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n Jan 12. 2024

 올해 해결할 문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공부의 신' 강성태의 팩트 폭력 "근본적인 문제는 공부 안 하는 것" 


강성태 씨의 유튜브, 쇼츠에서 본 말.(실제로는 마이리틀텔리비전에서도 한 말)


 대충 '너희는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라는 게 늘 마음에 와닿았다. 할 자신은 여전히 없지만 돌아간다면 공부를 하기는 더 잘할 것 같다. 지식이 없어지고 방법도 없어도 '한다'라는 것만 잘 만들어진다면. 다른 어떤 강사가, 매일매일 8시간씩 공부했다!라고 하면서 (좀 더 했을 순 있지만), 대신 나는 그걸 정말 '매일' 했다고 강조하는 것도 봤다. 


음, 진짜로 매일 8시간을 풀로 공부를 한다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언제나 천외천, 어나더레벨은 있고, 그걸 내가 이겨내려면 만화가 이현세 씨가 천재와 싸우는 법~ 같은 이름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더 투자를 해야겠지만, 나의 노력을. 


(성시경의 만날텐데: 박진영 편)


그러니까, 안 하는 게 문제다. 왜 안 하냐면, 다시 요즘 꽂힌 박진영 씨의 말처럼, 올바르게, 열심히 살려면 에너지가 엄청 필요하다. 둘 다 힘든 일이니까. 뭔가 문장, 논리 수사적으로 보면 애초에 열심히는 에너지를 쓴다는 말이니까, 바르지 않은 말이니까 다시 올바르게 꾸준히 하는 건 무진장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것이다라고 바꿔보자. 


맞는 말이다. 우리는 하지 않는 게 문제고. 제프 베조스인가가 릴스 같은 곳에서 (그가 거기에 올린 건 아니겠지만) 우리가 스트레스받는 것은 '하지 않음'에 있다고 말한다. 할 때는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니까. 그러니까 박진영 씨가 전술한 유튜브에서 말한 '왜 하는가'가 중요한데, 일본의 책 <왜 일하는가>는 그래서 사두고 읽지 않았는데... 


그보다는 '사이먼 사이넥'의 <Start With Why>는 읽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마케팅적으로도 '왜'를 이야기하는 것은 크리스텐슨 교수의 'jobs to be done' 개념과 유사하게 중요한데,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일을 할 때 동기부여가 되는 '왜'가 참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생각나는 건, 그 '왜'를 가지는 것도 참 어렵다. 바바라 민토의 로지컬 싱킹 관련 책, 피라미드 구조로 만들어 보거나. 아니면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오타니처럼 그 비전 아래에 만다라트를 그리는 것도 방법이겠지. 결국 무엇을 바라고 하고 싶은지에 대한 리스트가 중요한데, 여기서는 찰리 멍거나 워런 버핏이 했다고 말한 것처럼. 쭉~ 적어 놓고 계속 줄여나가는 것. 


어쩌면 TRIZ 방법 같은 걸 쓸 수도 있겠다. PO들이 문서를 쓰는 때처럼 5 whys를 쓰면서 Root Cause를 찾아 나가기.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뭐고, 그걸 야기한 건 어떤 거지? 이걸 풀면 어떻게 되지? 그리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변하지? 를 적어가다 보면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뭐, 종교적인 비전을 가지거나, 누군가의 꿈에 감화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다시 - 그럼 또 문제가 이걸 안 한다는 것에 있다. 참,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긴 한데. 이게 경험해 보기 전에는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고 모호한 영역의 일. 이걸 왜 하는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일단 하는 게 중요하다는 관점도 딱히 나쁘지는 않긴 한데. 그렇게 수일만 해도 지키기 십상이다. 아니, 사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가는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이게 하루 안에서도 힘든 것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테헤란로의 퇴근길이나 판교의 퇴근길을 보면 좋지 않을까. 하루하루만 해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넘쳐난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의 삶은 복잡함으로 가득 차있으니까. 일을 정리하고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예전에 하루에 고민할 문제의 총량이 3개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는데, 요즘 절실히 공감한다. 맥락 전환 (context switching) 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또 풀 수 있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건 - 그 문제가 쉽고, 대체가능하거나 (문제 푸는 사람을) 또는 위임 가능한 일이라는 (같은 말이겠군) 뜻이기도 하니까. 자동화도 가능한 영역이 꽤 있을 것이고. 


<뉴스룸> (아론소킨)의 문제 풀이의 첫걸음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진짜 진짜 좋아한다. 문제가 있다는 걸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잘 안돼서 그렇지. 여하튼, 다시 문제는 뭐냐면 하지 않는 것이고, 왜 안 하냐면 왜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다시 - 더 하기 싫어진다. 이를 해결하려면 분명한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 


(우선순위 설정 방법에 관한 글)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참 귀찮을 수 있는 일이지만, 우선은 내가 풀고 싶은 문제를 좀 적어보고. 우선순위를 RICE 건 ICE 건 방법론으로 좀 메겨보자. 그리고 그 문제를 야기하는 근본 원인을 5 whys 나 (뭐 3단계만 해도 될 수 있다, 방법론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이런 걸로 찾아본다. 그럼 그 원인에 해당하는 해결책들을 매핑하기에는 원활하고,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도 (가설이 떠오르지 않아도)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더 많은 고민을 적는 것보다, 이 고민은 일단 안 해, 이 고민은 이걸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라는 식으로 고민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다.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임팩트가 큰 하나하나의 일을 더 해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충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까지는 지난 수년간 학습해 왔는데. 이게 하루의 루틴에 들어가서 자리 잡게 하는 게 참 어려웠다. 누군가의 부탁이나, 사소한 고민, 감정적인 변화 등을 모두 컨트롤해야 하니까. 이게 악순환의 전조이고 따라서 끊어내는 게 한 번은 필요할 것 같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혼자서 저 작업을 하루 동안 해볼 수 있다면 어떨까? 흠.... 글쎄 안 해봐서는 모르겠다. 이젠 정말 해봐야지. 문제를 적어 가는 것은 티에고 포르테의 <세컨드 브레인>을 읽으면서 한 번 시도해 봤는데, 그럴싸했다. 혼자서 하려니까 쉽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되겠지.


(세컨드 브레인 관련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큰 비전을 설정하는 건 필요하다. 이영도 씨가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을 계속 경계하는 문구를 소설 안에 써놓은 걸 보고 감명을 받았던 나지만, 그럼 '삶'이 아니면 되지 않을까 싶다.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지금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이영도 씨가 존재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했던 문장을 떠올린다. 내 꿈은 무엇이고, 나는 거기로 나아가고 있는가? 


거창한 엔딩이 아니라도. 아님 좀 쫌스럽더라도, 그래도 하고 싶은 걸 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간다면? 무조건적인 원칙으로의 꿈일 필요는 없겠다.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무언가. 그걸 좀 더 고민하고 세팅하는 것도 해야겠지. 어쩌면 이것도 위의 문제 풀이를 이렇게 하자라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체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근데 이걸 이제 언제 하지! 가 문제이다. 

다시 강성태 씨의 말이 돌아온다. 

'안 하는 게 문제예요' 음. 해야지, 올해는 정말로.

매거진의 이전글 귀찮음에 관한 소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