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말이 죽음이라지만 사실 삶과 죽음은 함께 가는 것이다.
2025년 11월 20일 문장밥
저는 죽음에 관심이 많습니다. 죽음에 관해 매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죠.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에서 오는 그 아픔과 상실, 무력함 같은 것에서 위안과 받아들임을 배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취향을 쉬이 드러내어 밝히거나 추천하지는 못하곤 했습니다. 너무 무거운 책은 읽기 힘들어요~ 하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느 한구석에선 언제든 꺼내어 보이고 싶고, 또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제 마음을 맑은 물속 가라앉은 돌멩이를 보듯이 투영해 선명히 들여다보고 헤아려 써준 듯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책 읽다 절교할 뻔>이라는 발칙한 제목을 가진 책으로,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두 책방지기 구선아와 박훌륭이 책에 대한 편지를 주고받은 서간집입니다.
죽음에 관해 읽다 보면
어렴풋이 삶도 보이는 것 같다.
삶의 반대말이 죽음이라지만
사실 삶과 죽음은 함께 가는 것이다.
원치 않지만, 올해에 아끼고 사랑하는 몇 분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도 있었죠. 20대가 넘어가면서 자연스레 마주할 상황을 자주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삶의 끝이 얼마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지, 그 앞에 길고 먼 계획과 나중에 해야지 하며 꿈꾸듯 미루어둔 일들은 얼마나 허망하게 구름처럼 사라져 버리는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게 찾아온 소중한 관계의 끝 또한, 서로 합의하여 이별하지 않아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도 제겐 아주 큰 충격이었습니다. 머리로 하나의 정보로서 인지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그 일을 겪어내는 것의 차이가 그처럼 클 수 있는지 그전에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실과 아픈 마음 끝에 저는 스스로 인지하기도 전에 죽음의 경계에 저를 데려다 놓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옥상 위에서 아슬하게 떨어지려 하고 있다든지,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한가운데에 서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생의 끝을 향해 가려는 충동을 마주하게 된 겁니다.
아, 이토록 죽음은 삶과 가까운 것이구나. 언제든 힘내어 살다가도 가볍게 떠날 수도 있는 것이구나. 충분한 계획이 없이도, 끝을 준비하는 차분한 마음이 아니고도, 이렇게 스스로 생의 끝을 충동적으로 마주할 수도 있는 거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죽음이나 자살에 관한 책을 평소보다 더 많이 찾아 읽게 되었죠. 자연스레 그런 삶의 무게와 필연적인 끝을 다루는 문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더 많이 가깝게 읽게 되기도 했습니다.
왜 문학은, 인문학은 계속해서 죽음에 대해, 상실에 대해 시선을 향하며 이야기할까요. 서로 피차 불편해지는데도요.
이 답은 명확하게 정답처럼 말할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저를 콕 집어 당신은 삶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무겁고 스트레스가 많은데 왜 그런 무거운 주제를 굳이 계속 찾아 읽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죽음에 대해 자주 읽고, 보고, 생각하는 건, 실은 삶을 잘 살아보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선택했다가도, 혹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마주하고서도, 끝끝내 살아내 보려 한 이들의 이야기를 찾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이의 머릿속에서 흐르는 생각들의 마지막 조각들을 열심히 더듬거려 모아 보기도 합니다. 나의 것과 비슷할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 상상해보기도 하면서요.
오늘도 잘 살고 싶어서 죽음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