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새벽을 깨운 포성. 대한민국의 운명이 위태로워진 그 순간, 창설된 지 불과 몇 년도 안 된 대한민국 국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절망 속에서 기적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상은 그 피와 땀, 그리고 투혼으로 조국을 지켜낸 최정예 사단 10곳의 실전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한국전쟁의 진정한 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사단들을 소개합니다.
�️ 10위. 제11보병사단 – 화랑부대
대한민국 강원도 태백산맥의 깊은 산중, 전선 후방에서 벌어진 조용한 전쟁. 바로 빨치산 토벌작전이었습니다. 11사단, ‘화랑부대’는 이 숨겨진 전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950년 8월, 급박하게 창설된 이 부대는 공식적인 전면전보다는 국내 치안과 게릴라 제거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결코 덜 치열하지 않았습니다.
경북, 강원 일대의 산악지역에서 은신한 공산주의 무장 게릴라들을 추적하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전쟁 내내 전후방 안정을 지키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 실전 경험과 작전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 9위. 제2보병사단 – 노도부대
‘철의 삼각지’ 철원지구를 지켜낸 사단. 제2보병사단, 노고부대는 강원도 철원의 중심에서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수차례 막아냈습니다. 중공군 1차 공세가 시작된 1950년 겨울, 산악지대 방어의 핵심은 바로 이 부대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적들은 숫자로 밀어붙였지만, 2사단은 방어에 철저했고,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참호를 사수했습니다. 포천과 철원 사이의 고지에서 벌어진 전투들은 대부분 백병전. 참혹하고 잔혹한 전투였지만, 이들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 8위. 제15보병사단 – 승리부대
강원도 금화지구. 험준한 산세와 복잡한 지형 속에서 끝까지 싸워낸 부대. 15사단, 승리부대입니다. 특히 유명한 ‘육탄 10용사’ 전투는 이 사단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열 명의 장병이 수류탄을 들고 적진으로 돌격하여 적 전차와 진지를 무력화한 그 작전은, 단순한 전술을 넘어선 사명감과 헌신의 상징이었습니다. 병력과 화력 모두 열세였지만, 15사단의 병사들은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선을 사수했습니다.
�️ 7위. 제5보병사단 – 열쇠부대
연천, 적성, 고랑포 등 한반도 중서부 최전선을 담당하던 제5보병사단. 열쇠부대라는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닌 전략적 위치의 열쇠를 뜻합니다.
전쟁 당시, 수많은 고지 전투에서 이들은 무너지지 않았고, 심지어 적에게 점령당한 고지를 수차례 되찾으며 ‘오뚜기’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수십 번 쓰러지고도 다시 일어났던 5사단의 병사들. 그들은 단단했고, 땅을 잃지 않았으며, 작지만 강한 부대로 기록됩니다.
�️ 6위. 제9보병사단 – 백마부대
1952년 10월, 한국전쟁 최악의 고지 전투 중 하나인 ‘백마고지 전투’. 바로 9사단 백마부대의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된 순간입니다. 중공군은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10차례 이상 파상공세를 퍼부었고, 백마고지는 하루에도 수차례 점령과 탈환을 반복했습니다.
그 고지를 지켜낸 것은 바로 9사단. 보병, 포병, 공병이 완벽히 협력하며, 지옥과도 같은 고지를 사수했고, 이후 이 전투는 미군에게도 전범(戰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백마고지는 이름만 남은 게 아니라, 그 이름 자체가 전설이 되었습니다.
5위. 제7보병사단 – 칠성부대
‘칠성부대’라는 이름처럼, 별처럼 빛나는 전과를 남긴 부대. 7사단은 38선 돌파 작전에서 선봉을 맡았으며, 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질 위기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버텨냈습니다.
