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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노원 Sep 02. 2019

이삿날

엄마가 물어봤잖아

이사 가기 전전 날에


이 집은 너에게 어떤 기억이냐고


글쎄


너는 미요한 웃음과 여운을 남기는 '글쎄'라는 단어로 너를 표현했지.  


알아. 이제 12살인 네가 엄마의 함축적인 질문에 똑떨어지는 대답을 하면 더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근데, 엄마는 자꾸자꾸 묻고 싶고 대답을 듣고 싶어. 희한하지.


그건 아마 엄마의 여러 가지 감정들 때문일 거야.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에서,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겪었던 많은 일들이 너에게 생채기로 남았을까 봐.. 너를 빨리 철들게 했을까 봐 엄마는 미안하고 후회가 되어서 그래.


그런데 너는 답해주지 않네.

그 많은 일들이 너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너는 어떤 생각들을 하며 그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어쩌면 너의 미소가, 너의 대답하지 않음이 엄마에 대한 배려일지도 몰라. 네 마음의 진실을, 엄마는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그냥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는 이사 놀이를 하는 것뿐이라고.. 이삿짐 싸는 미션을 통과하고 새로운 형태의 집을 체험해보자고.. 최선을 다해 명랑함을 과장하는 것.. 너에게 어둠이 스미지 못하도록 나 자신을 불태우는 것..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전부야.


어려운 시간을 견뎌줘서 고마워.

이런 시간들을 견디게 해서 미안해.


나의 사랑, 나의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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