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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n 09. 2024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면,



와인을 벗 삼아 마시다, 반 병은 거뜬해져 버렸던 5-6년 전과 달리 이제는 반 잔도 채 마시질 못한다.


술과 커피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교생 때였다. 아메리카노와 맥주의 쓴 맛이 고소함이 되는 마법을 그때 알아버렸다. 왕복 2시간 넘는 거리를 출근하는 이른 아침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스터를, 퇴근해서도 할 일이 쌓여 있었던 저녁엔 맥주 한 캔을. 어떤 고통엔 쓴 맛을 더하면 쾌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지. 약간 멀쩡하지 않은 정신상태가 된다는 것. 각성되거나 나른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와 맥주는 맛있었다. 고소했고, 풍미 있었으며 그 어떤 음료보다 매력적이었다.


아침엔 커피 저녁엔 알코올을 20대 내내 반복했던 것 같다. 위장이 상하지 않을 리가 있나. 내시경을 해보니, 작은 용종이 생겼단다. 조직검사를 보니 용종은 다행인지 별 게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작은 위장에 미안해지게 했다. 냉장고엔 더 이상 알콜이 없고, 하루 한 번 카페인은 디카페인 드립으로 대체했다. 커피는 정신을 빼놓지 않고도, 카페인 없이도 맛있구나, 싶었다.


멀쩡한 상태에서 음미할  있는 것들이 좋아졌다. 다른 사람의 생각 아닌 자기 이야기가 빼곡히 적힌 종이책을 넘기는 것이. 흐느적거리는 얇고  커튼의 실루엣이. 햇빛에 비치는 피부의 반짝거림이. 가사 없는 느린 음악의 멜로디가. 오래된 나무 책상에 그려진 불규칙적인 무늬가. 매번 펴곤 했던 곱슬머리가 귀여워졌고, 브랜드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으며,  누구의 시선보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평안이 중요해졌다. 나이가 적건 많건 어떤 인종 성별이건 다양한 이들의 귀여움이 보이고, 자잘한 흠결에 관대해진다. 이렇다  틀들이 사라지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엔 붙잡고 싶은 것이 어느 하나도 없다. 사랑도, 우정도, 가족도, 어떤 명예도, 바라는 자아의 모습도. 이때 가장 자유롭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진심이 된다. 형식과 의무가 아니라 마음이 동하는 방식으로 대하게 된다. 어떤 과거들을 잊으려 했는데, 돌아보니  흥미로워서 어느 하나 없애고 싶지 않네. 자기를 고집하지 않아서 편안해지는 감각을 점차 이해하게 되고, 역설적으로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연습이 된다. 여전히 아직 멀긴 했지만.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일 땐 그냥 모든 게 괜찮다. 완벽히 정돈된 모습보다 약간 흐트러진 게 좋다. 아픈 것도, 나이 듦도, 갈등도, 자잘한 고민도, 어떤 한 장면이 되어버린다.



하나 있었던 일요일의 보강 수업이 취소되었고, 그렇게 발걸음 돌려 간 북카페는 휴무일이고, 그래서 오랜만에 온 곳에서는 진한 드립을 서비스로 주셨다. 카페인이 어색한 몸은 놀랐지만 재미있다. 오늘은 못 자긴 하겠다.


햇빛에 비친 머리카락이 붉은빛인 걸 발견했다. 매번 붉은빛으로 염색했던 7-9년 전. 그 색이 여전히 남아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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