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
11월 30일 일요일 문장밥
나는 깊은 숲속에서 네 발로 걷기를 시도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덤불 사이를 지나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크랜베리 습지로 내려갔다.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녹초가 되고 여기저기 아팠지만 풀들, 새로 돋아난 나뭇가지들, 내리막들, 덩어리들, 비탈들, 개울들, 깊이 갈라진 틈들, 공터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았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숨 쉬고, 절름거리고, 마침내 늪 가장자리의 소용돌이와 지그재그를 이룬 나무들 아래 눕는 한 마리 늙고 느린 여우였다.
메리 올리버「긴 호흡」
꿈에서 계속 숲 속을 걸었습니다. 절실히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의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새소리와 낮은 타이핑 소리만 이 방에 조용히 울립니다. 아침에 문장밥 글을 쓸 때, 항상 부리나케 출근 중 지하철 안에서 서서 쓰거나, 출근하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 때, 일을 하다가 잠시 주문이 들어오지 않고 여유가 생길 때 틈틈이 휴대폰을 활용해 쓰곤 했는데요. 모처럼 포근한 이불속에서 침대 옆 벽에 기대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한가롭게 타닥이고 있으니 이렇게 평화로울 수 없어요. 행복합니다. 이 글을 마치고 산책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여름과 다르게 겨울이 되어 좋은 점은, 느지막이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산책을 나가도 더울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나른한 햇살과 추운 공기가 만나 맑은 마음을 가져다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에게 주어진 아침의 3시간의 휴식은 아주 긴-호흡 같습니다.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는 12월을 잘 살아낼 산소를 가득 미리 채워 넣는 숲 속 산책 같은 시간이요. 메리 올리버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산책자 중 한 사람. 자연의 일부로서의 생을 인정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사람. 그래서 그의 글을 사랑합니다. 자연으로 가고 싶어질 때, 그 자연이 품어주는 질감과 야생의 경이가 그리울 때, 메리 올리버의 책을 읽곤 합니다.
그녀는 숲 속에서의 모험 가득한 일상적 산책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작은 글씨로 속삭이듯 두 문장을 뱉어냅니다.
변덕스럽기를 멈춰선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
왠지 두 문장 사이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삶에 대한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으면 왠지 변덕스러워선 안 될 것 같단 말이죠. 그런데 그녀는 변덕스럽기를 멈춰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삶에 변덕이 일어나는 건 얼마나 쉬운 가요. 그런데 그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강경함에 놀라고, 그로 인한 상황으로 삶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겨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단호함에 감탄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문장을 읽어보면 조금 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변덕스러울 것을 말하는 것은 삶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요.
삶이 쉽다거나 확신에 차 있다는 건 아니다. 완강한 수치심의 그루터기들,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슬픔, 아무리 춤과 가벼운 발걸음을 요구하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어디를 가든 늘 지고 다니는 돌 자루가 있다. 하지만 우리를 부르는 세상, 경탄할 만한 에너지들을 가진 세상도 있다. 분노보다 낫고 비통함보다 나은, 더 흥미로워서 더 많은 위안이 되는 세상.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뭉클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든 지고 다니게 되는 돌 자루가 있죠. 누구나 갖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부르는 경탄할만한 에너지를 가진 세상도 있다고 말하죠. 그래서 우린 고통의 돌 자루만 바라보지 말고 언제든 변덕을 부려 마음껏 놀라고, 감탄하며, 모험해야 합니다. 그런 변덕 속에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요.
마음껏 변덕 부리는 일요일 보내시길 바라요. 돌 자루 쥐고 지낼 월요일을 지낼 호흡 가득 채우시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