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선자의 노트
연은 며칠 째 도서관 일이 끝나면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윤석네 가게 2층의 창고방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노트를 계속 살피며 자신이 찾고 싶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것인지, 계속 이렇게 선자의 흔적을 찾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인지 스스로에게도 답할 수 없는 날들이 더해갔다.
삼촌에게 일어난 일 -
전문 기술직이었지만 곧 ai에 대체되어버린, 그래서 무용한 인간이 되어버려 부유하듯 생을 마감한 -
그런 일이 곧 나의 부모에게도, 나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연은 노트를 잠시 덮었다.
선자가 또렷하게 써둔 마지막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망치듯, 진실을 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서울을 떠나 이 마을로 왔지만, 모든 걸 알게 됐을 때 - 그 다음은 무엇일지,자신이 결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장을 펼쳤다. 몇 주간 기록을 하지 않은 날들이 계속 되었던듯 했다. 연은 아무 말도 없는 노트에게서 필체도 읽고 기록한 책도, 적는 문장의 목소리도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오전에 서울도서관에서 진행하던 <부단한 읽기>의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프로그램 종료 통보는 마지막 수업을 들어가기 직전 통보 받았다. 인문 교육이나 마음 건강을 위한 문화 강좌 예산이 대폭 삭감 됐다고 했다. 올 해를 마지막으로 언제 다시 무용한 것을 위해, 그러니까 돈이 되지 않을 것을 위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 읽고 대화하는 모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열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담당자 분이 말했다. '그래도 읽는 일은 도서관에서 혼자서도,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요'라는 말을 덧붙이지만 않았다면.. 생각하며 두껍고 큰 문을 밀고 나왔다. 울컥해서 화도 나긴 했지만, 그도 결정권이 없긴 마찬가지였을테다. 정규직 사서 인원도 점차 줄어들어 한 명의 인원이 담당해야 할 업무의 범위는 늘어나는데 보고에 채점하듯 인정받기 어려운 프로그램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 어려웠을게지. 애써 달래보려 했지만 마지막이라는 얘기에, 다신 이렇게 모이기 어려울거라는 이야기에 눈물을 글썽이고 당혹스러워하던 참여자 아이들과 청년들, 어르신들의 얼굴이 떠올라 좀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답답해진 속을 풀어주려 덕수궁 쪽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뒷편으로 나와 고종의 길을 따라 걷다보니 복구를 위해 공사중인 선원전 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 곁을 외로이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도 함께 보였다. 앙상해진 겨울의 회화나무를 바라보며 '저 공사중인 궁궐처럼, 고사 판정을 받은 후에도 오랜 침묵 끝에 조용히 새 잎을 내었던 이 나무처럼, 나에게도 다시 시작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쓸쓸해졌다. 청계천으로 걸어가다가 천이 내려보이는 교각의 돌 위에 걸터 앉아 한나 아렌트의 책을 펼쳤다.
"역사적 사건이 되기 이전 시작은 인간의 최고 능력이었다. 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와 동일하다. 시작이 있었고 인간이 창조되었다."
<부단한 읽기>는 부드럽고 단단해지는 읽기의 시간의 줄임말이었다. 읽으며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생각을 키워나가길 바랐다. 함께 해 온 책 친구들은 각자의 생의 사정이 있음에도 꾸준히 계속 기수마다 연장해서 신청하며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해왔다. 잘 버는 법, 더 좋은 집, 깨끗한 집에 사는 법을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회의 목소리에서 고요히 서로의 마음의 소리를 꺼내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던 시간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들 새로이 자기만의 부단한 읽기를 시작해갈 수 있기를,, 눈물이 자꾸만 나왔다.
연은 자신이 출판사에서 일할 때의 기억이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인문과 사회과학 위주로 책을 내던 작은 출판사는,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경제에 관한 전문가들의 회고록이나 에세이를 내곤 하다가 성공의 마지막 기회를 준비하는 걸 돕는 뇌과학이라든지, 점차 사람들이 듣고싶어 하는 이야기로, 더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향으로 책을 내기 시작했다. 작은 출판사에서 많은 일을 구분 없이 맡아 하면서도 긍지를 느낄 수 있던 건 휴머노이드와 함께 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고,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영역에 관해 책을 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스스로 보람을 느끼며 다닐 수 있는 이유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너무 많은 일의 책임과 익숙함이 자신의 일상을 지배해버린 후였다.
'이 노트를 계속 읽고, 그녀의 흔적을 찾으며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일이 나에게 끝으로 남을까,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되는걸까?' 연은 노트를 붙잡고 쓴 이인 선자에게일지 스스로에게일지 모르겠는 질문을 주문처럼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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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린건지, 열이 한번 오르고는 좀체 내리지 않아 불덩이같은 몸을 이끌고 도서관에서 퇴근한 후, 연은 하루를 꼬박 누워 보냈다. 출근도, 윤석의 창고도 갈 수 없었다. 경과 석은 깊이 걱정했지만 이틀차인 오늘 오후까지도 열이 내리지 않고 몸이 안좋으면 돌봄청에 가보겠노라고 약속을 한 후에야 부모를 출근하게 두고 혼자 남은 집에서 끙끙대며 도서관 지하에서 발견해 갖고 있던 선자의 노트를 꺼내 읽었다.
문학심리상담사로 활동하며 자원봉사도 틈틈히 다녔던 날들.
