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Journa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Oct 13. 2023

첫 만남

오랜만에 쓰는 Love Journal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또 바뀐다. 생각들은 또 바뀌어가겠지. 나와 시간과 환경과 함께.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있느냐에 따라 계속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사랑의 개념이 있다면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가의 여부다. 이는 지극히 이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주어진 가족이나 어릴 때 만난 친구처럼 순수하게 만나 그냥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을까? 상대의 어떤 조건도 보지 않고(물론 성격이나 외모도 하나의 조건이겠지만) 그 사람이기에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계속해서 사랑에 관한 책을 읽고, 글을 쓰더라도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는 늘 어렵다. 글이란 것은 이상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있다. 어떤 여자에게 첫눈에 이끌리듯 반한 듯하다. 대화하며 더욱 그 느낌은 진해진다. 왠지 영혼이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차로 5시간 남짓의 장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듯하다. 다시 만날 날이 궁금해 계속해서 안부를 묻는다. 그가 여자에게 연락하는 방식은, 늘 연락의 의무나 책임이 아닌 그녀가 궁금해서다. 그는 그녀도 같은 마음인지를 확인한다. 그녀의 삶을 크게 바꾸지 않고,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다음 만날 약속을 잡고, 신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를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꾸미지 않고 솔직한 자기 자신으로 대한다.


안타깝게도 여자는 사랑에 대해 큰 기대가 없던 상태다. 심지어는 그를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조금의 호기심이었달까. 그는 개의치 않는다. 네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어,라는 마음을 표현한다. 처음 만난 지 2주 뒤, 여자와 남자는 다시 만난다. 여자는 남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그 편안함은, 자신이 크게 관심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또 자신에 대해 궁금해한 남자 덕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조금은 수줍어했고, 또 진실됐다. 여자에게는, 남자가 이성적으로 느껴졌다기보단 그저 좋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고 난 뒤 헤어지는 시간은 뭔가 아쉽다.


그렇게 또 다시 만날 날이 왔다. 그 동안 신실하게 여자의 일상을 궁금해한 남자 덕에, 여자는 마음의 문을 많이 열었다. 통화나 문자로 힘듦도 공유했고, 취향도 마음껏 말했다. 심적으로 가까워진 그들은 만나자마자 반가워 가벼운 포옹을 한다. 남자의 얼굴이 빨개지고, 그들은 어느 정도 자연스레 연인처럼 보인다.


시간이 흐르고 더 이상 호기심이 아닌 사랑이라고 느껴질 때, 그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늘 그가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약간의 부족한 모습을 사랑한다. 음정도 안 맞고 센스도 없는 노래, 자다 깬 얼굴, 때론 기대고 싶어 하는 지쳐 보이는 모습. 늘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던 그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까지. 그를 떠올리면 따뜻함이 느껴진다. 미안함인지 고마움인지 모를 마음에 눈물이 난다.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여전히 설렌다. 소유보다 존재임을 머리로만 알고 습관적으로 흔들리고야 마는 그녀에게 존재로서의 존엄함을, 사랑을, 즐거움을 알려준다. 머리와 입으로만 진실된 사랑을 말하던 것은 아니었나 스스로를 의심하던 그녀는, 그와의 시간으로 인해 마음속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을 즐거이 꺼내 실현한다.


성숙한 사랑을 하고 싶었던 이상적이었던 그녀 또한 이 사랑 앞에선 어린아이가 되는 것을 발견한다. 어린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을 활짝 연 것을 의미한다. 온 감정을 드러내고, 눈물을 터뜨리고, 약한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감정과 상황들을 함께 풀어놓다 보면,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인간으로 사랑하게 된 그를 잃게 될 순간은 미리 두렵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소유할 생각은 없다. 그 어떤 의무로도 묶이지 않은 깊고 순수한 감정을 공유할 뿐이다. 자유롭고 산뜻하지만, 또 깊고 따뜻한 그를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으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함께한 순간이 쌓이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