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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an 31. 2020

7살 딸의 '이유'있는 반항

아이가 요며칠 수상했다. 어린이집 가방을 챙길 때면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어줄라치면 부리나케 달려와 가방을 낚아챘다. 쬐끄만 눈동자는 늘 어린이집 가방 앞주머니를 향해 있었다. 


저기다. 


아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슬쩍 가방 앞주머니를 열었다. 왠걸. 천장에 높이 올려두었던 젤리며 사탕이 용암처럼 쏟아져나왔다. 족히 50개는 돼보였다. 약속 위반이다. 


"잠깐 이리 와볼래?"


아이는 열려있는 가방 앞주머니를 보더니 화들짝 놀란 눈치다. 


"단거는 하루에 하나씩만 먹기로 했는데, 이게 뭘까? 저 천장 위에 있는 건 건드리지 않기로 했잖아."


아이는 쭈삣쭈삣 다가와 변명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거 나 먹을라고 그런거 아냐! 어린이집 친구들 하나씩 나눠주려고 했어..."


더 화가 났다. 하원한 아이 이에 들러붙은 젤리를 반길 엄마가 어딨을까. 아이들 가방 구석에 처박힐 사탕막대의 기분나쁜 찐득함은 또 어떻고. 


"단걸 줄 땐 선생님이나 친구들 부모님한테 허락을 받고 줘야 하는거야. 그걸 마음대로 나눠주는 건 나빠."


아이는 계속 친구들 나눠주려 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곤 그렁그렁한 눈물을 어쩌지 못한 채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따라 들어가려는 남편을 내가 막았다. 원칙은 원칙이라고. 제멋대로인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원이가 고민이 있대. 어제 자기 전에 그러더라. 어린이집에 친한 친구가 없대. 어린이집에 중간에 들어가서 민서는 지은이랑 벌써 친한 친구래.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혼자 색종이 접는게 슬프대."


모두가 왁자지껄 신난 교실 한구석에서 우두커니 혼자 색종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아이의 작은 어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음이 찢어진다는 게 이런 거다. 


방에서 의자를 끌고 와 낑낑대며 그걸 밟고 천장문을 열면서 아이는 얼마나 설렜을까. 이걸 나눠주면 벌떼같이 몰려들 친구들을 상상하며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이지 않은 쉬는 시간이 얼마나 신났을까.  


아이에겐 이유가 있었다. 늘 그랬는데 이번에도 그걸 놓쳤다. 아이의 다친 마음 앞에서 원칙 따위 의미가 없다는 걸 내가 또 잊고 있었다. 조용히 바닥에 흩어진 사탕과 젤리를 손바닥으로 모아 도로 가방에 넣었다. 


며칠 전엔 자지 않고 계속 수다를 떠는 아이를 나무랐다. 아이는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또 얼마 전엔 동생에게 장난감을 양보하지 않는 아이를 나무랐다. 이젠 만날 수 없는 친구의 선물이라 부서질까 무서웠다고 했다. 

언젠가는 막 잠들려는 찰나 아이가 내 발을 밟았다. 악. 왜 안 자고 돌아다니냐 나무랐다. 아이는 엄마 다리 안마해주고 싶었다며 흐느꼈다. 


매 순간 아이에겐 이유가 있었는데 난 그냥 원칙 타령만 해댔다. 엄마는 판사가 아닌데... 집에서 직장에서 내 마음 알아주지 않는다며 툴툴대던 서른 몇 살 어른이, 일곱살 내 아이에게 그랬다. 


먹먹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다음 날 오후,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등원을 맡은 남편의 보고였다. 




오늘 퇴근하면 아이에게 말해줘야겠다. 


"우리 딸, 이제 하산해."


눈물을 참지 못하면서도 매번 이유를 설명해준 내 딸이 대견하다. 

자기 생각에도 사탕 50개는 너무 많은 것 같다며 10개만 가져가겠다고 한 내 딸이 기특하다. 

색종이 접으며 슬펐다고 말해준 내 딸이 고맙다.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고 먼저 말해보겠다는 내 딸이 멋지다.


이젠 내 차례다. 

아이에겐 늘 이유가 있단 것을 잊지 말 것. 

원칙 위에 이유가 있단 것을 늘 기억할 것. 



일단, 무설탕 유기농 사탕부터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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