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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Mar 27. 2024

더 성장하려면이라는 고민에 관하여

매일 글쓰기 007

만화가 이현세 씨가 천재를 이기는 방법이라는 이름의 글을 공개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좀 화제가 많이 되었었는데, 과격하게 욱여넣어 요약하면 시간을 더 쓰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시간 투입이 결과를 가져온다는 공리를 꼭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의미를 가지려면 좀 더 어떤 시간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구선수 출신 서장훈 씨가 어떤 강연에서 '즐기는 자'가 되어라라는 말에 반박하는 영상을 보았다. 정말 싫어도 노력했다고 하는 표현들을 보며, 첫 느낌은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근육을 키우기 위한 훈련, 달리기 모든 훈련들이 고통을 수반하니까. 김연아 선수가 훈련할 때 무슨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한 것도 생각이 나고. 그걸 마냥 즐길 수 있다면 그것도 이상한 삶이겠거니 싶다. 


그럼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성급하게 이야기하면 어떨까, 그건 또 아니지 않나. 고통의 시간이 있더라도 꾸준하게 노력할 수 있는 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게 우선이지 않나. 그래서 다시 - 이현세 만화가의 글이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다,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감각을 기르는 것. 10,000시간의 법칙도 그런 의미에서는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은 한다. 물론, 후속 연구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볼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적어도 저 정도 시간을 투자한다면 최소한의 수준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 않나. 그게 천재를 이기는 결과로 이어지진 못하더라도. 


태도, 태도가 중요하다. 계속해서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태도는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한 인터넷 강사의 글이 기억난다. 난 하루에 딱 8시간씩만 공부했어!라는 식의 강연이었는데 (누구였는지, 정확한 시간이 몇 시간이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서울대에 입학한 그 강사의 다음 말은 그걸 365일, 3년 내내 빼먹지 않았다였다. 지속가능한 수준의 투입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태도. 생각해 보면 나의 경우에는 적어도 그 3년간 그런 태도를 가지진 못했었다. 


누군가의 각오 만으로 계속 태도를 견지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 마시멜로 실험이 떠오른다. 미래에 대한 기대 보상이 현재의 기대 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마시멜로를 지금 먹지 않고 나중에 2개를 택할 수 있다는 실험. 이 또한 최근에는 반대 연구 결과로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말이 있다. 미래 보상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가정환경이 조성된 아이들이 나중에 더 많은 마시멜로를 택할 확률이 크다는 말. 미래의 가치에 대한 신뢰가 우선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부분으로 이어진다. 


살아남는 것이라는 주제로 잠깐 틀어보자. 긴 시간을 포로로 보내야 하던 사람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연구한 사람이 있었고, 그 결과가 스톡데일 신드롬이었다. 포로 중에서 막연하게 미래에 대해서 낙관하던 사람은 죽었고, 장기간 잡혀 있을 수 있으니 더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자만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이 또한 미래에 대한 믿음 - 풀려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고 또한 현실이 녹록지 않음은 인정하는 태도가 전제된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스톡데일 같은 사람이나 (미국 해군사관학교 출신) 서장훈 선수, 김연아 선수 그리고 이현세 만화가까지 모두는 이미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고. 서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 있긴 하지만 - 그리고 이현세 만화가는 스스로가 천재와 싸워왔다고 말하지만 그전에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룰 수준의 기본적인 재능과 자질이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재능이 기반이 될 필요는 분명히 있다, 특히 선두를 다투는 경우에는. 


이재일 작가의 <쟁선계>의 구절이 떠오른다. 문(門)은 벽(壁)이 아닌 공(空) 가운데 있으니, 앞을 다투는 세상이란 뜬구름 같도다(門非在壁在空中 爭先之界若浮雲). 누군가를 앞서기 위해서 우리가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게 맞나? 누구와 이겨야만 하는 것일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건너 들은 말인데, 삼국지에도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식의 경구가 나온다고 한다. 100리를 행군하거나 1,000리를 행군하는 데에는 다른 준비물에 대하여 말하지만 (예컨대 식량), 만리를 가려거든 함께 갈 동반자를 구하라라는 식의 표현이었다. 


대학 시절 한 은사님이 '비교 의식을 버리자'라는 주제로 한 학기 내내 강의안 상단에 문구를 남겨놓았었다. 글쎄, 비교하지 않으면 우리의 현재가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 더 빠르게 자본을 응집시키는 블랙홀로 역할하지 않으면 다른 블랙홀에 잡혀 먹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역시도 든다. 그렇지만, 내가 더 성장하고 가치를 더하는 행위를 영위할 때 꼭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여 나아가는 게 올바른 길일까 하는 생각 역시 남아 았긴 하다. 비교 대상은 역시 어제의 나, 지난주 지난달의 나라면 어떨까. 남이라는 기준은 참고지표로 의미가 있겠으나 진정 뛰어넘어야 하는 건 시간선이지 않겠나 싶기도. 


다시 - 그래서 내가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당장 내 위치를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보다는. 누구와 함께 뛰는가. 나의 페이스메이커는 누구이고, 그가 가진 장점은 무엇이며 그것을 내가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고. 지금 내가 그게 없다는 자각과, 얻을 수 있는 확신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역시 누굴. 앞서려고 하는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달릴까 하는 부분이 우리의 성장에 가장 큰 부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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