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벗 삼아 마시다, 반 병은 거뜬해져 버렸던 5-6년 전과 달리 이제는 반 잔도 채 마시질 못한다.
술과 커피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교생 때였다. 아메리카노와 맥주의 쓴 맛이 고소함이 되는 마법을 그때 알아버렸다. 왕복 2시간 넘는 거리를 출근하는 이른 아침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부스터를, 퇴근해서도 할 일이 쌓여 있었던 저녁엔 맥주 한 캔을. 어떤 고통엔 쓴 맛을 더하면 쾌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지. 약간 멀쩡하지 않은 정신상태가 된다는 것. 각성되거나 나른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와 맥주는 맛있었다. 고소했고, 풍미 있었으며 그 어떤 음료보다 매력적이었다.
아침엔 커피 저녁엔 알코올을 20대 내내 반복했던 것 같다. 위장이 상하지 않을 리가 있나. 내시경을 해보니, 작은 용종이 생겼단다. 조직검사를 보니 용종은 다행인지 별 게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작은 위장에 미안해지게 했다. 냉장고엔 더 이상 알콜이 없고, 하루 한 번 카페인은 디카페인 드립으로 대체했다. 커피는 정신을 빼놓지 않고도, 카페인 없이도 맛있구나, 싶었다.
멀쩡한 상태에서 음미할 수 있는 것들이 좋아졌다. 다른 사람의 생각 아닌 자기 이야기가 빼곡히 적힌 종이책을 넘기는 것이. 흐느적거리는 얇고 흰 커튼의 실루엣이. 햇빛에 비치는 피부의 반짝거림이. 가사 없는 느린 음악의 멜로디가. 오래된 나무 책상에 그려진 불규칙적인 무늬가. 매번 펴곤 했던 곱슬머리가 귀여워졌고, 브랜드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 누구의 시선보다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평안이 중요해졌다. 나이가 적건 많건 어떤 인종 성별이건 다양한 이들의 귀여움이 보이고, 자잘한 흠결에 관대해진다. 이렇다 할 틀들이 사라지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엔 붙잡고 싶은 것이 어느 하나도 없다. 사랑도, 우정도, 가족도, 어떤 명예도, 바라는 자아의 모습도. 이때 가장 자유롭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더 진심이 된다. 형식과 의무가 아니라 마음이 동하는 방식으로 대하게 된다. 어떤 과거들을 잊으려 했는데, 돌아보니 다 흥미로워서 어느 하나 없애고 싶지 않네. 자기를 고집하지 않아서 편안해지는 감각을 점차 이해하게 되고, 역설적으로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연습이 된다. 여전히 아직 멀긴 했지만.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일 땐 그냥 모든 게 괜찮다. 완벽히 정돈된 모습보다 약간 흐트러진 게 좋다. 아픈 것도, 나이 듦도, 갈등도, 자잘한 고민도, 어떤 한 장면이 되어버린다.
하나 있었던 일요일의 보강 수업이 취소되었고, 그렇게 발걸음 돌려 간 북카페는 휴무일이고, 그래서 오랜만에 온 곳에서는 진한 드립을 서비스로 주셨다. 카페인이 어색한 몸은 놀랐지만 재미있다. 오늘은 못 자긴 하겠다.
햇빛에 비친 머리카락이 붉은빛인 걸 발견했다. 매번 붉은빛으로 염색했던 7-9년 전. 그 색이 여전히 남아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