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마지막날, 남편이 정관수술을 받고 집에 돌아왔다. 움직이는게 불편해보이는 남편을 챙기고 다정한 목소리로 상태를 물어야 했다. 좀 어떻냐고, 괜찮냐고.
하지만 현관문 비번 누르는 소리를 듣고도 난 설거지를 멈추지 않았다. 되려 물을 더 세게 틀었다. 오랜 숙제를 끝낸듯 후련해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본체만체 죄없는 수세미만 뜨거운 물에 비벼댔다. 괜찮지 않은 건 나였다.
둘째가 커갈수록 셋째를 상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더 행복할지- 유럽여행의 부푼 꿈을 꾸던 대학생 마냥 설레곤 했더랬다. 물론 현실적인 이야긴 아니었다. 남편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을 버거워했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낳아서 젖물려 키우는 건 엄마 아니냐고 속으로 수없이 따졌다. 하지만 입 밖에 그 소리를 꺼내지 못할 정도로 내 남편은 좋은 아빠였다. 아이들에게 어떤 최선을 다하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만약 또 한 명의 아이가 생긴다면 내가 그 아이를 원망하게 될 것 같아.”
남편의 이 한마디에 내가 그만 져버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가만히 소파에 앉아 핸드폰 사진첩을 꺼냈다. 엄지 손가락을 한참 굴리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둘째가 태어나던, 첫째의 작은 팔에 안겨주던, 젖을 물리던, 처음 고개를 들던 그 모든 순간이 작은 화면 속에서 움직였다. 이제 내게 다시 없을 순간들이다. 그게 마지막일 줄 그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순간들이다.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아이 젖을 좀 더 오래 물릴 걸 그랬다.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아이의 잠투정 마저 즐길 걸 그랬다.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아이가 세상에 나온 그 순간을 좀 더 기뻐할 걸 그랬다.
마지막일 줄 몰라서 제대로 감사하지 못했던 숱한 시간이 손가락 끝에서 힘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사진첩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버렸다. 첫째가 학교에 갔고 첫째가 유치원에 갔다. 첫째가 걸었고 첫째가 이 세상에 나왔다. 첫째가 내 뱃속에 들어갔고, 나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다.
시아버님의 부고를 들은 건 어느 늦은 밤이었다. 전화가 울렸고, 양치질을 하던 남편은 주저 앉았다. 사고였다.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싣고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그 밤의 무게는 지금도 감히 표현할 방법이 없다.
멀리 떨어진 아들네와 영상 통화를 하는 것이 아버님의 큰 낙이었다. 행여 부담줄까 싶어 먼저 거시는
일은 드물었지만 아들내외가 건 신호음은 두 번 이상 울리게 두지 않으셨다. 늘 첫마디는 “안녕!” 이었다. 그날 밤도 그랬다. 늦은 밤에도 혹시 전화 올지 모른다며 아직 옷도 안 갈아입고 계셨던 아버님을 시어머니가 짓궃게 놀리셨던 날이다. 아들네 사는 곳을 구글맵에서 찾아보았다며 언젠가 한 번 가보마 말씀하셨던 날이다. 니들 피곤하겠다시며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안녕!” 하고 손을 흔드셨던 날이다. 그게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그 분의 마지막 안녕일 줄 그 땐 미처 알지 못했다.
두부는 다 타고 양념은 그저 맵기만 했던 두부 강정이 내가 대접한 마지막 음식일 줄 몰랐고,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전한 게 마지막 효도일 줄 몰랐다.
마흔에 가까워지며 달리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겪으며, 더 이상 출산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내가 공기처럼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실은 마지막일 수도 있단 걸 안다.
그래서 투정할 시간도, 허투로 보낼 여유도 없다. 언젠가 가슴 시리게 그리워할 오늘을 있는 힘껏 만끽하는 것 말고는 그 허망함을 이겨낼 방도가 없지 않나.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2021년을 시작하기 딱 좋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