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의 마을

16. 돌봄청

by 삶예글방


연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듯한 화산처럼 부글거리며 끓고 있었다. 간신히 터지지 못하게 잡는 듯이 살갖으로까지 이어지는 통증에 그저 침대에 엎드려서라도 이어가던 노트 보기를 멈추고 다시 망연히 천장을 보고 누웠다.


오후가 되도록 열은 내리지도 않고, 통증은 도리어 심해지고 있었다. 머릿속은 뜨거운데 몸은 자꾸만 오한이 몰려왔다. 잠이라도 자면 나을까 싶어 눈을 감아도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지난 밤에도 잠드는 데에 실패한 연이었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랐다. 머릿속은 복잡했으며, 일하는 시간 외의 시간에는 노트를 읽고 관련 책들을 찾아보며 선자의 흔적을 찾으려 도서관에서나 집에서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지냈기 때문이다. 눈에 켜둔 불은 머릿속까지 가득 데워버린 듯 했다. 3년 만의 살 이유를 찾은듯 했지만, 몸은 아직 준비되지 못했던 걸까.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찾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이제야 겨우 아주 자그마한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자책하는 생각조차도 끓어오르는 머릿속으론 더이상 이어가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던 중, 선자의 노트에서 읽었던 신록의 이야기를 떠올리고선 그제야 몸을 일으킬 마음을 먹었다.




연은 돌봄청에 가보기로 했다.

병원도 약국도 없는 위선자의 마을. 서울에서 이 마을에 대해 알아볼 때, 미리 알았던 사실이다.


아픈 사람은 어떡하라는거예요?


퉁명스레 물었을 때, 미리 연락이 닿았던 단오는 친절하게 답하곤 했었다.


돌봄청이란 곳이 있어요. 약물 치료나 수술은 없지만,, 아플 때, 힘이 들 때 다들 돌봄청으로 가요.


이런 미신인지 샤머니즘일지 모르겠는 원시적인 문화라니. 연은 단오가 돌봄청에 대한 답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혹스러웠고, 걱정이 되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상태론 누구의 돌봄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곳이 어떤곳일진 몰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방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선, 어떻게 버텼지? 지금처럼 몸이 견딜수 없이 아팠던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저 너무 아플 땐, 10분이면 처방과 주사, 약물로 즉시 처치 되는 병원과 약국을 찾았고, 다녀와 다시 현관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 들어와 지냈다. 아주 빠르고 편리했지만, 왜 계속해서 두통과 불면이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 이런 몸과 친해져야 하는건지 고칠 수 있는건지 등의 대화를 할 수도 없이 늘 쫓겨나듯 진료실에서 나오곤 했다. 그러던 연이 이제는 아주 느리고 불편한 방식으로, 미심쩍고 모호한 이름의 '돌봄'을 받으러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갈 결심을 한 것이다.


다만, 어떻게 이동할 지 고민이 됐다. 경과 석은 각자 오늘 학교와 농장에서 중요한 일들이 있어 무리해서 조퇴를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래저래 옆에서 걱정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열이 내리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것 같기도 했다.


마을 지도를 꺼내어 자전거 동선과 돌봄청에 가는 공유 차가 언제 집 근처를 지나는지 살펴보려던 중, 갑자기 낯선 소리에 연은 온 몸에 신경이 곤두섰다.


텅,텅,텅


집 밖에서 규칙적으로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와 진동을 느꼈다.

밖에서 무슨 공사를 하는 건가? 싶어 귀를 기울여보다가 연은 다시 지도를 펼치며 시간표를 살폈다.


그 때 다시 아까와 같은 소리가 울렸다. 좀 더 크게, 그리고 조금은 더 빨라진 간격과 커진 울림을 보니 연의 집을 두드리는 소리인듯 했다.


‘누가 왔나? 올 사람이 없는데,,’


연은 불안함과 기력 없음에 무시하려 하다가, 어짜피 곧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던 걸 떠올리며 나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는 연에게 너무나 큰 변화였다.



