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또, 달리다가 언젠가 다다를 곳.”
마을버스의 주요 승객은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홀로 외로이 시골에 남아 마을을 지키며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고 울타리가 되어준다. 매일 점심때면 마을회관에 모여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집안 대소사며 올해 농사일을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버스 안에서도 이뤄지다 보니 마을의 일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두 번째 겨울에 들어서는 즈음 김장철이라 조치원 시장에 나가 재료들을 사 오던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고 우리 덕순네(가명) 딱해서 우쨔”
“이, 그러게 말여. 어제 우덜집에서 배추 절이고 내일 버무리게 양념 만들자고 얘기하고 집에 가더니만 점심 나절이 돼도 안 오길래 집에 가봤더니 글쎄 그리 된겨”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혼자 사는 할머니께서 다른 할머니들과 함께 김장 담글 준비를 마치고 집에 가셨는데 화장실을 쓰시다 그만 돌아가셨다. 어쩌면 어제 내가 모셔다 드렸을 할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였다.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하다가 깨닫는다. 죽음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음을.
이것은 다른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마을버스의 정류장은 보통 사람이 타는 정류장과 타지 않는 정류장으로 나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다 보니 대부분의 정류장에서 사람이 탔지만 이제는 아니다. 사람이 타지 않는 있으나마나한 정류장이 태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타는 정류장에 들어설 때면 속도를 낮추고 승객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이 타던 정류장에 승객이 보이지 않아서 버스에 타고 있던 같은 마을 어르신께 여쭤봤다.
“어르신, 여기서 타던 할머니 어디 이사 가셨어요?”
“이, 저 하늘나라로 이사 갔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렇게 또 죽음이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는다.
매일같이 종점을 향해가는 일을 하면서 매일같이 내 삶도 종점을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살았다. 나만 나이를 먹는 것도 아니다. 나의 부모님도 나이가 든다. 나이 듦과 함께 부모님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한없이 넓었던 등이 작고 야위고 굽어진 아버지, 새하얀 눈이 내린 듯 흰머리가 늘고 몇 해 전 수술한 무릎을 부여잡고 절뚝이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개차반 같은 아들은 마음만 먹먹해질 뿐이다. 그저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만 늘어놓고 찾아뵙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 어쩌다 본가에 들를 때면 어째 TV에서라도 보는 대통령 얼굴보다 아들 얼굴 보기가 힘드냐며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흘렸고 늘 아들이 잘 먹고 다니는지 걱정하면서도 일하느라 바쁠까 봐 전화 한 통 못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잘나지도 않은 얼굴을 일면식도 없는 승객에겐 매일같이 보여주면서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매달은커녕 몇 달에 한 번 보여드렸다. 천하에 이런 불효자식이 있나 싶다. 이대로 사는 것은 먼 훗날 뼈에 사무치는 후회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대책이 필요하다. 사실 무슨 엄청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답은 단순하고 이미 나와 있다. 더 자주 찾아뵙고 전화드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바다를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부산으로 향한다.
편하게 모시고 싶어서 본가에서 대전역까지 택시를 탄다. 아침 일찍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아들의 사정을 들으시고는 택시기사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살아계실 때 잘혀. 돌아가시면 아무 소용 없응께”
“예. 그래야지요.”
이미 부모님을 인생의 종점에 모셔다 드린 기사님의 말씀이 오늘따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다시금 오늘 하루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해 본다.
KTX 특실을 처음 타보는 어머니께서 자리가 넓어서 좋으시다며 연신 고맙다 하시는데 내 마음은 죄송하다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좋아하시는걸 왜 이제야 모시고 왔을까 하는 후회뿐이다. 부산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송도 해상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바닥이 보이는 케이블카 안에서 멋진 경치를 한눈에 담으며 웃으시는 부모님 모습에 나도 미소가 지어진다. 종점에 있는 공원의 벤치에서 두 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오늘, 이 모습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좋은 구경을 마치고 바다 바로 옆에서 짠내음을 맡으며 싱싱한 회를 먹었다. 해산물을 좋아하시는 부모님께서 자리가 좋으니 회가 더 맛있다고 하신다. 나도 덩달아 맛있게 먹고는 해운대에 모노레일을 타러 갔다. 모노레일 내부는 좁았지만 부모님과 더 가까이에서 그 숨결을 느끼며 윤슬이 빛나는 푸른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아들 덕분에 좋은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고마워.”
고작 하루만 시간을 내면 되는 건데 이게 뭐라고 바쁘다고 핑계만 늘어놨나 싶은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이 부끄럽고 밉다. 애써 눈물을 참고 더 일찍 모시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린다. 부모가 되지 않아 부모님의 마음을 전부 알 수 없어서 더 죄송하다. 이미 지난 일을 어찌할 수 없으니 부모님을 종점에 모셔드리기 전까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행 한 번에 효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여전히 불효자식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일하면서 그냥 그런 일이 있었고, 승객이 타던 정류장에 아무도 없는 것을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다. 고맙게도 그런 생각이 부모님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줬다.
이렇게 또 버스에서 인생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