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의 마을

14. 선자의 노트

by 삶예글방

방 안에 낡은 종이냄새, 환기되지 않아 답답하고 쿰쿰한 냄새가 가득했다. 바닥엔 먼지 덩어리가 언제부터 뭉친 건지도 모르게 나뒹굴고 있었고, 비스듬히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의 줄기에 빼곡하게 부유하는 먼지들이 마치 이 공간이 무중력 공간인 듯, 모든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떠돌고 있었다. 윤석 삼촌도 어지간히 청소엔 관심이 없는 사람이구나, 연은 생각하며 선반을 훑기 시작했다. 가득 산만하게 눕히고 서고 겹쳐지며 꽂혀있는 노트들을 보며, 그 안에서 시간도 어느 순간부터 멈추어 있던 것이 아닐까 착각이 일기까지 했다. 마치 펼치기만 하면 그 세계로 접속할 수 있는 각각의 비밀의 문들이 오랜 세월 연을 기다린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보니 노트는 연이 발견한 것과 같이 낡고 해진 코팅조차 되지 않아 커버도 낡고 구부러진, 끈으로 거칠게 묶여있는 노트가 몇 권이 더 있었고, 그 외엔 전부 가지런히 정돈된 단단한 사피아노 가죽의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도 망가진 노트에 손이 먼저 갔다. 차례대로 읽고 싶었지만 손이 떨렸다.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 알고 싶으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같이 공존했다.


많이 우글거려 손가락에 걸리는 페이지를 먼저 펼쳤다.




아버지 제자 의진이의 자살



제목이 거칠게 쓰여있었다. 자살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가 여러 겹으로 그어져 있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써왔던 것으로 아는데, 소설일까, 회고일까, 아니면 그저 책 속 내용에 대한 기록인 걸까?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바로 이어서 읽어 내려갔다.





아빠가 아끼고 귀여워하던 제자 의진이 집 건물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쳤다. 쌤~ 쌤~ 하면서 밝은 모습으로 자기도 커서 국어 선생님이 될 거라며 조용히 잘 따르던 아이라고 했다. 그러던 의진이 가까웠던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도우려다가 싸움에 휘말렸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의 입장에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고,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아채고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시키고자 했을 때, 그 친구는 부모의 제지로 조용히 문제 삼지 않고 피해자라 주장한 아이들에게 사과하며 일단락을 빠르게 할 것을 요청했다고 했다. 고민이 되었던 아버지는 의진을 불러 의중을 물었다. "부모님께 많이 혼났어요.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그 친구가 네게 도움을 먼저 요청했니? 그렇지 않다면 먼저 나서지 않았어야지. 학폭위 기록 남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그러니? 앞으론 무조건 나서지 말고 네 일에만 집중하렴."라고 하셨거든요. 죄송해요 쌤. 제가 사과하면 해결될 일인 것 같아요."


마음을 다해 손을 내밀고 용기를 낸 행동이 학폭위원회를 불러왔을 때, 그 아이가 받았을 상처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것에 대해 부모도 믿어주지 않고 도리어 네탓이라고, 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에게서 이 아이는 어떤 실망과 체념을 품고 자라게 될까.




이토록 자세히 이야기를 적어둔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사실인지 아닌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가슴이 기분 나쁘게 흥분되어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의진의 부모의 이야기를 읽을 때 왜인지 신록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신록도 그렇게 자랐을까. 선자의 기록을 이어서 더 따라가 보기로 했다. 먼지 덩어리들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연은 한숨을 내뱉고 다짐한 듯 바닥에 아빠다리를 하고 엉덩이를 그대로 무심히 댄 채 바닥에 앉았다. 제대로 읽어가겠다는 듯이 힘주어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시장 사는 아이들


“시장 사는 애들이랑 자꾸 어울리니까 아무래도 그게 문제지. 길 하나 건너로 너무 분위기가 다르니까 구분이 좀 됐으면 좋겠는데.”


무심코 고민을 토로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자신의 아이가 사는 아파트의 친구들이 아닌 시장 골목에 빌라나 상가주택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의진의 부모도 그 친구가 가난하고 힘없는 아이인 게 거슬렸을까. 그런 아이들 보다는 '바람직하게' 쾌적한 학창 시절을 보내길 바랐던 걸까.