표백사회에서 검열된 화이트 시민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발버둥치는가. 서로를 자발적으로 감시하며 재단한다. 그 잣대는 가장 엄격하게 결국 자신을 향한다. 어떤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삶이 완성된다. 이것을 위해 모두가 잠을 쪼개어, 시간을 쪼개어 사는 것일까.
완성의 순간이란 과연 있을까. 목적을 이루고 목표를 완성하면 삶이 퀘스트처럼 끝나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권위 있는 직업, 안정적인 전문직을 쫓고,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자산에 대한 강박을 보이는걸까. 완성된 직업 위엔 완성된 인간상이 필요했으니 - 그 현실 불가능한 이상적 인간상을 위해 모두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위선자가 되어갔다.
표백 사회.
인위적으로 모든 고유의 색과 질감을 없앤 하얀 밀가루처럼 점차 색을 잃어가던 신록이 떠올랐다. 신록은 왜 그 사회에서 나오지 못했던 걸까. 왜 가장 힘든 시기에 아무런 얘기도 남기지 않았던걸까. 연은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고요했던 신록에게 야속했고 답답했고, 진실을 직접 듣고 싶었다. 왜 그토록 가까이에 있던 자신에게 한번을 편하게 털어놓지 못했느냐고.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신록은 이제 연에게 답을 해줄 수 없다. 연 또한 신록에게 더이상 직접 물어볼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딜수 없이 괴로웠다. 잊고 지내다가도 이렇게 갑자기 가슴이 옥죄여오는 기분으로 연은 하던 것을 내던지며 주저앉아버리곤 했다. 몸에 나는 열로 인한 두통보다도 가슴이 더 뾰족하게 찌르는 통증이었으며, 강한 불로 데이는 화상같은 것이었다.
어떤 위선이 필요할까.
다정한 위선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스스로의 외로움이나 진정한 연결과 유대를 원하는 갈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근본적 본능을 누르고 돈과 직업, 건강과 쾌적한 삶이 이것들을 채워줄 수 있는것처럼, 숫자로 셀 수 있고 세워둘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자산과 물건들이 삶을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을거라고 속이며 스스로에게 위선을 가했던 것이다.
연은 신록의 침묵이 자신의 부재 때문이었을까, 혹은 자신이 신록의 표백 사회를 완성하는 점이었던건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오한을 느꼈다.
그렇게 두려움에 계속 떨고만 있던 날들이 선자마을에 오기 직전의 서울에서의 3년의 생활이었다. 신록을 잃고 그저 답답함과 무력함으로 뒤섞여 점차 일도, 관계도 이어갈 힘을 잃어갔던 시간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것은 우연히 발견한 선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겨둔 글 때문이었다. 토막으로 잘라내어 앞 뒤 맥락 없이 올라간 느낌의 몇 줄 문장이었지만, 멈추어 설 수 밖에 없었다.
신록의 죽음으로 내 안의 어떤것도 하나가 끊어져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단절, 그리고 무너짐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계속해서 일상을 부수고 가라앉은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밥을 먹어도 계속해서 멀미가 났고, 자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깨어났다. 그 죽음은 나의 것인것만 같았다. 내가 지켜주지 못한 나의 죽음 같기도,
그 문장을 읽고 글쓴이인 위선자라는 사람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녀를 만나게 되면, 신록의 죽음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거란 생각에 연은 이대로 숨어지낼수만은 없다고 생각했고, 남은 삶이 주어진다면 신록의 못다한 이야기를 듣는데에 쓰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선자의 노트를 중간즈음까지 읽었을 때, 블로그에 올라와 있던 글의 전문으로 보이는 페이지를 발견했다.
의진에게 일어난 일, 책 친구들에게 일어나버린 일 - 나를 참 잘 믿고 따랐는데, 점차 삶이 바빠지며 거리가 생겼고 엄격한 잣대에 계속해서 강박과 자기비하, 비난과 우울증이 심해져갔다. 건강한 생활을 되찾기 위해 찾았던 정신건강의학과의 기록이 발목을 잡아 더욱 사회에서 격리되고 보이지 않아야 할 영역에 갇혀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잘 사는 딸, 딸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녀 - 신록이 내 곁을 떠났다.
언제든 내 친구에게, 또 내 이웃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신록의 죽음으로 내 안의 어떤것도 하나가 끊어져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단절, 그리고 무너짐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계속해서 일상을 부수고 가라앉은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밥을 먹어도 계속해서 멀미가 났고, 자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깨어났다. 그 죽음은 나의 것인것만 같았다. 내가 지켜주지 못한 나의 죽음 같기도,
나는 그렇게 이 사회를 둘 수 없다
내 친구들의 아이, 내 동생의 아이들에게 이런 삶을 줄수 없다.
지상명령. 나에게도 그런것을 준 조상이 있었더라면
왜 우리는 토착 언어를 모두 잃어버린걸까.
땅의 언어, 나는 그것을 지키고 싶어졌다. 마주하고 사람이 살아갈 것은 모두 나를 제외한 모든것이 자연일터, 자연과 조응하는 길을 발견하고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조화롭게 - 그를 위한 시작은 어떤게 있을까. 기업을 차려보아야할까. 소비를 바꾸어야 할까. 정치를 바꾸어야할까. 너무나 막연하고 거대하다. 내가 할수 있을까
그대로 둘 수 없다면 내가 뭘 할수 있을까.
지키고 싶은 이들과 함께 서로를 돌보며 살고 싶다. 그 생각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