, 오비는 한국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2014년 세계 최대 맥주기업인 AB인베브가 오비의 지분 중 과반 이상을 인수했다.)

이들 대기업에서 들여오는 수입 맥주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들어와서 하는 일은 굵직하게 한 가지이다. 바로 'Sales, 더 많이 팔기, 시장점유율 높이기' . 세일즈나 점유율을 높이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맥주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내게 있어서 브랜드(정체성, 소비자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행위) 없이 단순히 판매판매판매로 매출만 높이는 행위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를 형성하고 소비자들이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게 만드는 과정은 뒷전으로 하고 단순히 인센티브나 프로모션으로 가격을 낮추고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뒤에, 경쟁자들의 진입을 막는 방식은 우리나라 맥주 회사들의 영업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기업 맥주와 차별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맛? 레이블 디자인? 세련됨? 가격? ……. 이러한 방식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차별성이 모호해졌다. 한국 맥주와의 차별성 덕분에 성장한 수입사들이 더 이상 차별성을 갖추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이제부터는 크래프트비어에서 수제맥주라는 용어로 바꾸겠다. )


우리나라 수제맥주 회사들도 수입맥주 회사들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경리단길에서 수제맥주 붐이 일어났고 인디카가 수입되자 그야말로 맥주 시장이 황금기를 맞이 한다. 그리고 마치 바로 이때를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세븐브로이, 카브루, 플래티넘, 코리아크래프트브루어리, 더부스 등 이태원, 홍대, 강남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수제맥주를 공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한다. 이 당시에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저 맥주들이 한국 맥주인지 수입맥주인지 모르고 혹은 상관없이 선택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수제맥주 시장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섰는지 대한민국 각 지역에서 소규모 중규모 심지어 대규모 수제맥주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제 돈 냄새를 맡은 대기업들과 벤처 투자회사들이 수제맥주에 자본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신세계가 데빌스도어로 포문을 열었고 LF(엘지패션)은 인덜지라는 Brew dog을 수입하는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고, 진주햄은 카브루를 인수했다. 그리고 미래에셋투자는 플랫티넘에 대규모 투자를 했고 더부스와 세븐브로이는 클라우드 펀딩과 VC통해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제주브루어리가 미국의 유명 크래프트브루어리인 부르클린브루어리와 파트너쉽을 맺고 대상그룹 소유의 VC를 통해서 대규모 공장을 건설했다.

이제 더 이상 소규모 수제맥주 회사라고 부를 수 없는 대규모의 수제맥주(왜 수제맥주인지는 도통 모르지만 자신들은 수제맥주 제조사라고 하니…근데 대규모 수제맥주가 논리상 맞는 것인가?)가 한국에 여럿 생겼다.

우리나라에는 대규모 맥주 회사가 이제 더 이상 오비, 하이트, 롯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약하자면, 1990년대 수입맥주가 한국 시장에 들어온 모습과 2010년대 크래프트비어, 수제맥주가 한국 시장에 발을 딛고 성장한 모습이 소비자, 공급자 측면에서 정말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장황하게 일장연설을 늘어 놨지만, 맥주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딱 하나다. 한국의 맥주 문화가 과거 수입맥주 회사들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과거 오비,하이트라는 양자택일의 맥주 시장의 틈으로 수입맥주가 들어왔다. 그리고 또 그 사이, 더 좁은 틈새를 비집고 수제맥주와 문화가 들어왔다. 바로 이 ‘틈’은 모두 다양한 맥주를 원하고 자신들의 색깔을 대변해주는 소비자들의 열망에 의해서 생겨난 균열이다. 하지만 과거 수입맥주나 현재 수제맥주 회사들은 그 틈 사이에서 소비자와는 다른 욕망을 엿보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뉴스에서는 수입맥주 시장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는 장미빛 가득한 기사를 내놓고 있다. 물론 양적 측면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말 질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공감하기 어렵다. 국내 맥주 시장이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경쟁은 꼭 필요하다. 다만, 과거 수입맥주 회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양적 성장에 너무 치우쳐져서 시장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자승자박하는 과오를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맥주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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