“근데 우리도 시장 골목에서 살고 자랐잖아.” 나는 친구에게 되물었었다. 친구는 헛기침을 뱉더니 그건 다른 거라며 손사래를 치며 바로 대꾸했다.

“그치 근데 우리 때랑은 좀 다르지. 나는 일단 잠시 머물듯이 지낸 거고, 너네 남매는 뭐 계속 시장 골목에서 살았긴 했지만,, 특히 예외적으로 잘 자란 케이스고.”


이야기를 듣고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시장 사는 아이들을 떠올려 본다.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던 시간. 하는 일 중 가장 나쁜 일이라고는 남의 집 벨을 누르고 튀던 벨튀의 추억. 집과 집, 골목과 골목, 공터와 놀이터를 구역삼아 넘나들어 뛰어다니던 시간들. 서로의 집에 놀러 가면 라디오 놀이를 하고, 사연을 보내고 또 사연에 맞게 음악을 틀어주며 녹음하고 들어보며 킥킥거리며 웃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친구네 아버지가 하는 만두공장에 가서 고사리손으로 만두를 빚어 못난 만두들 한판 가득 채워 받아 집에 가져가던 저녁도 떠올랐다. 어울려선 안 되는 그림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집 없는 애들마냥 늦게까지 뛰어놀던 모습? 공부보다는 노는 것에 치우친 생활? 넓은 나이 터울 상관없이 우연히 마주친 아이들부터 동네 상점 어른들과도 어울리는 쉬이 섞이는 성향 같은 것?


그리고 전학 갔을 때 아파트에만 어려서부터 살았던 아이들과의 일상을 떠올려보았다. 무엇이 달랐지? 많은 것이 달랐다. 방과 후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친구를 사귀는 게 아니라 편을 먹는 방식을 배워야 했다. 같은 브랜드를 소비해야 그들의 편에 설 수 있었고, 같은 그룹과외를 신청해 들을 수 있어야 했다. 나는 그것을 끝끝내 배울 수 없었다. 고민할 때도 있었으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문제도 많았으며, 선택할 수 있는 문제조차도 편이 아닌 쪽에 서곤 했다. 아파트 친구들 속에서 나는 점점 이방인으로, 또 배척되는 존재로 맞서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언제든 이 일들이 나의 조카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테다.

그리고 내 친구의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테다.

슬픈 현실 앞에서 이들에게 이런 삶을 줄 수 없다는 생각만이 또렷해진다.


그렇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줄곧 바르게, 곧게 지어진 아파트와 대형 맨션에서만 지내온 연은 시장 사는 아이들을 본적도, 그런 이야기에 대해 들어 본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유년시절의 묘사를 읽으며 이상하게도 향수를 느꼈다. 아득하게 부러워져 왔다. 선자가 지냈을 시장 골목길의 놀이에 열 살이던 자신도 끼어 놀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볼 거야? 오늘 집에 안 가게?

단오의 목소리였다. 윤석은 단오의 어깨 위로 훌쩍 오는 머리를 슬쩍 옆으로 기울이며 미소 지었다.


연은 그제서야 단오의 기척을 알아챘다. 아직 읽고 싶은 노트가, 아니 두 권도 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두 사람이 1층 식당의 마감 정리를 모두 마치고 집에 갈 채비까지 끝내도록 연은 잠시 10분이나 지났을까 하는 심정으로 노트를 읽고 있던 것이다.


"삼촌, 저 ,, 당분간 이 창고 계속 오갈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어요?"

연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윤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대신 이곳에 온다는 걸, 이곳에 이런 노트가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거든."

연은 기쁜 맘으로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야 말로 누구에게도 이 노트를 아직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도 아니고, 아직 어떤 글이 쓰여있는지도 모르지만 지켜야 한다고 마음먹으며 연은 내일을 기약하고 창고를 나섰다.



왜 윤석에게 그 많은 노트가 있는지, 이 노트를 읽으면 자신의 삶에 무엇이 달라질지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연은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발견한 노트를 가슴에 꼭 쥐었다. 선자의 그런 고민들이 쌓여 자신에게까지 그녀의 글이 닿았기에 지금 자신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일지는 모르지만 고마운 마음을 갚고 싶다고 생각하는 연이었다. 자신이 받은 것이 없는데도 연은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이 읽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용히 주문을 외듯 자신에게만 들릴 수 있게 말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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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