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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May 14. 2020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엄마는 끝까지 바빴다. 

주섬주섬 애들 물건 쇼핑백에 주워 담으며

이제 집에 갈 시간이라고 외치는 딸을

계속 뒤통수로만 보셨다. 

엄마 뒤통수 그늘에 앉아 둘째 양말을 신기며 물었다. 


"엄마, 우리 이제 가는데. 뭐가 그리 바쁘셔?"

"기다려봐. 거의 다 했어."


시계 볼 틈도 없다는 듯 엄마는 잽싸게 마트 가방을 꺼내신다. 

각 잡힌 반찬통이 탁탁 열맞춰 그 안에 쌓인다. 


"이건 명이나물이야. 고기 먹을 때 먹고,

이건 잔멸치볶음. 아까 애들 환장하더라.

이건 메추리알 장조림인데 조금 짜게 된 것 같네.

너 좋아하는 그 뭐냐, 그 커피도 잔뜩 사다놨어. 반 쯤 덜어가."


새언니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끼어든다. 


"우와 어머니! 너무 좋아요!"


그러고 보니 엄마가 꺼낸 마트 가방은 2개였다. 





오빠 내외가 짐을 나르러 주차장으로 간 사이 

엄마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엄마, 우짜노. 자식들이 이렇게 엄마를 부려먹어서?"


엄마가 비웃는다. 


"얘. 너도 니 자식들 시집보내봐라. 이게 힘든지 좋은지."


"안 힘들어? 흠... 울 엄마......

아빠 밥 차려주는 것도 

지겹고 귀찮다 그랬던 것 같은데?"


"몰라. 얼른 챙겨서 가. 너도 가서 쉬어야지.

얘, 근데 너도 니 시어머니한테 음식 좀 해달라고 해."


"엄마. 내가 울 엄마니까 이렇게 빌붙어먹지.

눈치보여. 폐 끼치고 싶지도 않구."


"엄마가 니 새언니 언제 제일 이쁜 줄 알아?"


"흠, 용돈 줄 때? 전화할 때? 손주 낳았을 때?"


"아니, 맛있는 것 좀 해달라고 할 때. 

엄만 그 말이 그렇게 좋더라.

니 새언니 엄마집에만 오면 밥을 고봉으로 먹잖니.

엄만 그 때가 그렇게 좋더라."





오늘 새벽, 19개월 짜리 둘째가 깨서 서럽게 울었다. 

좀처럼 그치지 않는 울음에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아이 방으로 갔다.

짙은 어둠 속에 조그만 아이의 실루엣이 보인다. 

아이는 앉아서 울고 있었다.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아이에게 다가가 안아주려 두 팔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 팔보다 빠르게 다시 자리에 누웠다. 

엄마의 존재를 확인한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나물 무쳐달라 찰밥 해달라는 소리가 

그렇게 이쁘다는 그 말의 의미를

잠든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애기 고맙네.

엄마를 필요로 해줘서."




사랑한단 말을 자주 한다. 

밥을 먹다가 눈이 마주친 첫째에게도 

젓가락을 쥔 채 손가락 하트를 남긴다. 


엄마 아빠와 통화할 때도 늘 인사처럼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옮은걸까. 

7살 첫째도 사랑한단 말을 곧잘 한다. 


"엄마. 나 걱정이 있어. 어떡하지?"

"왜? 무슨 일 있었어?"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라던지


"엄마, 나 임영웅을 사랑하는 것 같아."


라던지. 


따뜻하다.

아늑하다.

행복하다. 


하지만

그보다 뜨겁게 벅찼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첫째는 친구를 사귀지 못해 힘들어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을 초대해 수없이 호떡을 구워댔다. 

호떡을 입에 문 채 치켜세운 아이의 엄지 손가락을 보며 

내 마음이 벅찼다. 


둘째는 꽤 오래 모유를 먹었다. 

6개월 전까진 종일 2,3시간마다 엄마를 찾았다.

목청껏 울던 아이가 내 품에 안겨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자주 벅찼다. 


신이 나를 만든 이유가 있다면

바로이게 아닐까. 매 순간 생각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이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그 순간들이

내 삶엔 필요했다. 


어둠 속에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비로소 엄마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일곱살 첫째도 "딸! 도움이 필요해."란 말을 참 좋아했다.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단 사실만으로

우리 삶이 이렇게 기뻐질 수가 있다.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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