특히 강원도 인제 일대에서의 고지 쟁탈전과 양구, 화천을 거쳐 북진하는 작전은 치열한 산악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보급도 끊기고, 통신도 막힌 상황에서 병사들은 사기를 잃지 않았고, 눈보라 속에서도 진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투혼은 지금도 전쟁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 4위. 제1보병사단 – 전진부대
국군 최초의 사단이자, 서울 탈환의 주역. 제1보병사단은 ‘전진부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항상 가장 앞에서 돌격했고, 항상 가장 먼저 적을 맞이했습니다.
한강 방어선 붕괴 이후에도 사단은 곧바로 재편돼 낙동강 방어선에서 활약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서울 수복작전에서 1사단은 중심축을 맡았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미군이 가장 신뢰한 국군 사단으로 유명했습니다.
�️ 3위. 제3보병사단 – 백골부대
백의의 해골, 죽음을 각오한 돌격. 3사단 백골부대는 강릉지구 전투, 회양-금성천 전투 등에서 맹활약하며 적의 허를 찔렀습니다.
1950년 10월, 원산 상륙작전을 감행해 적의 보급선을 차단하고, 함경남도 내륙 깊숙이 진입하며 북한군의 허리를 분쇄했습니다. 산악지형과 한겨울 혹한 속에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았고, 특히 백마고지 전투 직전까지 북부 전선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죽음보다 임무'를 중시하던 이 부대는, 진격의 끝에서 늘 살아남았고, 후퇴 없는 공격을 상징하게 됩니다.
�️ 2위. 제8보병사단 – 오뚜기부대
가장 과소평가된 전투력, 가장 끈질긴 전사 정신. 8사단은 다부동 전투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대구가 눈앞에 보이던 그 시점, 북한군의 남하를 막아낸 최후의 보루가 바로 이 부대였습니다.
수적 열세와 장비의 부족 속에서도 8사단은 마치 오뚜기처럼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20일이 넘는 격전 끝에 결국 적의 진격을 막아냈고, 낙동강 전선을 사수했습니다. 이들이 무너지지 않았기에 국군은 다시 반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1위. 제6보병사단 – 청성부대
한국전쟁 개전 초기, 가장 먼저 맞섰고, 가장 먼저 돌파했다. 제6보병사단, 청성부대는 전쟁 발발 직후 의정부 전투와 춘천 전투에서 수적, 화력 모두 우세한 북한군과 맞붙어 대규모 방어전에 성공합니다.
춘천지구 전투에서는 단 3개 연대가 6개 북한군 정규사단을 상대로 방어 작전을 펼쳤고, 이를 성공시킴으로써 수도권 방어의 시간을 벌었습니다. 이후 강릉 전투, 양양 전투 등 동해안 일대 방어에서도 공을 세우며 전쟁 내내 북방 전선의 핵심 축을 담당합니다.
적의 주력 전차부대까지 저지하며 전쟁 초기 국군 전체의 사기를 지켜낸 6사단은, 단연 한국전쟁 최고의 전과를 낸 부대로 평가받습니다.
70여 년 전, 이 땅은 불바다가 되었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지고, 집을 잃고, 삶의 터전이 무너졌던 그 순간. 누군가는 총을 들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생이었고, 아버지였고, 친구였던 이들. 그러나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전선으로 달려갔습니다.
우리가 지금 편안히 숨 쉬는 이 하늘, 이 땅, 이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 부대들, 이 병사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가능한 오늘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희생은 대한민국 곳곳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백마고지의 흙 한 줌, 낙동강의 물결 하나, 춘천의 고요한 산맥마저도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기억합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들의 이야기는 말없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철책선 너머 어둠을 향해 총구를 들고 서 있습니다. 그들도 그때 그들처럼, 우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안보는 늘 현재형입니다.
이 영상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잊지 말자’는 것.
그들의 이름, 부대의 역사, 전투의 기록 —
모두 다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친 그들,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억해야 할 시간입니다.
�� 감사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피로 지켜낸 대한민국을, 피로 이룬 그들의 승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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