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필요 없는 정보야. 알려주지 마.

기억하지 않을 거야.

by 삶예글방


기억하면 외로워져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문장밥


어떤 정보는 나를 외롭게 만든다는 것, 특히 그 정보가 나에 대한 정보일 때 더욱 그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빌려 읽었던 엔솔로지 소설집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에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하는 문장을 만났어요.




천선란 작가의 <우리를 아십니까> 소설입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온 사회를 뒤덮고 화자인 자신마저 좀비화가 진행된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오랜 혼수상태에서 눈을 뜨니 세상은 좀비화가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도 곁에 좀비가 된 채 누워있지요. 자신이 혼수상태가 된 동안 좀비화 된 곳에서 애정으로 찾던 거북이를 지키려 했는지 자신의 곁엔 거북이도 보입니다. 그런데 거북이의 능력인지 좀비화의 능력인지 알 순 없지만 신기하게도 화자는 거북이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거북이와 사랑하는 이를 모두 데리고 함께 바다를 향해 여정을 시작한 '나'. 거북이에게 인간들의 지식으로 지나가다 발견한 새에 관해서든, 거북이에 대해서든 비인간 동물에 대해 분류하고 이해한 정보를 설명해주려 합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듣기를 거부하는 겁니다.


오늘의 문장밥은 그 장면으로 차려봅니다.


너는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이야.

나한테 필요 없는 정보야. 알려주지 마.
기억하지 않을 거야.
기억하면 외로워져.


왜?


네가 그렇게 말하지만 않으면, 나는 언젠가 저 예민한 애처럼 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어. 내 몸은 나른할 땐 숲이 되기도 하고, 헤엄을 칠 땐 파도가 되기도 해. 등을 말릴 맨 바람이 되기 도 하지. 나는 자유자재로 변하고, 속하고, 벗어날 수 있어. 하지만 구분 지으면, 선이 생겨. 넘을 수 없는. 내가 갇혀 있던 가짜 바다의 투명한 벽처럼. 선이 생기면 오래 살 수 없다는 좌절이, 마음을 늙게 해.

그게 너희의 장수 비결이야?

아니. 이게 원래 지구를 살아가는 방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