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조카는 겉보기엔 아프지 않아 보인다.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낮잠 타임을 놓치고 울기 시작했다.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며 휴지를 달라고 해서 주고 다시 텔레비전 시청을 하다가 이제 막 잠들었다.
얇고 아주 작은 휘파람 같은 숨을 쉬며 공기를 물들이는 애기는 아빠의 품을 찾을 정도로 연약한 악동이지만 매 순간 공간의 빛은 바꿀 만큼의 무언가가 있었다.
이 집은 오래된 빌라이고 지내던 어른들은 양녀도 키웠다고 한다. 양녀는 결혼했고 한쪽 방을 썼는데 그 방의 조금 더 엄숙하고 빛이 단절된 느낌으로 금욕적인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양평집에는 기도방이 있다. 지내던 가족들의 숨이 군데군데 스며 마치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에 안정을 준다. 아기는 그런 공간에서 안정감을 갖은 인간이 만들어낸 숨결을 내쉬며 궁극적으로 집을 조성한 인간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준다. 아기의 작은 휘파람 같고 들리지 않는 숨은 조금 더 가볍지만, 그 존재가 집에 거주한 할아버지와 누가 더 무거운지 알 수 없는 인간의 가치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기가 깰까 봐 블라인드로 해를 일부 가린 채 후지오의 앙칼 맞고도 오싹한 심리묘사의 우미인초를 펴 들자 그녀의 봄바람이 세로로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후지오의 바람이 불었고 , 이제 풍경의 묘사로 시작되는 한 챕터를 펼쳐본다. 책은 해가 일부 가려진 오후의 어둠을 거짓 없이 스미게 하고 아기처럼 예술품처럼 집안의 공기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물이든 자연이든 아기든 존재감이 있고 고체이든 액체이든 흐른다. 무엇이든 고체로 이루어진 존재도 아닌 것들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떠올리며 어쩌면 끌어당기는 것들은 별개의 것이라며 제멋대로 추측하고 16 챕터의 숫자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