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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l 22. 2020

프로 세신사님을 뵈었습니다



세신하기 좋은 날이었다.

비는 추적추적 내렸고

높은 습도에 몸은 적당히 끈적였다.

마침 두어 시간이 비었다.

코로나로 반 년 넘게 미뤘던 세신을 감행했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할 때 지인들은 그걸 궁금해했다.

"한국 뭐가 제일 그리워?"


그 때마다 난 그랬다.


"대중목욕탕에서 데이기 직전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궜다가 일어나는 아찔한 순간이 그립지뭐."


물론 손 끝엔 달달한 냉커피가 놓여 있어야 하고

이후의 일정에 쫓겨선 안된다.

그 날 저녁 메뉴가 치킨이면 더할나위없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세신은 사실 뜨거운 탕목욕 끝에 걸친 

별책부록같은 거였다.


1시간 전까진.




세신을 하는 이유는 늘 같았다.

귀찮아서.

인간의 몸뚱아리는 참 단순하지 않아서

내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았다.

닿는다 한들 손에 힘을 주어 박박 때를 미노라면

근육 하나 없는 팔뚝 세포가 백기부터 들었다.

그래서 난 기꺼이 2만원을 지불해왔다.


자리(?)에 누워 있노라면 감상에 젖는다.

내 분신인 핸드폰도 할 수 없고

세신해주시는 아줌마와 

조잘조잘 떠들 성격도 못된다.

두 눈 질끈 감고 이런저런 생각과 

꼬리잡기를 할 밖에.


오늘 그 스타트는 

우리엄마세대 여성에 대한 감상이 끊었다.




때를 불리기 위해 탕에 앉아

맞은편 때밀이 스테이션을 관찰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그 분들의 업무용품이 열을 맞춰 놓여 있었다.

저 곳이 저 분의 사무실인 셈이다.


그 앞에서 세신 아주머니는

손님의 몸과 커다란 물통을 수없이 오갔다.


그 동선을 눈으로 쫓으며 

아침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청소 아주머니를 뵐 때와 비슷한 온도로 슬펐다.

자식낳고 키우며 살림하며 

내조하는 것이 당연했던 삶,

오십 넘고 육십 넘어

자식들 다 키우고 나서야

'내 삶은 어딨을까' 고민하게 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벌이할 수 없는 세대.

수십 년 쌓인 성실함이

직업적 역량으로 연결되지 못한 세대.


탕에 앉아 세신 아주머니를 보며

"나도 딸처럼 돈벌고 싶다"셨던

엄마를 떠올렸다.


그 순간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 분의 사무실로 소환됐다.

다가올 미래(?)는 예상치 못한 채.






시작은 좀 약했다.


반년만의 세신이었지만

세신 짬밥이 몇 년인데,

내 피부는 수십번의 

세신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었다.

좀 약했다.

'너무 대충 하시는 거 아닌가?'


괜히 말하면 쪼잔해보일까 싶어

몸의 반쪽이 밀릴 때까지

입 안에서 옹알거리고만 있었다.


'착착, 뒤집으세요~'


경쾌한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내 몸은 즉시 반응했다.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손으로 바닥을 짚으려는 찰나,

손바닥 가득 예상치 못한 감촉이 느껴졌다.


때밭이었다.


몸을 뒤집는데 걸린 0.5초동안

내 손바닥이 짚은 한 뼘은

그야말로 때밭이었다.

본능적으로 실눈을 뜨고

한뼘 너머의 공간을 살폈다.


최소의 파워로 최대의 효과를 냈다.

이 분은 프로였다.


그 뿐 아니었다.


잠시 후 나는 온 몸에 비눗물을 묻힌 채로

다시 한 번 몸을 뒤집어야 했다.

미끄러질까봐 조심조심 몸을 틀며

가느다랗게 실눈을 떠보니,

아주머니가 한 손으로 아치를 만들어

세신판의 반대편을 붙들고 계셨다.

인간 안전띠였다.


목덜미에 엉겨 붙은 잔재들을 느끼며

'세신 마치고 머리부터 감아야지'라고 

생각할 그 즈음엔

나를 세신판 끝으로 밀어부치셨다.

샴푸를 착착 머리에 바르시며

"비누, 샴푸 하지 마시고

그냥 물로만 씻고 나가시면 돼요~"


소름. 내 생각이 두피를 뚫고

아주머니의 손끝으로 느껴진 걸까.


한 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세신판에서 내려올 때 건넨 손은

감동의 피날레였다.

수십번의 세신을 받으며

늘 미끄러질 위험에 처해왔지만

이렇게 손을 내밀어주신

세신사 아주머니는 처음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시원하죠?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신 분도.




드라이어 빌릴 200원이 없어

선풍기에 머리를 말리며

격하게 반성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로밖에

밥벌이할 수 없는 엄마 세대에 대한

나의 감상은 가짜였다.

그 분들의 인생은 하나로 퉁쳐질 수 없다.

모두에겐 모두의 인생이 있고,

각자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나름의 인생을 산다.


난 오늘 저 분에게 배웠다.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일터에서 가치있는 사람이란

'그가 없어졌을 때'

아쉬워하는 이가 있는 사람이다.


저 분은 프로다.


변호사, 의사에 붙는 '사'짜는

'다른 사람은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의

뉘앙스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만난

세신사 아주머니는 그 '사짜'다.


부디 지금처럼 즐겁게, 오래 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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