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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포 Nov 22. 2019

그래도 큰누나가 있으니

이 지구에 ‘시공간’을 초월한 삼남매가 산다. 


나를 포함한 우리 집 삼남매(각자의 가정을 꾸리기 전에 함께했던) 이야기다. 시공간 얘기부터 하자면, 내가 일어나는 오전 4시에 큰누나는 미국에서 오후 2시를, 작은누나는 독일에서 저녁 8시를 맞이한다. 벌써 10년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한배에서 태어난 우리 삼남매는 이렇게 시공간을 초월해 한 달에 한 번쯤 연락하고, 일이 년에 한 번 보는 사이가 되었다. 막내였던 나는 성장해서도 의지할 누나들이 필요했지만, 누나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았고, 무엇보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생(生)이 허락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도시에 나와 살면서 각박한 현실에 누나들이 그리울 때마다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오늘은 큰누나와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4살 차이인 나와 큰누나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매주 월요일 1~6학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는 교장선생님 조회시간이 있었다. 조회가 9시 30분에 시작되면, 아이들은 9시쯤부터 운동장 구석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와 삼삼오오 짝지어 놀기 시작한다. 모인 아이들은 대부분 뭔가 놀이거리를 찾는데, 내 기억 속에 자리한 추억의 그날을 주름잡던 놀잇감은 ‘제기’였다. 제기차기, 발제(제기를 공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발야구), 오재미(오자미) 등의 놀이를 하는 데 사용되는 그 제기 말이다.


그날도 학년을 불문하고 누구나 제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특히 6학년 선배들이 운동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놀게 되는데, 그 속에서 나는 큰누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누나는 모여있는 친구들에게 놀이에 껴달라고 했고, 친구들은 정원이 찼다며 나가라고 했다. 조금 쭈뼛거리며 몇 걸음 물러난 누나가 주머니 속 자신의 제기를 꺼내 혼자 차기 시작했는데... 맙소사. 누나의 주머니에서 나온 제기는 누가 거저 준다 해도 갖지 않을 만큼 많이 낡아있었다. 그 제기는 마치 유명했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 같은 몰골을 하고 누나 발 위에서 통통 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전날 새로 산 제기를 기념하고자, 가스난로 앞에서 낡은 제기의 화형식을 거행했기 때문이었다. 몇 가닥 남지도 않았던 비닐 재질의 제기 털은 난로의 뜨거운 기운에 금세 바짝 오글아 들어 플라스틱 재질의 머리 부분만 도드라졌다. 누나는 바로 그 제기를 주머니에 넣어온 것이었다. 


집안 형편도 빠듯했고, 뭐든 아껴야 했던 우리 삼 남매의 손에 각각 새 제기 하나씩이 들려 있던 날은 없었다. 당시 새 제기는 어린 막내의 특권으로 내가 가지고, 큰누나는 첫째의 책임으로 가장 헤진 제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마저도 철없는 동생은 가만 놔두지를 않았다.


나는 학교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서 이런저런 생각에 왠지 모를 슬픔과 누나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누나 곁에 다가가 내 주머니에 있던, 털이 풍성한 새 제기를 주며 말했다. 

“누나, 이거 가지고 놀아...”


시시하지만 내게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유년의 기억이다. 그리고 ‘큰누나’를 떠올리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추억이다. 천식으로 출석보다 결석과 조퇴가 많았던 아이. 성적이 오르지 않아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울던 수험생 소녀. 이제 누구의 딸, 누구의 누나가 아닌 두 아이의 엄마로 단단하게 성장한 그녀.


부족한 살림에 아이의 특권보다 맏이의 책임을 먼저 경험했던 그녀가 지금은 삼 남매 중에 가장 잘 산다. 딸의 초대로 미국에 다녀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엄마의 말에 따르면 방이 10개쯤 되는 호텔 같은 저택에서 돈을 물처럼 쓰고 산다고. 두 조카는 부족함 없이 키워서 그런지 말도 못 하게 똑똑하고 예쁘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우리 누나가 잘 산다는데 더 바랄게 무엇일까. 다만, 지금 이 순간 신비한 요정이 나타나 하나만 말해보라고, 반드시 이뤄주겠다고 한다면 꼭 하나 바랄 게 있다. 나는 그저 당시 초라했던 우리 삼남매가, 그중 가장 키가 컸지만 이제는 가장 작은 우리 큰누나가 지금 보고 싶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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