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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Jan 06. 2024

귀찮음에 관한 소고

2024년을 준비하며

돌이켜보면 삶을 너무 대충 살았다. 여전히 대충 돌아보면, 수능이 끝나고 나서는 늘 그래왔던 것 같다. 수능 때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었었다. 중학교 때 기억나지 않는 이름의 체육 선생이 100m 달리기를 들어 말하길, 끝나고 나면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고 했었다. 


내게 노력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적어도 2023년에 그런 순간이 얼마나 있었는가 하면 그런 적이 딱히 없었던 느낌은 있었다. 그럼 예전 수능을 보기 위해 준비할 때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주어진 문제는 심플하고, 확실했으니까. 결국 문제가 주어지면 푸는 것은 노력하면 되는 영역이었고, 답이 있다는 확신도 있었으니까. 고민보다는 열심히.


얼마 전에 성시경 씨가 하는 유튜브에 박진영 씨가 나와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열심히 사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답이 있어야 한다. 그 답을 찾고 난 10년, 춤추고 노래하는 반복에서 딱히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약간은 모순되지만, 어느 때인가 박진영 씨가 유퀴즈에 출연해서, 나는 하루에 무슨 말을 많이 하나 보니까, 아 배고파, 아 죽겠다! 였다. 쉰이 넘어서도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 자기 관리를 하기 위해. 먹을 것을 줄이고, 운동을 하고 춤을 추는 순간들이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런 어려움 보다도,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성시경 씨 유튜브에서, 박진영 씨는 말한 것이 아닐까. 반대로 왜를 찾으면 아 죽겠고,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왜,라는 여정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안의 무언가로는. 


거창한 무언가를 바라기에는 속도 좁고, 딱히 그런 무거운 짐을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나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는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가족과 팀, 같이 함께. 나의 사람들. 이영도 작가가 나의 초등학교 이후를 지배한 문장을 썼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틱낫한 선사도 교과서를 통해, 류시화 편역의 책을 통해서 모두가 이어져있음을 알렸었다. 


이제는 조금 그게 나에게 어떤 느낌인지 확실해지고 있다. 나의 이유에는 나는 없다. 불법에 말하길, 제법무아- 내가 아님을 안식해야 하는데. 니체 까지만 놓고 보면 절대적인 진리 체계에서 벗어나서 개인의 초월에 대해서 논했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좀 틀린 게 아닌가. 


소승불교 보다 대승불교가 더 퍼진 것이 기복신앙의 덕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고, 꽤나 옳지만 어쨌든 아전인수 해보면 - 결국 나를 위한 깨달음보다는 지장보살이 그랬듯 지옥에서 단 하나의 중생도 남기지 않겠다는 태도가 가지는 울림이 있는 게 아닐까. 나를 위해 사는 사람에 관하여 원 오브 어 카인드로, 그 유니크함을 가지고 놀람을 표할 순 있겠지만, 여전히 미스치프보다는 뱅크시가 가지는 울림이 더 클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예술인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것이 남을 향할 때 가지는 울림이 큰 법.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그렸다고 평을 받은 고흐의 그림이 그랬듯이. 


다시, 좀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번엔 진짜라고요, 슬램덩크의 대사가 떠오른다. 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는가, 글쎄 아직 딱히 없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그 영광의 순간으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역시 기본기가 우선이다. 더 많은 시간과 고민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태도를 가지고 습관을 만들고, 원칙을 빚어내서 반복하고. 하나의 큰 움직임이 아닌 작지만 수많은 움직임으로 앞으로 나가야지. 키가 크길 바라기엔 늦었고, 더 잰걸음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 


그러기 위한 하나의 다짐은, - 그걸 다시 박진영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고민해 봤다. 내가 무슨 말을, 마음속에서 많이 하는가. '아 귀찮아' 왜 귀찮나? 해야 할 것을 알고, 할 수 있으나, 하기 싫은 것. 그 까닭은 어쨌든 힘든 일이니까. 무언가 외재적인 보상을 바라기에는 하찮을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통해 무언가 변한다는 사실 만은 분명한 것. 그러니까 '왜'가 분명하다면 꼭 해내고야 말 일들.


그래서 이유를 찾는 여정과 함께, 우선 2024년의 첫 목표로는 '귀찮다' 면 하거나, 무시하기이다. 정말로 그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당장 하고,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할 일에 등록하고 - 언제 할지라는 정보와 함께 - 그러고 나서는 진짜 하고. 그 카테고리에 없다면 그냥 머릿속에서 지워서 고민의 영역을 남겨놓기. 이 것을 지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삶이 어느 정도는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하나, 귀찮은 일은 너무 많고 - 그런 일들은 작지만 이뤄내고 나면 작은 성공들이 모여서 큰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2024년에는, 일단은 맘껏 귀찮아하되, 그럼에도 해내보도록 해야겠다.


글도 좀 더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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