집에서 나오지 않고 지내던 바깥 마을에서의 생활, 그러니까 서울의 오피스텔에서 홀로 지내던 3년의 시간 동안, 수 없이 많은 두드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미세한 울림에 온 몸과 마음을 떨면서도 쉬이 방문조차 열지 못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 두드림의 발걸음엔 자신의 부모인 경과 석도, 직장에서의 유일한 동료이자 선배이며 대표였던 서라도 있었다. 건물 관리인도 있었지. 그들의 목소리에 자신을 공격하려는 계획도, 잘잘못을 따지려는 의도도 없다는 걸 알았음에도 연은 오랜 시간 두드리는 소리와 울림에 문을 열어 화답하지 못했다. 그저 마음 속으로 그 소리와 진동을 모두 흡수하는 거대한 흡읍판이 된듯마냥, 가만히 앉아 무릎을 잡고 웅크리어 어떤 것도 오지 않았다는듯이 스스로를 속이며 외면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두 세 번 반복되는 진동과 소리에 자신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온 몸엔 열이 나고, 오한으로 떨리는 손과 발에, 이틀 넘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밥도 통 먹지 못해 서있기도 힘든 비실한 상태의 연에게 문을 열고 나갈 힘은 그때보다 훨씬 부족하고 신체의 여력은 약해졌는데도, 몇 년 만의 가장 세고 큰 마음의 힘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기를 쓰고 몸을 일으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방 문 손잡이를 돌려 문을 겨우 발 하나 내밀 수 있을만큼 열고, 이마 옆으로 잔뜩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숨을 두어번 내쉰 뒤 눈을 감고 자신이 들은 소리와 울림이 환청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다섯번 째 조금은 더 둔탁하게 -퉁 퉁-, 조금은 약해진 소리로 울리는 소리에 연은 발바닥에서까지 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용기내어 얼굴만 겨우 내밀었다.


소리가 나는쪽을 바라 보니 거실 쪽 유리로 된 벽 너머에서 나무 문을 두드리다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한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가 누군지 확인하는 것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두드리던 손을 내려놓고 이쪽 저쪽을 기웃거리는 모습에 연은 그제야 안심하고 몸을 마저 꺼내어 거실로 나갔다.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거실 공간으로 걸어나가자, 눈썹을 찡그리며 앙다문 입으로 문을 노려보던 단오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연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천으로 싼 보따리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 흔들고 있었다.



어떻게 온거야? 오후 근무는 어떡하고~?


아니 같이 일하는 동료가 결근했는데, 아프기까지 하다니까.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소식이 없으니 걱정이 되서 말이지. 다행히 나도 반차 하나 쓸 수 있는 상황이라 오전에 부지런히 업무 마치고 나왔지. 그 동료분이 원체 자신이 아프다고 해도 아프단 소리, 앓는 소리 못하시는 분인 거 같아서 말이죠.


그랬구나. 고마워. 안그래도 이제 좀 일어나서 돌봄청에라도 가볼까 하던 참이었거든.


어제 다녀오지 못했구나? 윤석 삼촌에게 들러서 쌈밥좀 만들어달라고 해서 도시락으로 싸왔는데, 가는 길에 먹으면 되겠다. 5분 뒤에 돌봄청 가는 차 오니까, 타고 가자. 옷 챙겨 입고 나올래? 아직 낮이긴 해도 지붕 없는 카트라, 바람 막아지는 옷 입고 와.




✴︎



연과 단오는 돌봄청에 도착했다.


연은 건물 앞에 서서 잠시 눈앞에 넓게 펼쳐진 네모난 벽과 바닥 층에 커다랗게 난 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친 콘크리트 외벽에 진한 주황빛의 귤색 페인트를 투박하게 칠해둔 외벽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까끌거리는 오후 햇살을 받아 더 노랗게 반짝이는 벽을 손으로 쓸다가 이내 힘든 몸을 벽에 의지하며 문을 향해 걸었다. 입구에서부터 와글와글한 소리가 느껴졌다. 지금껏 선자마을에서 가 본 그 어떤 공간보다도 소란한듯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너른 광장처럼 보이는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의 소리와 움직임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연은 아찔함을 느끼고 놀랐지만, 이내 귀를 기울였다. 가장 먼저 들린 건 아이들의 뛰어 놀며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조잘거리거는 소리, 노인들이 웃고 어딘가 엉성한 리듬으로 노래하는 소리, 조용히 - 하지만 몸 동작은 큼직하게 움직이는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눈과 귀가 모두 시끌벅적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안했다.




중학생쯤 되보이는 아이가 소란한 중에 연을 발견하고는, 호기심과 반가운 눈빛을 하고는 총총거리며 걸어와 말을 걸었다.



돌봄청에 오신 걸 환영해요. 어떻게 오셨나요?


아 그게,, 저 제가 열이 좀 나고 몸이 안좋아서요. 이 마을에선 아플때도 돌봄청으로 간다고 하길래 일단 와봤어요.


잘 오셨어요. 돌봄이 필요하신 상태시군요. 처방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다녀와. 연이 누나. 나는 여기 광장에 있을게.


어느새 노래하던 어르신들 중 한두분에게 눈인사를 하며 걸어가 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틈에 끼는 단오를 뒤로 하고, 연은 또박또박 조금은 어색하지만 자신감 있는 말투로 말하는 이 어린 여중생 안내원의 종종걸음을 따라 처방실이라는 곳을 향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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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