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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포 Dec 01. 2019

크리스마스 = 나홀로집에

영화와는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캐빈'들에게

1990년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TV에 특선영화가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할 정도로 계몽된 어린이 었다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공식이 하나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 나홀로집에’라는 공식이다.


영화 ‘나홀로집에’는 개봉과 함께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전 세계를 휩쓸다 결국 대한민국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1번이라는 영구결번을 얻으며  정착했다. 구구단도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하던 아이도 주인공 캐빈을 연기한 ‘맥컬리 컬킨’이라는 배우 이름은 외울 정도였으니, 당시 인기는 더 말해야 입만 아프다. 이후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진짜 크리스마스가 아니다”는 명언까지 탄생시키며 공식의 완벽함을 더해갔다. 물론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공식이 되었지만 말이다.

동시대를 살아온 어린이라면 이 유명한 영화의 간단명료한 스토리를 기억할 것이다. 캐빈은 가족이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난 집에 혼자 남아 2인조 도둑을 상대하며 재치 있게 위기를 벗어나고, 실수로 캐빈을 두고 갔던 엄마와 가족들이 돌아오며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짧은 스토리만 들어도 뻔할 '뻔자'. 판에 박힌 내용이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높은 평점을 유지하는 걸 보면, 이 영화만이 가진 강력한 아우라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강력함 때문일까, 당시 이 영화를 보고 자란 나와 같은 어린이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위기라는 것은 똘똘한 어린이 혼자서도 충분히 헤처 나갈 수 있겠다는 인식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세계에 맞서 도전하고 승리하는 전개는 사실 캐빈이 성인이었어도 이뤄질 수 없는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캐빈이 그랬듯 ‘보호’라는 명목으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고 싶은 대부분의 일들은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고, 뭘 해도 꾸중과 잔소리가 따라다녔다. 잠들며 제발 자유를 막는 그 누구도 없이 나 혼자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영화 속 캐빈처럼 다음날 바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고, 홀로 사회에 자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어른의 세계는 영화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캐빈의 집 앞을 배회하던 2인조 강도와 같이 세상은 호시탐탐 나의 평정과 안전을 노렸고, 결국 몇몇 순간에는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만 했다. 그런 위기들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내지만 캐빈처럼 능숙하게 대처하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런 순간마다 오직 어제를 살아낸 경험만이 오늘의 나를 지킬 수 있다는 현실에 직면할 뿐이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줄곧 괴롭히기만 하는 캐빈의 사촌 형처럼 어리다, 느리다, 틀렸다 등의 이유를 들어 나의 삶을 흔들어 놓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새벽이건 주말이건 가차 없던 상사와의 하루는 지옥 같았고, 지금 같으면 반나절에 끝냈을 일들도 며칠밤을 새 가며 처리하기도 했다. 물론, 뜻밖의 인연들도 있었다. 살인자라는 근거 없는 소문에 캐빈이 두려움을 느꼈던 말리 할아버지와 같이, 알고 보면 더없이 친절하고 내 인생에 도을 주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내가 마주해야 할 험난한 세상 속의 긴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살아가는 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나는 언제쯤 캐빈처럼 세상의 위험을 재치 있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일까. 


크리스마스라고 하니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홀로집에를 보고 자라난 아이가 어떻게 '나홀로세상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하지만 현실을 너무 무겁게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어떻게든 견디고 이겨내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다만, 다가올 크리스마스에는 이런 선물 하나쯤은 받고 싶다. 모든 역경을 이겨낸 캐빈 앞에 나타난 엄마가 해준 그 한마디의 위로면 충분할 듯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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